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10.23 01:04 / 기사수정 2007.10.23 01:04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설마 했던 일은 결국 현실로 이루어졌다. 22일(한국시간) 펜웨이파크에서 벌어진 보스턴 레드삭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 8회말, 봇물같이 터진 레드삭스 타선의 몰아치기는 7차전까지 이어진 대장정의 ALCS의 마침표를 찍었다. 4차전까지 1승 3패로 절대적인 열세에 몰려있었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1986년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상대로 했을 때와 2004년 뉴욕 양키스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듯이 이번에도 보스턴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패만 당하면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없는 위기상황에서도 레드삭스는 에이스 조시 베켓과 커트 실링의 호투, 그리고 다시 부활한 팀 타선의 집중력을 앞세워 최종 7차전까지 승부를 연장해 갔다. 마지막 승부의 징검다리에서 만난 양 팀의 선발투수는 보스턴의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클리블랜드의 제이크 웨스트브룩. 이번 시리즈에서 보였던 피칭만 놓고 보면 마쓰자카보다 웨스트브룩의 구위가 더 안정적이었다.
보스턴의 지역 언론과 팬들은 마쓰자카의 최종 7차전 등판에 대해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았지만 레드삭스의 프랑코나 감독은 끝까지 마쓰자카에게 신뢰를 보내며 3차전 패배에 대한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인디언스의 타자들은 냉정했었고 마쓰자카의 유인구에 쉽게 방망이가 나가지 않았다. 볼카운트를 늘리며 가급적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주어진 기회를 대량득점으로 몰고 가는 특유의 연타는 끝내 터지지 않았다.
마쓰자카 역시 3차전 패배의 원인을 깨달은 듯, 삼진을 의식한 투구를 버리고 최대한 땅볼을 유도해 맞춰서 잡으려는 실리적인 투구로 임하였다. 그리고 인디언스의 선발인 웨스트브룩역시 초반에는 컨트롤이 안 되며 고전했지만 많은 위기상황에서 최소한의 실점만 내주며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찾아갔다.
웨스트브룩이 주자 진루시, 땅볼을 유도해 병살타로 처리하는 과정은 7차전에서도 적중했다. 초반, 대량득점을 올릴 수 있었던 보스턴의 타선은 병살타로 기회를 살리지 못했으며 위기를 넘긴 웨스트브룩의 구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층 위력을 더해갔다.
6회까지 3-2로 1점차의 리드를 지키고 나간 보스턴의 앞에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이 다가왔다. 7회말부터 등판한 라파엘 베탄코트.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단 한 점도 실점하지 않은 인디언스의 마지막 보루였다. 또한 베탄코트가 뒷문을 확실히 잠가주고 있을 때, 타선은 이에 부응하듯 여지없이 연타를 쳐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었다.
클리블랜드의 월드시리즈 진출에 대한 주사위는 여기서 던져졌다. 베탄코트가 8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주면 연타와 빠른 기동력을 앞세워 동점을 만들고 역전까지 노린다는 전략은 인디언스의 에릭 웨지 감독의 승부수였다.
7회에서 1점차의 승부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점수차다. 보스턴이 확실하게 승부를 잡으려면 반드시 베탄코트란 벽을 넘어야만 했었다. 포스트시즌동안 ‘방탄코트’란 애칭까지 얻으며 무실점의 투수로 군림한 베탄코트를 상대로 득점을 뽑아내면 월드시리즈 티켓은 레드삭스가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팽팽한 저울추가 한쪽으로 서서히 기울어진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인디언스가 자랑한 철옹성의 구원투수는 성역의 자리에서 이탈하고 있었다. 3루수인 케이시 블레이크가 어처구니없는 실책을 범하면서부터.
7회말, 1사에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그동안 주전 중견수로 뛰었던 코코 크리스프 대신 출전한 자코비 엘스버리는 ‘럭키 가이’였다. 좌익수쪽으로 뜬 타구가 인디언스의 3루수인 블레이크와 유격수인 자니 페랄타의 실책으로 이어져 2루까지 진루했던 것은 후에 일어날 결과를 봤을 때 치명적인 실책이 되었다.
바로 이어진 9번 타자 훌리오 루고가 번트로 엘스버리를 3루까지 진출시키자 시리즈 내내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베탄코트는 조금씩 평정심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기의 흐름에 불을 지핀 히어로가 등장한다. 레드삭스의 1번 타자 더스틴 페드로이아. 결코 쳐낼 수 없을 것 같이 보이던 베탄코트의 볼은 페드로이아가 투런 홈런으로 만들어낸다. 1점차의 리드는 대거 3점으로 벌어졌고 8회말에도 등장한 베탄코트는 6실점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클리블랜드의 승부수는 수포로 돌아갔고 보스턴은 월드시리즈 진출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었던 베탄코트를 처절하게 강판시켰다. 결국 양 팀 다 원래대로 예정된 투수로테이션을 이끌어냈지만 후반부에 이어진 불펜싸움에서 진 것이 승부의 분수령이었다. 인디언스가 가장 신뢰한 투수인 베탄코트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지만 마쓰자카의 뒤를 받쳐준 오카지마 히데키는 7차전의 숨은 공신이었다.
또한 보스턴이 ALCS에서 3연패를 당하며 수세에 몰릴 때, 선두타자로서 제 역할을 못해준 페드로이아는 5차전부터 타격 감을 찾기 시작했고 6차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더니 7차전에서 투런 홈런을 포함한 5타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레드삭스 팬들이 그토록 염원한 베탄코트 공략에도 성공해냈다.
1승 3패의 열세적인 조건에서 내리 3연승을 거두며 시리즈의 최종 승자가 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과정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왜 보스턴이 이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답이 명쾌하게 나온다.
우선 클리블랜드의 가장 뼈아픈 점은 믿었던 1, 2선발인 C.C 사바시아와 파우스토 카모나가 단 1승도 거두어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약 이 두 명의 투수가 등판한 4경기에서 반타작인 2승 2패만 했어도 월드시리즈 진출 팀은 레드삭스가 아닌 인디언스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디언스의 타선은 상위타선부터 하위타선까지 고른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무엇보다 팀의 중심타자는 시리즈에서 최소한 2할에 미치는 타율을 보여줘야 된다. 하위타선에서 뽑아내는 득점력도 좋지만 타선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하위타선보단 상위타선에서 득점기회가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4번 타자인 빅터 마르티네스는 제몫을 해줬지만 타선의 중심인 트래비스 해프너가 2할에도 못 미치는 타율을 보이며 맥없이 물러난 것은 보스턴의 가공할 중심타선인 데이비드 오티스와 매니 라미레스가 기록한 4할 대의 타율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5차전에서 조시 베켓에게 철저히 농락당한 이후로는 4차전까지 보인 클리블랜드 타선의 연타능력이 실종된 것도 눈여겨 볼 사항이다. 상대선발의 위력이 제아무리 강하다해도 경기에서 질수는 있지만 현재 유지하고 있는 팀 타선의 응집력까지 상실되면 안 된다. 그러나 클리블랜드는 5차전 이후로 3연승할 때까지 보였던 끈끈한 집중력은 자취를 감추고 수비실책까지 생기면서 거의 다 잡았던 대어를 놓치고 말았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려면 결코 7차전까지 와서는 안 될 분위기였다.
반면, 보스턴 레드삭스는 시리즈의 기로에 서있던 5차전에서 조시 베켓이 호투를 보이며 팀을 승리로 이끈 것이 새로운 흐름을 타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7차전까지 승부를 끌고 온 것이 승리의 원인이 되었다.
이제 콜로라도 로키산맥에서 월드시리즈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상대가 가려졌고, 월드시리즈 1차전은 한국날짜로 25일에 보스턴 펜웨이파크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로키스의 타선은 리그 최고의 에이스 투수인 샌디에이고의 제이크 피비와 애리조나의 브랜던 웹을 패전투수로 만들었다. 과연 보스턴이 자랑하는 ‘포스트시즌의 사나이’ 조시 베켓마저 물리칠지, 아니면 베켓을 앞세운 레드삭스가 로키스의 연승행진에 제동을 걸지의 여부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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