(엑스포츠뉴스 중국 항저우, 김지수 기자) "이번에는 꼭 일본을 이기고 금메달을 따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나도 있는 힘껏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돕겠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야구 국가대표팀은 23일부터 고척 스카이돔에 모여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 준비에 돌입한다. 최종 엔트리 24명 중 세 자리가 일부 선수들의 부상으로 변경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금메달'이라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2010 광저우,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이어 4회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야구대표팀 소집을 선수들만큼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 25번째 태극전사가 있다. SSG 랜더스 불펜포수 권누리는 생애 5번째 태극마크를 달고 항저우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는다. 지원 스태프 중에는 KBO 사상 최초로 모든 국제대회를 경험하는 최초의 주인공이 됐다.
권누리 불펜포수는 고교시절 프로야구 선수를 꿈꿨지만 선린인터넷고 졸업 후 프로 구단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제주관광대학교로 진학한 뒤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야구와 무관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려던 상황에서 2014년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의 전신)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SK 구단은 불펜포수로서 권누리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경기 전 타격 훈련 때 타자들에게 던져주는 배팅볼이 '명품'이었다. 현재는 프로 10년차 베테랑 불펜포수로 자리잡았고 SSG 1군에서 가장 중요한 지원스태프가 됐다.
권누리 불펜포수의 배팅볼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있다. 2016 고척스카이돔 KBO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 당시 SK 소속이던 정의윤의 배팅볼 투수로 나섰고 KT 박경수, NC 에릭 테임즈 등 다른 팀 타자들까지 권누리와 호흡을 맞추기를 원했다.
2019 시즌 SK 외국인 타자 제이미 로맥은 창원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권누리 불펜코치와 동행하기를 원했다. 홈런 레이스 우승을 위해서는 권누리의 배팅볼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요청했고 결과는 홈런 레이스 1위였다.
KBO도 2017년부터 권누리 불펜포수를 주목했다. 권누리는 이해 11월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프로야구 챔피언십(APBC) 초대 대회에 지원 스태프로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대표팀 코칭스태프로부터 불펜포수, 배팅볼 투수 역할에 대한 극찬이 나왔고 이후에도 국가대표팀에서는 권누리를 지속적으로 찾았다.
권누리 불펜포수는 2017 APBC, 2019 WBSC 프리미어12, 2021 도쿄올림픽,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까지 주요 국제대회 무대를 모두 밟았다. 선수 중에서도 이 대회를 모두 뛰어본 경우는 많지 않다. 대한민국 대표 불펜포수라는 타이틀이 붙어도 이상할 게 없다.
권누리 불펜포수는 "내가 선수는 아니지만 국가대표팀은 소집돼서 갈 때마다 너무 설레고 기대가 크다"며 "항상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책임감도 커진다. 다른 팀 투수들의 공을 받아보면서 느끼고 배우는 것도 많다. 이번 WBC에서는 두산 곽빈 투수의 직구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지급받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도 특별하다. 최근 유니폼 치수 측정을 위해 KBO 관계자들이 SSG를 찾았을 때 다시 한번 벅찬 감정을 느꼈다. 권누리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모두 집에 진열해 놨다. 대회 때마다 디자인도 달라져서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설레고 기분이 좋다"고 웃었다.
2019년부터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로 활동 중인 이종열 해설위원은 "권누리 불펜포수가 던지는 배팅볼이 타자들의 경기 준비에 엄청난 도움을 준다. 반드시 대표팀 스태프로 뽑는 건 다 이유가 있다"며 "불펜포수, 배팅볼 투수가 정말 어려운 일인데 권누리 불펜포수가 이 역할을 너무 잘해준다. 성격도 좋고 유쾌해서 선수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또 "배팅볼은 타자들이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권누리 불펜포수가 정말 잘 던져준다"며 "나도 대표팀 코치로 일하기 전까지 권누리를 잘 모르고 있었지만 함께 여러 대회를 겪으면서 왜 이 친구를 다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고 치켜세웠다.
권누리 불펜포수의 배팅볼의 특징은 타자 맞춤형이다. 타자들이 경기 전 최대한 좋은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잘 칠 수 있는 코스로 던져주려고 노력한다. 비슷한 곳으로 연이어 일정한 속도로 던질 수 있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무쇠팔'도 권누리 불펜포수의 강점이다. 2시간 가까이 수백 개의 공을 던져도 팔과 어깨에 전혀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평소 팔굽혀펴기, 웨이트 트레이닝 등으로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하기 때문에 연투도 거뜬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는 내야수 박성한, 외야수 최지훈 등 2명의 선수가 권누리 불펜포수와 함께 참가한다. 최지훈은 올해 3월 WBC 대표팀을 다녀오기는 했지만 국가대표팀에서 만큼은 권누리보다 경험이 적다. 박성한은 태극마크 자체가 처음이다. 두 사람은 '대표팀 베테랑' 권누리 불펜포수의 존재가 벌써부터 든든하다.
최지훈은 "권누리 형의 장점은 선수들이 치기 좋은 공을 던져주면서 심리적으로도 긍정적인 감각을 끌어올려 준다"며 "경기 전 배팅 때부터 좋은 타구를 만들어 선수들이 좋은 기분을 가지고 경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치켜세웠다.
박성한은 "권누리 형과 같이 아시안게임에 가게 되어 의지가 많이 된다"며 "팀에서도 배팅 훈련 때 꼭 필요한 존재이고 경기 전 연습에서도 일정한 배팅볼로 도움이 많이 된다. 아시안게임에 가서도 호흡을 잘 맞춰 경기를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믿음을 드러냈다.
권누리 불펜포수는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이 꼭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국은 2017 APBC, 2019 WBSC 프리미어 12는 일본에 밀려 준우승, 2021 도쿄올림픽과 WBC에서는 입상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권누리 불펜포수는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일본을 이긴 적이 없는데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는 꼭 승리하고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나도 있는 힘껏 선수들을 도와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쏟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사진=SSG 랜더스/연합뉴스/권누리 제공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