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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 야구' 열풍, 잠실은 용광로

기사입력 2006.05.14 02:14 / 기사수정 2006.05.14 02:14

윤욱재 기자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27] 수퍼루키 ① 1994년 LG 삼총사 

신인 트리오의 등장, 신선한 충격

이광환 감독의 자율야구는 1993시즌 포스트시즌 진출로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94시즌 우승이란 열매를 맺게 된다. OB 감독 시절 자신이 추구하는 야구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지만 오히려 그 실패를 교훈으로 삼은 것이 LG 우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자율야구의 핵심은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 코칭스태프가 선수에게 일일이 이것저것 주문하다보면 선수의 장점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94년 입단한 고졸 신인 김재현도 타격폼이 독특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오히려 이 감독은 장점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했다. 이것이 김재현의 개성을 살릴 수 있었고 김재현도 편하게 타격에 전념할 수 있었다.

LG는 이 감독이 펼치는 자율야구가 정점에 달하고 신인 3인방이 주전 라인업에서 연신 방망이에 불을 뿜자 시즌 판도를 휘어잡기 시작했다.

김재박 이후 걸출한 유격수가 없었던 LG는 유지현의 등장이 반갑기만 했다. 유지현은 사실 입단 당시만 해도 주루 센스와 글러브질을 인정받았지만 타격 능력과 약한 어깨에 대해선 물음표를 낳은 게 사실. 그러나 주위의 우려와 악성 루머를 딛고 센스 넘치고 재기 발랄한 야구를 보여준 유지현은 루상에 나가면 상대 배터리를 골치 아프게 만들며 신바람 야구의 도화선이 되었다.

고교 시절부터 미래의 거포로 손꼽혔던 김재현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김재현은 일찍부터 프로에 가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했고 이것은 LG의 운명도 바꿔놓았다. 김재현의 장기는 뭐니 뭐니 해도 엄청난 배트 스피드에 있다. 국내 최고로 인정받을 만큼 탁월한 배트 스피드는 몸쪽 공에도 강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서용빈의 활약은 다소 의외였다. 유지현과 김재현 모두 아마 시절부터 유명한 선수였다면 서용빈은 철저한 무명이었다. 그러니 신인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도 41순위로 뽑힐 수밖에. 사실 뽑힌 것도 행운일 정도로 서용빈을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용빈의 운명은 스프링캠프에서 바뀌게 되었다. 당초 LG는 한대화 트레이드 때 함께 얻었던 허문회(해태가 신인으로 지명하고 계약교섭권 양도)가 새로운 1루수 후보였다. 김상훈을 떠나보내고 신인에게 1루를 맡겨야할 처지에 놓였던 LG는 타격이 출중한 허문회와 수비 능력에서 앞선 서용빈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때 LG 캠프를 방문한 재일동포 야구인 장훈 씨가 서용빈의 타격을 두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서용빈은 자신감을 얻으며 날로 타격에 발전을 거듭했다.

LG는 시즌 초 1, 2, 3번을 유지현-김재현-서용빈으로 못 박으며 역대 최초로 신인 3명이 주전 라인업에 포진하는 ‘파격’을 선보였고 뒤로 ‘해결사’ 한대화와 ‘검객’ 노찬엽 등이 받쳐주자 그 위력은 더해갔다. 이렇게 짜임새 있고 재미있는 야구를 펼치는 팀은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신바람 야구의 르네상스가 열린 것이다.

90년 우승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던 LG는 자율야구와 신바람 야구의 절묘한 결합으로 승승장구했고 정규시즌 선두로 치고 오르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4월 말부터 잡은 1위 자리를 시즌이 끝날 때까지 단 한번도 뺏기지 않으며 ‘파죽지세’를 이어갔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신바람 야구’

LG의 인기는 날로 치솟았다. 잠실구장에는 늘 관중들로 북적거렸고 응원 열기로 한창 달아올랐다. 특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야구장을 찾은 것도 LG 야구의 매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케 한다. 야구를 즐겨보는 중장년층은 물론 프로야구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오빠부대가 등장할 정도였다. 특히 오빠부대의 등장은 실력뿐만 아니라 외모도 수준급이었던 신인 트리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LG는 2년 연속 1백만 관중을 돌파하며 프로야구의 중흥기를 주도했다. 노란색 막대풍선이 장관을 이루고 나팔소리가 진동하는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한편 LG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게 된 신인 트리오는 프로야구 무대를 주름잡으며 매스컴의 집중을 받았다. 서용빈은 역대 최초로 신인이 사이클링히트를 기록, 스타로 성장하는 발판을 만들었고 김재현도 역대 최초로 신인 선수가 20-20 클럽에 가입하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LG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런데 정작 신인왕을 받은 유지현은 94시즌 전체를 휘어잡았던 이종범(해태) 때문에 유격수로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도 골든글러브를 놓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미스터 LG' 김상훈을 트레이드하며 영입한 한대화의 활약도 돋보였다. 해태 시절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탓에 구단과 멀어져 결국 LG로 트레이드된 한대화는 해태와 사뭇 다른 LG만의 분위기에 만족해했고 이것은 한대화를 변화시키는데 충분했다. 한대화는 적절할 때 한방을 터뜨려주고 팀이 필요할 땐 팀배팅을 하며 후배들의 귀감을 샀다. 해태 때와는 달리 LG가 젊은 선수들 위주이다 보니 고참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이광환 감독이 고안한 스타시스템은 투수진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프로 2년차 이상훈이 에이스로 떠올랐고 정삼흠, 김태원 등 2, 3선발로 자리매김하며 튼튼한 선발진을 만들었다. 신인 인현배도 선발로테이션을 지키며 힘을 실어줬다. 중간계투에선 셋업맨 차동철과 마무리 김용수가 경기 후반에도 팬들이 안심하고 볼 수 있도록 뒷문을 틀어 잠갔다.

한국시리즈 우승 ‘완벽한 피날레’

LG는 4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며 새로운 신화창조를 꿈꾸고 있었다. 한국시리즈 파트너는 한화를 꺾고 올라온 태평양. 투수왕국을 이룩하며 사상 첫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태평양의 각오는 남달랐다. 하지만 LG는 끈끈한 타선은 물론 태평양에게 뒤지지 않을 투수력을 갖춘 상태였다.

한국시리즈 1차전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승부가 펼쳐졌다. 이상훈과 김홍집이 선발로 나선 가운데 팽팽한 투수전이 전개되었고 LG는 차동철, 김용수 등 필승카드를 모두 투입시킨 반면 태평양은 김홍집으로 끝까지 밀어붙였다. 결국 연장 11회말 김선진이 좌측 펜스를 넘기는 통렬한 끝내기 홈런으로 LG가 2-1 신승을 거뒀다.

이 홈런은 시리즈 전체 판도를 가르는 결정적 한 방이 되었다. 기세가 오른 LG는 2차전에서 초반부터 상대 투수들을 집중 공략하고 정삼흠이 두뇌피칭을 앞세워 완봉승을 따내면서 기분 좋게 인천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이대로 밀릴 수 없었던 태평양은 3차전에서 정민태의 호투와 초반에 얻은 4점을 바탕으로 한국시리즈 첫 승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LG는 6회초 김영직이 우중간 2루타로 만든 찬스를 김재현이 놓치지 않고 적시 2루타로 연결, 귀중한 추격 점을 얻어냈다. 7회에도 찬스를 잡은 LG는 부랴부랴 마운드에 오른 정명원을 사정없이 공략하며 5-4로 역전에 성공, 김용수가 안전하게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3승째를 올릴 수 있었다.

4차전에선 1회초 LG 공격에서 김재현과 서용빈이 연속 안타로 1사 2,3루의 찬스를 만든 뒤 한대화가 적시타를 터뜨리며 2-0으로 앞서나갔고 3회초 서용빈이 우측 펜스를 넘기는 솔로홈런으로 두들겼다. LG는 경기 후반 한 점차로 쫓겼지만 김용수가 또 한 번 뒷문을 걸어 잠그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LG가 챔피언의 자리에 다시 오르기까지 여러 계기들이 있었고 그 중 신인 트리오의 출현은 결정적이었다. 신인들의 활약은 보장되지 않지만 이광환 감독이 이들을 믿고 중용했고 이런 이 감독을 보답하려는 듯 신인 트리오는 기량을 100% 이상 발휘하며 LG의 선두 질주를 이끌었다. LG팬들은 그라운드에 신바람을 일으키는 신인 트리오의 종횡무진 활약을 지켜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주 평생 잊지 못할 짜릿한 한 해였다.
유지현 (1994) → 15홈런 51타점 51도루 타율 0.305
김재현 (1994) → 21홈런 80타점 21도루 타율 0.289
서용빈 (1994) → 4홈런 72타점 타율 0.318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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