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조은혜 기자) "세이브왕, 홈런왕 타이틀 두 개 다 잡아볼게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야구 그만두기 전까지는 한 번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SSG 랜더스 하재훈이 '다시' 방망이를 잡는다.
미국과 일본을 돌고 돌아 KBO 무대를 밟은 하재훈은 데뷔와 동시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줄곧 섰던 타석이 아닌, 마운드에서였다. 투수를 하라는 구단의 설득이 마뜩잖았지만, 팀의 눈은 정확했다. 투수로 한국 무대 첫발을 내디딘 하재훈은 데뷔 첫해 61경기 59이닝을 소화, 빠르게 마무리 자리에 안착해 평균자책점 1.98, 5승 3홀드 36세이브를 기록하고 2019시즌 구원왕에 올랐다. 팀의 최다 세이브 역사를 갈아치우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화려했던 불꽃은 다시 힘차게 타오르지 못했다. 2020년의 하재훈은 데뷔 시즌만큼의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았고, 어깨 통증이 악화되면서 문학보다 강화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좋아질 거라는 희망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희망이 그리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재훈은 "2020년에도 초반에 아픈데 참고 하다가 탈이 났다. 올해도 초반에 무리해서 올라오려다가 끝났다. 안 되더라. 한 번 간 건 안 돌아오더라. 있을 때 잘하라고 하는데 내가 있을 때 잘 못 해줘서, 그래서 헤어졌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늘 가슴 한편 타자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었어도 타자로의 복귀는 가장 마지막 선택지였다.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건, 미로에 갇힌 듯 돌아도 돌아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재훈은 "작년까지는 나도, 팀도 미련이 있었다. 그런데 회복이 될 줄 알았는데 안 됐다. 재활을 열심히 하면 던질 줄 알았는데 안 되더라. 스피드가 올라오질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돌아올 것 같으면서도 안 돌아오는 찝찝함이 있었다. 내가 이걸 해서 진짜 회복이 되나, 할 수가 있나 확신도 없었다. 그게 좀 힘들었다. 재활하고 회복해서 '충분히 뛸 수 있겠다' 이런 게 있어야 하는데, 팔은 무릎이나 발목처럼 내가 어떻게 해야 어떻게 돌아오겠다는 그런 게 없더라. 내 느낌에는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렇게 하재훈은 마운드를 떠나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야수 전향을 결정한 하재훈은 지난 11월 마무리 캠프에서 투수가 아닌 야수로 첫 훈련을 소화했다. 감회를 묻는 말에 그는 "나는 몰랐는데 주위에서 표정이 달라졌다고 한다. 세이브왕을 했을 때도 이렇게 밝은 표정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운동만 하는데 즐거워 보인다고 그러더라. 제자리를 찾은 거 같다고들 얘기한다"고 답했다.
이미 수 차례의 데뷔전을 경험하도고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하는 처지. 3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선 다른 이들보다 배의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는 "이제 노장 야수"라고 웃으면서도 "격하게 운동을 하고 있다. 3년을 쉬었다. 투수의 몸과 야수의 몸은 180도 달라져야 한다. 투수 몸으로는 야수로 1년도 버티지 못할 수 있다. 지금 제대로 운동 안 하면 캠프에서 처진다. 겨울에 바짝 준비해서 최대한 맞춰놔야 한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이미 하재훈은 투수로서 의미 있는 장면을 남겼다. 세이브왕 출신 타자의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특별한 기록이 된다. 하재훈은 "나는 원래 야수다. 야수가 투수를 한 거였다. 돌아오는 데 큰 무리는 없다고 보는데, 그래도 3년 공백은 처음이다.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1년 반을 넘게 쉰 후였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되더라. 이번에도 하다 보면 될 것 같다"며 "잘하면 좋고, 못해도 본전 아닐까. 응원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마운드에 있었던 하재훈은 이제 마운드를 바라본다. 땅을 고르고, 숨을 고른다. 방향은 다르지만 눈빛은 같다.
사진=SSG 랜더스
조은혜 기자 eunhw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