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정현 기자) 위르겐 클린스만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지도력 이전에 기본적 약속까지 지키지 않는 그에 대한 팬들과 국민적 신뢰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가 한국 대표팀을 맡을 때 필요조건으로 인식됐던 '한국 상주'부터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를 고용한 대한축구협회(KFA)는 클린스만을 사실상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감독이기 때문에 한국 상주는 당연하다. 운이 좋았던 건 축구를 통해 여러 나라에서 생활했다. 한국에 거주하면서 한국 문화를 경험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자국 상주는 여느 국가 대표팀이건 중요한 사안이다. 자국 리그 선수들을 관찰하는 것은 물론 다른 연령별 대표팀과의 협의를 위해서라도 자국에 상주하는 것이 맞다. 지난 2014 러시아 월드컵 뒤 태극전사를 조련할 유력 후보였던 네덜란드 출신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감독이 한국 상주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아 계약이 무산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클린스만 역시 이와 비슷한 과거를 갖고 있다. 과거 조국인 독일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을 때 가족들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상주하며 재택근무를 한 것이다. 독일 축구계는 이에 비판 일색이었다. 4년 전 2002 월드컵 준우승 멤버 위주인 독일 대표팀이 2006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도 똘똘 뭉쳐 3위로 마쳐 성난 여론을 간신히 잠재웠으나 지도자로서 기본을 지키지 않은 그의 태도는 이후 클린스만이 독일 프로팀에서도 찬밥 신세를 당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요아힘 뢰브 수석코치에게 대표팀 관련 업무를 상당 부분 위임하고 미국에서 보고를 받은 것은 두고두고 구설에 오르는 이유가 됐다. 측면 수비수로 월드클래스였던 필립 람 등 일부 독일 대표팀 선수들로부터는 전술적 역량이 전혀 없다는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이런 점들은 클린스만이 한국 감독으로 발표된 직후 국내에서도 불거졌다. 당시 KFA는 "재임 기간 한국에 거주하는 것을 계약 조건으로 했다"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클린스만은 부임 초기부터 이를 사실상 지키지 않고 있다. A매치 기간이 지나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거나, 유럽으로 향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다. 지난 3월 A매치를 마치고 4월 1일 미국으로 떠난 그는 유럽파 점검을 마친 뒤 같은 달 26일 귀국했다.
그러더니 5월 7일 열린 2023 카타르 아시안컵 본선 조추첨을 이유로 카타르로 향한 클린스만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재택근무를 하고 6월 2일 돌아와 6월 A매치를 준비했다. 3월에 이어 6월에도 2연전을 1무1패로 마쳐 한국 대표팀을 맡은 외국인 감독 중 부임 뒤 최다 연속 경기 무승 신기록을 세우고는 다시 한 달간 휴가를 떠나 1990 월드컵 서독 대표팀 우승 기념 행사 등에 참석하며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더니 지난 7월 24일 돌아왔다.
그런데 클린스만은 일주일 만에 또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KFA에 따르면,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8월 1일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KFA 관계자는 "클린스만 감독이 생일(7월 30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휴가를 쓴 것은 아니고, 미국에서 원격으로 업무를 보다가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파 점검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9월 A매치 첫 경기를 치를 영국으로 곧장 가서 대표팀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3월과 6월 A매치 때문에 잠깐 와서 대표팀 지휘하는 것을 빼고는 한국에 거의 머물지 않는 셈이다. KFA는 그런 클린스만을 콘트롤하기는커녕 그를 사실상 비호하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이 KFA와 계약을 어떻게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계약 이행 이전에 축구팬들과 국민들 앞에 신의성실 자세를 갖고 일하는지는 굉장히 의문이다.
생일이 7월 30일이었는데 7월 24일까지 휴가를 보내더니 굳이 생일 보내겠다고 다시 미국으로 가는 행태를 누가 납득할까. 고용주인 KFA가 이에 제동을 걸고,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영광은 온데간데 없이 일본에 0-6으로 대패한 엘살바도르와 홈에서 1-1로 비기는 등 추락한 대표팀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몰두하도록 주문하는 게 마땅하지만 KFA는 거꾸로 클린스만 나팔수가 됐다.
클린스만은 대표팀 부임 당시 "현재 코칭스태프 경우 각각 나라에서 나폴리, 마요르카 경기를 보는 등 현지 경기를 보며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나는 한국에 상주한다"라면서도 "줌(동영상)을 통해 다른 장소에서도 회의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 한국에 있을 필요가 없다. (코치는) 선수가 있는 곳에 있으면 된다. K리그는 나와 차두리 코치가 함께할 예정이다"라며 자신은 한국에 거주하는 대신 코치들은 유럽에서 일하도록 하겠다며 사령탑인 자신이 희생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코치들은 왜 유럽에서 재택 근무해야하는가"라는 일각의 의문이 있었으나 클린스만 감독의 발언을 일단 믿고 그를 지켜보기로 한 것이 당시 축구팬들의 정서였다.
하지만 계약 반년도 안 된 지금 클린스만은 보란 듯 자신이 한국 축구에 했던 기본적 약속마저 지키지 않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과 KFA의 행태는 단순히 원격 지휘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 이제는 코칭스태프 회의나 선수 관련 보고 등 지휘는 물론 다른 행정 업무까지 원격으로 지휘할 태세다. 한국에 뭐하러 집을 구했나 쓴웃음 지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지 한참 되어 이제는 전세계 사람들이 다시 대면 모드에 돌입했음에도 클린스만은 온라인과 '줌' 속으로 점점 들어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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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기자 sbjhk8031@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