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기 기자) 중동의 석유 부국 사우디아라비아가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을 개최한다.
최근 들어 구단 인수와 스타 영입, 국제대회 유치 등 축구에 '통 큰' 투자를 연이어 하는 셈이다.
하지만 서방세계를 중심으로 사우디의 축구, 더 나아가 스포츠에 막대한 돈을 쓰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우디 내부의 각종 인권 문제와 정부의 친러 성향을 감추기 위한 이른 바 '스포츠워싱'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FIFA는 15일 평의회를 열어 2023 클럽 월드컵 개최지로 사우디를 만장일치 선정했다고 밝혔다.
클럽 월드컵은 각 대륙 클럽대항전 우승팀과 개최국 리그 우승팀 등 총 7개팀이 참가해 한 해 세계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무대다.
유럽 대표로는 손흥민 소속팀 토트넘, 김민재 소속팀 나폴리가 16강에 올라있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출전한다. 아시아 대표로는 이미 우라와 레즈(일본)가 동아시아 대표로 결승에 올라 있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나선다.
올해 12월 12일부터 22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사우디는 최근 수년 간 스포츠에 거액을 쏟아붓고 있다. 그 중에서도 축구에 쓰는 돈이 어마어마하다. 사우디는 우선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이웃 자원 부국처럼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클럽을 인수했다.
사우디 국부펀드(PIF) 컨소시엄이 프리미어리그 5대 명문으로도 꼽혔던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3억 파운드, 한화 약 4800억원에 2021년 여름에 인수한 것이다. 이후 뉴캐슬은 '오일 머니'의 힘을 받으며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 4위를 달리고 있다.
사우디는 뉴캐슬 인수에 이어 세계적인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모셔오기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자국 명문 알나스르가 올 초 호날두와 연봉 2억 유로(약 2700억원)에 2년 6개월 계약기간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호날두로 끝은 아니고, 외신은 알나스르, 그리고 라이벌 팀인 알 힐랄 등을 중심으로 루카 모드리치, 세르히오 라모스 등의 또 다른 스타들을 데려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호날두 영입 이후엔 국제대회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미 2026 여자아시안컵 본선 유치권을 지난해 말 획득한 사우디는 지난 1일 AFC 총회를 통해 아시아 24개국이 참가하는 2027 남자아시안컵 개최지로 확정됐다.
이어 이번엔 사상 처음으로 클럽월드컵까지 유치한 것이다.
사우디는 이집트, 그리스 등과 연합해 2030년 월드컵 본선 유치도 타진하는 중이다.
사우디의 축구에 대한 투자는 겉으로 보면 긍정적이다.
사우디는 1985년생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최근 집권한 뒤 서부에 500m 짜리 건물을 170km나 늘어트리는 극초대형 건설 사업 네옴시티를 전개하고 있다. 석유 위주의 산업에서 벗어나 국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생겨난 것인데, 이와 맞물려 축구와 스포츠에 대한 투자도 사우디의 국가 정체성 변화와 맞물린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사우디의 이런 투자에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자국의 인권 문제 등을 '스포츠워싱'으로 가리려는 것 아니냐는 뜻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사우디 여성들은 결혼하거나 감옥에서 풀려날 때, 심지어 성·생식기 관련 의료 서비스를 받을 때 모두 남성 보호자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여성 차별이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빈살만 왕세자가 왕실에 비판적이었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암살한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이 일로 인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왕따'로 만들겠다고 거침 없는 발언을 하는 등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사우디가 올해 클럽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되자 성명을 내고 "FIFA가 여자월드컵 후원사로 사우디 관광청을 선정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표현의 자유, 차별,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고려 없이 사우디를 클럽 월드컵 개최국으로 발표했다"며 "FIFA는 사우디의 끔찍한 인권 탄압 전력을 또 한 번 무시했다"고 FIFA와 사우디를 싸잡아 비난했다.
사우디는 자국축구협회가 최근 러시아를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 가입시키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등 스포츠계에서 사실상 러시아 편에 선 것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눈총을 받고 있기도 하다.
다만 FIFA가 이번 클럽월드컵 개최권 부여를 통해 사실상 사우디와 손을 잡는 등 중동 부국의 '오일 머니' 유혹을 받아들이는 단체, 개인들이 적지 않아 사우디의 축구 및 스포츠 투자 움직임과 이에 따른 논란이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AFP, 로이터/연합뉴스
김현기 기자 spitfir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