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최원영 기자)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이 또 한 번 세계무대에 오른다. 가시밭길이 될 전망이다.
세자르 에르난데스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오는 24일까지 폴란드 우치에서 개최되는 2024 파리올림픽 예선전에 임한다. 한국(세계랭킹 36위)은 C조에 속했다. 한국시간으로 17일 이탈리아(5위)전을 치른 뒤 18일 폴란드(7위), 19일 독일(12위), 20일 미국(2위), 22일 콜롬비아(20위), 23일 태국(14위), 24일 슬로베니아(25위)와 차례로 맞붙는다.
대표팀은 14명으로 구성됐다. 세터 김다인(현대건설)·김지원(GS칼텍스), 아웃사이드 히터 강소휘 권민지(이상 GS칼텍스)·박정아 이한비(이상 페퍼저축은행)·표승주(IBK기업은행), 아포짓 스파이커 이선우(정관장), 미들블로커 박은진 정호영(이상 정관장)·이다현(현대건설)·이주아(흥국생명), 리베로 김연견(현대건설)·문정원(한국도로공사)이 이름을 올렸다.
이번 대회에서 풀리그를 치러 조 2위 안에 들어야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1승도 쉽지 않아 보인다. C조에서 세계랭킹이 가장 낮은 한국은 최약체로 평가받는다.
2021년 10월말 세자르 감독 선임 후 대표팀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6~7월 열린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예선 라운드서 12전 전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16개팀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승점을 단 1점도 따내지 못했다. 총 3세트만 챙기고 36세트를 내줬다. 2018년 대회 창설 후 최초로 '전패 및 무승점'의 불명예를 떠안은 팀이 됐다. 한 계단 위인 15위 벨기에만 해도 4승8패, 승점 8점을 기록했다.
지난해 9~10월 개최된 세계선수권대회서는 B조에 배정됐다. 폴란드, 튀르키예, 도미니카공화국, 태국, 크로아티아와 경쟁했다. 마지막 상대였던 크로아티아를 세트스코어 3-1로 제압하며 겨우 1승을 거뒀다. 1승4패, 승점 3점으로 B조 5위에 그쳤다. 2라운드로 나아가지 못했다. 대회에 참가한 24개팀 중 20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8년 17위에 이어 역대 가장 낮은 순위로 마무리했다.
올해 역시 발전은 없었다.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이다. 지난 5~7월 열린 VNL 예선 라운드서 또다시 12전 전패, 승점 0점으로 힘없이 물러났다. 이번에도 3세트만 얻고 36세트를 잃었다. 3주차 일정을 안방인 한국 수원에서 치렀음에도 반전을 만들지 못했다. 불가리아와 중국을 상대로 각각 1세트씩 챙긴 것이 전부였다. 세트 초반부터 뒤처지거나, 몇 점씩 앞서다가도 역전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세자르호는 2년간 VNL 24연패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 6일 막을 내린 아시아선수권은 충격의 절정이었다. 대표팀은 14개팀 중 6위에 올랐다. 1975년 초대 대회에 참가한 이후 2019년까지 총 20회에 걸쳐 출전했지만 4강 진출에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준우승 7회, 3위 10회, 4위 3회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 참가했던 2019년에도 3위에 자리했다. 그러나 올해, 48년 만에 수모를 겪었다.
첫 경기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 베트남에 세트스코어 2-3으로 패했다. 리버스 스윕이라 더 허탈했다. 1, 2세트 승리하고도 3, 4, 5세트 모두 패했다. 이어 대만전서도 1, 2세트를 선취한 뒤 3, 4세트를 내줬고 5세트 승리로 힘겹게 3-2 신승을 거뒀다. 세자르호는 우즈베키스탄전 셧아웃 승리로 한숨 돌렸다. 태국에 0-3으로 패한 뒤 호주에 3-0 승리를 거뒀다. 인도와의 5~8위 결정전서 3-0 승리를 신고했다. 카자흐스탄과의 5~6위 결정전서 0-3으로 패하며 6위로 대회를 마쳤다.
아시아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났다. '국제경쟁력'이라는 단어를 꺼내기조차 민망한 상황이다. 세자르 감독은 부임 후 약 2년이 흐른 현재까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선수들의 조직력을 극대화하고 경기력을 끌어올릴 만한 전술이 보이지 않았다.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상태다.
한 배구계 관계자는 "감독이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세자르 감독만의 장점이나 특징이 보이지 않는다. 분석을 중점적으로 한다고 하는데, 훈련을 통해 선수들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우선이라 생각한다"며 "상황에 따른 대처 및 경기 운영도 아쉽다. 예를 들어 연속 실점해 흐름이 넘어갔다면 작전 타임이나 선수 교체 등으로 분위기를 끊어줘야 하는데 타이밍이 늦더라"고 꼬집었다.
선수들의 경기력도 제자리걸음 중이다. 기존 중심축이던 아웃사이드 히터 김연경, 미들블로커 김수지(이상 흥국생명)와 양효진(현대건설)이 태극마크를 반납한 뒤 세대교체에 나섰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다. 뚜렷한 에이스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강소휘 등이 분전했으나 승리까지 닿진 못했다. 이번 대표팀의 유일한 아포짓 스파이커 이선우는 장염 증세로 본진과 함께 출국하지 못했다. 첩첩산중이다.
한국 여자배구는 2012 런던올림픽서 4위,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서 5위,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서 4위에 올랐다. 파리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따내지 못하면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고배를 마시게 된다. 올림픽 예선전 이후에는 곧바로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이어진다. 여자 대표팀은 다음 달 1일 첫 경기를 치른다. 강행군 속에서 작은 성과라도 얻을 수 있을까. 씁쓸함만 남지는 않길 바란다.
사진=엑스포츠뉴스 DB, 아시아배구연맹
최원영 기자 yeong@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