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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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시구문화.

기사입력 2007.10.29 00:19 / 기사수정 2007.10.29 00:19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야구경기에서는 주심이 본격적인 플레이 볼을 외치기 전에 치르는 행사가 있다. 선발투수가 아닌 초청손님이 마운드로 올라가 볼을 던지는 시구 행사가 바로 그것. 이제 메이저리그는 물론 일본과 한국의 프로리그에서도 본 시합만큼 시구가 화젯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메이저리그의 시구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포스트시즌의 시구를 보면 양국가의 이질적인 시구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두 국가의 시구 문화는 각자의 개념 아래 존중받아야 하겠으나 한편으론 야구적인 측면보다 엔터테인먼트에 치중하는 한국야구의 시구는 아쉬움이 느껴진다.

시구의 의미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면 기념성과 흥미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적으로 시구는 그날 경기를 기리는 개념에서 출발했고 이러한 전통은 현재 메이저리그의 시구 문화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홈팀에서 전설적인 선수로 추앙받는 은퇴한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나와서 후배들의 승리를 기원하며 시구를 던지는 일. 이는 시구자나 오랜 후배 선수들에게 크나큰 감동으로 이어진다.

이는 구단의 역사를 회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왕년의 스타'가 다시 마운드에 서는 모습을 다시 보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이번 2007'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를 맞았던 인사는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60년대에 맹활약한 전설적인 선수인 칼 야스트렘스키였다.

그가 새하얀 백발의 노인이 되어 마운드에 올랐을 때, 현재 보스턴을 응원하는 젊은 세대들은 흘러간 레드삭스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였다. 또한, 야스트렘스키를 기억하는 나이가 지긋한 팬들에겐 옛 향수를 음미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되었다.

이렇게 시구는 단지 이벤트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홈팀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야구와 홈팀을 기리는 감동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또한, 월드시리즈 2차전의 시구자는 야스트렘스키보다 더욱 화제를 불러 모았었다. 바로 텍사스 출신의 13살 소년 앤드류 메든. 그가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극심한 심장병 환자로서 외부로 출입을 거의 못하고 병원에서만 생활해온 안타까운 사연이 있어서였다.

매일 병마와 싸우며 지내온 소년에게 한줄기 빛이 됐던 것은 바로 텍사스 출신의 보스턴 에이스인 조시 베켓이었다. 앤드류는 힘든 심장병 치료 속에서도 베켓의 투구를 보며 희망을 꿈꾸었고 그 꿈은 마침내 보스턴의 마운드에 오르며 현실로 이어졌던 것이다.

워낙 심장병이 심해서 외출도 자유롭지 못했던 앤드류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텍사스로부터 2100마일을 날아와 펜웨이파크의 마운드에 섰다. 이 장면을 본 미국인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야구로 세대를 초월한 역사를 확인해보고, 어려운 현실에 처한 이가 야구를 통해 다시 희망을 쫓는 모습은 바로 시구란 행사를 통해 고스란히 나타났었다. 이는 단순한 행사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짧디짧은 시구 순간만으로도 야구를 되새겨 볼 수 있으며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던져 주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도 예전에는 이런 모습을 간간이 확인할 수 있었다. 병마와 싸우는 어린이들이 시구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추억의 스타들이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반가운 장면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시구 현황을 보면 한국시리즈 1차전 투구에 나선 '마린보이' 박태환을 제외하고는 유명 연예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물론 MLB에서도 할리우드의 유명스타들이 시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그들이 시구로 나서는 것은 포스트시즌 같은 큰 무대가 아니라 정규시즌에서 이벤트를 벌일 때마다 간혹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바로 시구의 흥미성을 알 수 있다. 유명 연예인들이 마운드로 나와 멋진 폼으로 시구를 펼치면 그만큼 많은 관심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 5차전까지의 시구자들은 한국시리즈 1차전과 플레이오프 3차전(정태우 시구)을 제외하고는 모두 요즘 한창 잘나간다는 여자 연예인들의 시구 행사로 이어졌다.

‘홍드로’란 애칭을 얻을 정도로 수준급의 시구를 보여줬던 홍수아의 경우는 야구 팬들의 이목을 끌며 폭발적인 시선을 받았다. 이는 흥미적인 요소로 보면 분명히 긍정적인 효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천편일률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재고해야 될 부분이기도 하다.

홍수아와 ‘랜디 신혜’란 호칭을 얻은 박신혜를 계기로 이제 한국 프로야구의 시구자들은 멋진 외모와 폼을 보여주는 여자연예인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날 경기결과 못지않게 매스컴을 타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바로 시구자들의 모습이다.

흥미적인 요소를 부각시켜 많은 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점은 인정할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정작 시구를 통해 중요하게 여겨질 야구 자체에 대한 향수와 감동적인 느낌을 점점 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가 메이저리그만큼의 유서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25년을 넘어 30년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그 세월동안 수많은 야구팬을 울리고 웃겼던 주인공들의 기억과 야구를 통해 많은 이들이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무대도 분명히 필요한 시점이다.

시구 행사. 흥미성도 중요하지만 스타를 기리고, 인간승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훈훈함이 있다면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

<사진=두산 베어스>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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