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지수 기자) "내 기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야구인으로서 팬들에게 죄송할 뿐이다."
미국과 쿠바의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전이 열린 지난 20일. 미국의 트레이 터너가 멀티 홈런을 쏘아 올리고 대회 4번째 홈런을 기록하자 TV 중계 화면에는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의 이름이 소환됐다.
WBC 중계진이 TV 화면에 띄운 자막에는 역대 WBC 단일 대회 최다 홈런 기록이 나열됐다. 이 감독은 당당히 가장 높은 곳에 이름을 올리면서 야구팬들은 '국민타자'의 현역 시절 업적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이 감독은 2006 WBC에서 5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다. 1라운드 중국전에서 2개의 홈런을 몰아치고 일본과의 경기에서 8회초 역전 결승 투런 홈런을 폭발시켜 '국민타자'의 면모를 유감 없이 보여줬다.
이 감독의 활약은 2라운드가 열린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멕시코전 선제 결승 투런, 미국전 선제 결승 솔로 홈런으로 대한민국 최고 타자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이 감독의 WBC 단일 대회 5홈런 기록은 2009, 2013, 2017년 대회까지 누구도 범접하지 못했다. 터너가 22일 일본과 결승전에서 홈런 한 개를 추가해 이 감독과 타이 기록을 이루기는 했지만 신기록 달성은 실패했다.
하지만 정작 이 감독은 자신의 WBC 홈런 기록에 큰 관심이 없었다. 지난 21일 KT 위즈와의 시범경기에 앞서 취재진으로부터 터너의 WBC홈런 기록 얘기를 전해 들은 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웃은 뒤 "(내 기록은) 이제 여기서 크게 의미가 없다. 우리가 세 번 연속 (WBC 2라운드 진출을) 실패했는데 그런 부분이 안타깝고 야구인으로서 팬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2006년 대회 4강, 2009년 대회 준결승의 영광을 끝으로 2013, 2017년에 이어 이번 2023 WBC에서도 1라운드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첫 경기에서 호주의 덜미를 잡힌 것은 물론 라이벌 일본에 4-13으로 무릎을 꿇는 굴욕을 당했다.
현역 시절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6 WBC 4강,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한국 야구에 안겨줬던 이 감독으로서는 국가대표팀의 연이은 부진이 마음 아플 수밖에 없다.
이 감독은 일단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길어지면 다른 나라에서 봤을 때 한국 야구가 약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며 "이번에는 실력 차이로 졌기 때문에 다음 (WBC) 대회에서는 우리가 꼭 정말 명예 회복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고 바람을 전했다.
터너가 자신의 WBC 홈런 기록을 깰 가능성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 감독은 "(터너가 홈런을 쳐도 안 쳐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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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