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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 10이닝 노히트노런 '화제만발'

기사입력 2006.05.14 02:08 / 기사수정 2006.05.14 02:08

윤욱재 기자
[프로야구 25년 특별기획 - 나의 몬스터시즌 23] 2004년 배영수 

전력손실-부상속출, '최대 위기'에 빠진 삼성

변화가 필요했다. 2003 준플레이오프에서 SK에 덜미를 잡히며 아쉬운 한 해를 마친 삼성은 이승엽이 지바 롯데 마린스로 떠나고 마해영이 자유계약선수(FA)로 기아에 이적하면서 전력이 약화됐다.

삼성은 선동열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을 수석코치로 전격 영입, 화끈한 타선으로 달구벌을 달궜던 지난날과 달리 팀 내 투수들을 집중적으로 육성시켜 '지키는 야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김응룡 감독은 선 코치를 전폭적으로 신뢰하며 그에게 투수 운영에 대한 전권을 맡겼다. 선 코치도 스프링캠프에서 풍부한 투수진을 구축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때 선 코치는 '3000구론'을 내세우며 투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선 코치의 기대대로 투수들이 눈에 띌 정도로 성장하면서 삼성은 시즌 초반을 그럭저럭 버텨냈다. 그러나 삼성은 5월 5일부터 5월 18일까지 10연패(1무 포함)의 수렁에 빠지며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때 배영수가 5월 19일 기아전에서 선발 등판했다. 배영수는 5.1이닝 동안 4실점 했지만 타선의 도움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팀의 10연패를 끊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은 10연승을 달렸으니 아무래도 '승운'이 따르는 선수임이 틀림없었다.

배영수는 시즌 개막과 함께 선발로테이션에 당연히 들어갈 것으로 보였으나 개막전부터 중간계투로 등장했고 첫 선발 등판은 4월말이 돼서야 이뤄졌다. 들쭉날쭉한 투구를 보여 코칭스태프의 애간장을 태웠던 배영수는 5월말부터 선발로테이션에 정착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끌어올린 스타킹, 멈출 줄 모르는 환상투(投)

배영수의 2004시즌 기록만 보면 한 해를 지배한 에이스처럼 보이지만 사실 배영수가 본격적으로 에이스로 떠오른 것은 6월부터다. 스프링캠프에서 진행된 강도 높은 훈련 및 '3000구+@'를 던진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상체만 이용했던 예전과 달리 중심을 하체로 이동한 것도 배영수의 호투 비결. 여기에 빠른 볼의 위력은 눈에 띄게 좋아져 구속은 150km를 넘어섰고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 등 변화구의 움직임도 현란해졌다.

포수 현재윤의 리드도 배영수의 위력을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배영수는 몸쪽, 바깥쪽을 가리지 않고 현재윤의 요구에 따라 자신 있게 투구했고 이것이 컨트롤을 회복하고 구위를 살리는 데 한몫했다. 왼손타자와의 승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던 것도 배영수를 업그레이드시킨 요인.

현충일에 개인 통산 첫 완봉승을 기록한 배영수는 무더운 여름에도 스타킹을 끌어올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스타킹을 끌어올리는 모습은 배영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연승 가도는 비록 15연승에서 멈췄지만 배영수는 에이스로 격상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배영수는 올스타전에서 2실점 했지만 기분 좋게 승리투수가 됐다. 후반기가 시작되자 배영수는 10승째를 챙기면서 박명환·개리 레스(이상 두산), 다니엘 리오스(기아), 막판에 합류한 마이크 피어리(현대)와 함께 다승왕 경쟁을 벌였다.

시즌 최종전까지 다승왕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던 배영수는 마지막 경기에서 6이닝 2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했지만 패전투수가 되며 아쉬운 '2패'를 안았다. 배영수는 레스, 리오스와 공동다승왕에 올라선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잊을 수 없는 한국시리즈

삼성은 정규시즌 2위를 마크하며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삼성은 준플레이오프에서 기아를 꺾고 올라온 두산과 맞붙게 됐다. 삼성의 1차전 선발은 당연히 배영수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1차전 선발은 김진웅이었다. 배영수가 팔꿈치 부상을 당해 컨디션이 완전치 않은 것을 고려, 삼성 코칭스태프가 김진웅을 '대타'로 내보낸 것. 언론에선 '변칙작전'으로 여겼으나 사실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

배영수는 플레이오프 2차전에 선발 등판했다. 전날 '절묘한 번트'에 뼈아픈 패배를 당한 삼성은 배영수를 투입, 2차전에 '올인'했다. 경기 초반 배영수는 2회 초 홍성흔에게 선제 솔로홈런을 허용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멘디 로페즈의 역전포로 기사회생한 배영수는 볼 끝에 힘을 실으며 두산 타선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1승 1패로 균형을 맞춘 삼성은 권혁의 강속구로 3차전을 챙기고 4차전에서도 리드를 잡자 주저 없이 배영수를 마무리로 투입,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이미 두 번이나(2001·2002년) 출전했기에 배영수에게 한국시리즈는 낯선 무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2004 한국시리즈는 배영수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동안 한국시리즈에선 선배들의 도움 속에서 자신이 빛을 발했다면 이번엔 남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고독한 에이스로 나서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삼성은 마무리투수로 돌아온 임창용이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김진웅·호지스 등도 기대 이하의 투구를 보이며 투수력에 큰 차질을 빚고 있었다. 그만큼 '쌍권총'(권오준·권혁)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배영수는 모든 이의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한국시리즈 1차전에 선발 등판했다. 그러나 배영수는 클리프 브룸바에게 선제 솔로 홈런을 허용하고 번트 공격에 무너지며 허무하게 물러났다. '시간 제한' 때문에 2차전도 무승부가 되면서 아무 소득 없이 수원을 떠난 삼성은 대구에서 열린 3차전에서 양준혁의 만점활약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1승 1무 1패. 승부의 분수령은 4차전이었다. 4차전 선발 역시 배영수와 피어리. 배영수는 첫 타자 송지만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151km에 이르는 빠른 볼과 칼날 같은 슬라이더로 배영수는 현대 타자들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매회 타자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던 배영수는 어느덧 퍼펙트게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관중도 숨죽이며 배영수의 투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중계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배영수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8회 초 투아웃까지 잡은 배영수는 박진만에게 2-3 풀카운트로 몰렸다. 결정구로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볼로 선언되면서 배영수는 결국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퍼펙트게임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노히트노런은 여전히 '진행형'. 9회 투아웃 상태에서 송지만을 삼진으로 솎아내며 9이닝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배영수는 아쉽게도 삼성이 한 점도 내지 못해 대기록 순간을 잠시 뒤로 미뤄야 했다. 하지만 연장전에서도 타선이 터지지 않아 경기가 0-0 무승부로 끝나면서 배영수의 기록은 결국 비공인 노히트노런으로 남고 말았다.

대구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은 혼신을 다한 배영수의 투구에 기립박수를 보내며 '배영수'를 힘차게 연호했다. 더그아웃에서도 마치 승리한 것처럼 배영수를 환영했다.

아쉬움도 많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팀의 우승이었다. 잠실로 옮긴 삼성과 현대는 혈투를 펼치며 매 게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를 연출했다. 두 팀 전력이 워낙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탓에 무승부 경기가 속출하면서 팬들의 항의도 들끓었다.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만큼 한국시리즈의 열기는 뜨거웠다.

당초 배영수는 7차전 선발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삼성 코칭스태프는 6차전까지 2승 2무 2패를 거두면서 아직 여유가 있다고 판단, 베테랑 좌완투수인 전병호를 7차전에 투입했다. 그러나 먼저 3패에 빠질 수는 없던 삼성은 무승부라도 건지기 위해 9회 말 배영수를 내보내는 초강수를 띄웠다. 겨우겨우 무승부로 경기를 마친 삼성은 8차전에는 예정대로 배영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주위의 우려와 달리 8차전에서도 배영수는 호투하며 6회까지 2-1의 리드를 잘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엔 '배영수 킬러' 전근표가 있었다. 7회말 1사 2루에서 우월 역전투런을 허용한 배영수는 오른발로 차는 시늉을 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결국 더 이상 점수를 내지 못한 삼성은 코너에 몰렸고 9차전에서 빗속 혈투 끝에 7-8로 패하며 V3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2년 연속 챔피언 트로피를 차지한 현대는 물론 삼성과 배영수도 큰 박수를 받았다. 특히 삼성은 충격의 10연패를 딛고 우승권 전력으로 다시 도약했고 배영수는 에이스로 성장하며 앞으로 삼성은 물론 한국야구를 대표할 스타선수로 부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배영수는 정규시즌 MVP로 선정되며 2003년까지 3년 연속 MVP를 차지했던 이승엽의 뒤를 이었다.

마치 '절묘한 배턴터치'라고 해야 할까. 이승엽이 삼성에 있을 때 삼성이 공격의 팀이었다면 배영수가 에이스로 떠오른 뒤 지키는 야구로 무장한 팀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배영수(2004) → 17승 2패 방어율 2.61


윤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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