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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곰과 흑마 'I've got the power'

기사입력 2006.05.14 02:11 / 기사수정 2006.05.14 02:11

윤욱재 기자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25] 코리안드림 ① 

흑곰의 파워 본색, 42방을 쏘다

야구판에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외국인선수 제도가 도입돼 1997년 겨울 국내프로야구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선수 입단 테스트(트라이아웃)가 시행된 것이다. 이때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한화는 마이크 부시를 지명해 그가 거포 부재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했다.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OB는 첫 번째 선수로 공수주 3박자를 갖추고 노련미가 돋보이는 내야수 에드가 캐세레스를 지명해 김민호를 2루수로 바꾸고 새로운 유격수로 쓰려 했다.그러나 예정은 예정이었다. 시즌 초반 김민호는 원래 자리인 유격수로 가고, 캐세레스가 2루를 맡았다.

2라운드에서는 타이론 우즈를 뽑아 '수퍼 루키' 김동주와 함께 중심타선에 배치할 계획이었다.

사실 우즈는 2라운드에서 뽑힐 만큼 다른 외국인 선수들보다 주목도가 낮았고 큰 기대를 건 선수는 아니었다.

이때 OB가 우승후보로 꼽힌 것은 김상진, 박명환, 이경필 등 선발마운드가 탄탄한 점과 캐세레스가 들어와 내야가 안정된 점도 있었지만 뭐니뭐니 해도 김동주가 들어와 힘이 넘치는 타선 구성된 게 주요인이었다.

김동주는 원래 위치가 3루였으나 안경현이 3루에 버티고 있는 바람에 좌익수로 옮겨야 했고 3번타자 겸 좌익수로 시즌을 출발하게 됐다. 우즈는 김동주의 뒤를 받치는 4번타자 겸 1루수였다.

우즈는 개막전 첫 타석에서 시원한 좌월 1점 홈런을 터뜨리며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이후 홈런포는 간간이 터졌고 변화구 적응에 애를 먹으며 평범한 기록에 그쳐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우즈가 기대에 못 미쳐도 김동주가 워낙 부진한 시선이 김동주에게만 쏠려 있었다. 우즈는 김인식 감독이 믿음을 갖고 기다려준 덕분에 부담 없이 타격에 전념할 수 있었다.

서서히 타격 페이스를 회복하며 한국야구를 몸에 익혀가던 우즈는 6월말부터 공포의 방망이로 무장하더니 특유의 힘있는 타격을 구사하며 홈런 부문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승엽(삼성)이 멀찌감치 도망가 있어 홈런왕 후보에선 빠져 있었다.

우즈는 묵묵히 이승엽을 추격했다. 한국야구의 변화구 패턴에 완벽하게 적응한 우즈는 넓은 잠실구장에서 시원한 홈런포를 연신 터뜨리며 한 시즌 잠실구장 최다 홈런 및 한 시즌 서울팀 선수 최다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것도 하루에 한꺼번에.

개막전에서 4번타자로 데뷔한 우즈는 이미 3번타자로 조정된 상태였다. 이 타순은 우(즈)-(김)동(주)-(심정)수 트리오의 출발이었다. 또 인상적인 홈런을 잇따라 터뜨리며 OB를 대표하는 간판타자로 우뚝 섰다.

이승엽을 턱밑까지 추격해 본격적인 홈런왕 경쟁을 펼치게 된 우즈가 홈런왕에 자신감을 보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OB는 8월 3일 해태전 이후 16일 삼성전으로 첫 경기를 할 만큼 비 때문에 많은 경기가 연기된 상태였다(비가 막판 8연승의 밑거름이 될 줄이야)

홈런 때리기는 물론이거니와 경기 수에서도 우즈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이다.

우즈는 9월 24일 한화전에서 1992년 장종훈 이후 처음으로 40호 홈런을 때려냈고 26일 롯데전에서 한 시즌 개인 최다홈런 타이 기록(41)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1일 현대전에서 정민태에게서 큼지막한 홈런을 뽑아내며 신기록(42)을 달성했다.

우즈는 다른 외국인선수와 달리 한국야구에 대해 진지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있었고 주위 관계도 원만해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타석에서 보이는 매서운 눈빛과 다르게 하얀 이를 드러내며 짓는 미소는 우즈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우즈는 좋은 이미지를 남긴 덕에 '텃세'를 극복하고 정규시즌 MVP로 선정될 수 있었다.

롯데의 '구세주' 호세

2년 연속 꼴찌. 1998년 시즌 외국인선수 제도의 효험도 보지 못한 롯데는 마지막을 거는 심정으로 외국인선수 영입에서 펠릭스 호세를 지명했다. 결국 호세를 지명한 것은 1999년 시즌 롯데의 운명을 바꾼 최고의 선택이었다.

롯데는 두산과의 개막 3연전을 모두 승리로 장식했다. 호세는 3번 박정태, 5번 마해영 사이에 4번 타자로 자리잡았다. 이 타선은 최고의 중심타선을 자랑하는 삼성(이승엽-스미스-김기태)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력했다.

톱타자 부재는 여전했지만 김응국이 선전했다. 시즌 막판 깜짝 스타로 떠오른 신인 임재철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주형광, 문동환, 박석진 등 선발투수진이 든든한 활약을 펼쳤고 시즌 중반 합류한 에밀리아노 기론이 불펜에서 큰 힘이 됐다. 롯데는 마무리 부재란 숙제가 있었지만 강상수가 상당 부분 해결해줬고 포스트시즌에선 전체 투수진을 집단 가동하며 상대적 열세를 극복했다.

호세가 처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한국프로야구 통산 10,000호 안타를 터뜨리고 나서부터다. 힘과 정교함을 모두 갖춘 호세는 스위치히터란 이점도 있어 상대 투수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호세는 프로야구 최초로 한 경기 좌우타석 홈런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호세는 10,000호 안타와 좌우타석 홈런 모두 자신이 최초로 세운 기록이란 사실을 듣고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이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호세는 프로야구 최초 연속경기 만루 홈런 기록도 세워 모두를 놀라게 했다.

호세의 활약은 롯데의 선두질주를 이끌었다. 롯데는 드림리그 1위를 달리며(아쉽게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두산에 패해 2위로 마감) 1995년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렸다.

당시 롯데는 달아오른 타격과 투수들의 승리 행진이 이어지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려볼만한 팀으로 떠올랐다.

롯데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김명성 감독(작고)의 용병술과 일심동체가 된 선수단의 힘으로 포스트시즌 티켓을 따냈고 매직리그 1위 삼성과 맞붙게 됐다. 그러나 풍부한 자금력으로 최강 전력을 구축한 삼성의 힘은 막강했다.

대구 2연전에서 모두 무릎을 꿇은 롯데는 어느덧 1승 3패로 코너에 몰려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5차전에서 9회말 3-5로 뒤지고 있었다. 게다가 마운드엔 '애니콜' 임창용이 버티고 있었다.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 1사 1, 2루 기회를 잡은 롯데는 호세에 모든 것을 걸었다.

호세는 바깥쪽으로 흐르는 볼을 힘으로 밀어붙여 좌중간 담장를 넘겼고 이것은 극적인 끝내기홈런이 됐다.

6차전에서도 박석진의 역투로 승리한 롯데는 마지막 7차전을 맞이했다. 0-2로 뒤진 가운데 6회초 타석에 들어선 호세가 1점 홈런을 터뜨리며 추격의 불씨를 살려냈다. 그러나 관중석에서 날아온 이물질에 화가 난 호세가 관중석을 향해 방망이를 던지면서 일이 터졌다.

결국 호세는 퇴장 당했다.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롯데는 마해영의 연속타자 홈런으로 2-2 동점을 만들었고 7회초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8회말 기회를 잡은 삼성은 김종훈의 2점 홈런과 이승엽의 연속타자 홈런으로 재역전에 성공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한 발짝 다가서는 듯했다.

9회초 모든 것을 걸고 그라운드에 나선 롯데는 임수혁의 동점 2점 홈런과 연장 11회초 임재철의 결승타로 극적인 재역전승을 펼치며 롯데 팬들을 전율케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호세가 10경기 출장정지를 당한 것이다. 롯데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도움을 청했다. 결국 KBO는 호세의 출장정지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다음 시즌으로 미루기로 결정했고 호세는 한국시리즈에 출전할 수 있었다.

만약 호세가 아닌 다른 선수였다면 이런 결정이 날 수 있었을까. 그만큼 호세의 위력은 대단했다.

아쉽게도 호세는 한화와 치른 한국시리즈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오히려 실책을 범하며 팀을 어렵게 만들었다.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쳤지만 호세와 롯데는 팬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한편 호세는 한국시리즈 도중 기자회견을 자청해 대구구장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는 자리에서 태어나서 야구를 하다 오물 세례를 받은 건 처음이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타이론 우즈 (1998) → 42홈런 103타점 타율 0.305
펠릭스 호세 (1999) → 36홈런 122타점 타율 0.327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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