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세 기자) 정중동(靜中動)이다. 고요한 가운데서도 분명한 움직임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정훈 측과 꾸준하게 논의해 왔다. 성민규 롯데 단장은 "손아섭 선수 측과 협상 중에도 정훈 선수 측과 협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눠 왔다"고 말했다. 29일에는 성 단장과 정훈 에이전트가 직접 만났다. 양측은 협상을 처음 시작한 건 아니라고 밝혔지만, 무리하게 서두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훈 에이전트는 같은 소속인 이대호의 자유계약선수(FA) 계약 당시에도 1월 말까지 신중히 고민했었다. 게다가 또 다른 구단도 정훈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다. 급변하는 시장 상황은 계약 시기에 영향을 준다.
정훈의 FA 첫 시즌은 만 35세부터다. 동갑인 황재균과 백정현은 원 소속 팀에서 4년을 더 뛴다. 한 살 위인 박병호는 3년 계약을 맺었다. 황재균, 박병호와 계약한 KT는 타선의 무게감을 비롯해 공수 양면에서 활약, 더불어 리더십도 생각했다. 정훈은 롯데의 여러 젊은 선수가 고마워하는 베테랑이면서도 공수 양면에서 힘을 실은 주축이다. 이에 대해 롯데와 정훈 측, 또는 다른 구단에서 그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가 중요하다.
정훈은 각 구단에서 가장 많은 1루 수비 이닝을 책임진 10명 가운데 평균대비수비승리기여도(WAA, 스탯티즈 기준)도 4위로 높다. 표본에는 차이가 있지만 강백호, 강진성, 박병호, 양석환, 오재일보다 위다. 양상문 전 감독과 허문회 전 감독 등 여러 현장 관계자들이 정훈의 수비력을 높게 평가했었다. 정훈은 1루만 아니라 중견수로서도 평균은 웃돈다고 평가받은 적 있다. 그동안 내외야 어디든 가리지 않고 전천후 역할을 한 경험이 드러난 결과다.
롯데에는 정훈을 비롯해 1루 수비가 가능한 자원이 여럿 있다. 김민수와 나승엽도 기대주다. 올해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0.386로 맹활약한 김주현도 가능하다. 정훈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1루를 비울 일 자체는 없다. 대안이 있다는 점은, 롯데가 협상 기조를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 롯데가 시장에서 형성된 금액을 받아들이되 무리하게 따라가지는 않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다만 손아섭의 경우에도 드러나듯 대체 자원에게는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다. 롯데도 하루아침에 손아섭이 나오기 어렵다는 걸 안다.
전준우의 1루수 겸업 또는 전향 여부도 관심사다. 애초 전준우는 포지션 변경에 긍정적이었다. 캠프에서도 1루 미트를 끼웠고, 연습경기에도 나섰다. 하지만 당시에는 차기 좌익수가 걱정이었다. 지금 기대주로 떠오른 김재유, 추재현, 신용수, 장두성, 고승민, 조세진은 그때 없었거나 경험이 부족했다. 허 전 감독도 전준우의 1루 수비를 고집하지 않았다. 전준우는 어쩔 수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1루에는 이대호가 서는 날이 많았다. 불혹의 이대호는 건재를 과시했지만 체력 안배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정훈의 입지가 커졌다. 지난해 이대호 다음으로 많은 1루 수비 이닝을 책임진 정훈은 금세 주전 1루수로 거듭났다.
반면 정훈 측에서는 대체가 쉽지 않다는 점을 부각해야 유리하다. 손아섭의 경우에는 취약했던 외야의 구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확장 공사로 인한 변화도 큰 영향을 줬지만, 정훈은 내야수다. 올해 롯데 1루수로 팀 내 최다인 796⅔이닝을 수비했다. 김민수와 나승엽은 100이닝 안팎에 그친다. 대체 자원이 비교적 풍부했던 외야와 양적으로도 조금은 달라 보인다는 평가다.
공격 면에서는 어떨까. 정훈은 최근 2년 동안 주로 중심 타순에 배치돼 왔다. 올 시즌에는 타율 0.292 OPS(출루율+장타율) 0.819, 14홈런 79타점을 쳤다. 조정득점생산(wRC+, 스탯티즈 기준)은 121.9로 전준우, 안치홍에 이어 팀 내 3위인데 최근 2년 동안에는 평균을 웃돈다. 모 구단 단장은 "최근 2, 3년 정도의 성적은 중요하다. 미래 가치를 계산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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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세 기자 kkachi@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