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이창규 기자) ‘너를 닮은 사람’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홍서준이 연기 인생을 되돌아봤다.
'너를 닮은 사람'은 아내와 엄마라는 수식어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여자 정희주(고현정 분)와 그녀와의 짧은 만남으로 제 인생의 조연이 되어버린 또 다른 여자 구해원(신현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홍서준은 부유한 의사인 아내 안민서(장혜진)를 이용해 병원 재단을 넘보는 야심가이자 명석한 변호사인 이형기를 연기했다. 초반에는 어리숙한 모습을 보였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그의 야심이 드러나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이날 홍서준은 연기를 시작한 계기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대학에 들어가기 전 스무 살 때부터 연극을 했고, 학교는 29살에 들어갔다. 가수 활동을 하다 학교를 들어가서 연기에 대한 욕심은 계속 있었다. 그런데 ‘연기를 어떻게 해야하지’ 하면서 방황을 많이 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서른 중반이 되어서 돈을 벌려고 다시 연기를 했다. 95년도에 음반을 냈고, 96년도에 학교를 가서 99년도에 졸업했다. 가정형편도 녹록치 않으니까 노래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도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서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왔는데 그게 2003년이었다”며 “가수로 활동하면서 세상은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걸 깨달았다. 노래할 때 노래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최선을 다해서 퀄리티를 높이는 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걸 배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대에 다시 서기 시작하면서 작은 극단에서 어린이극이나 가족 뮤지컬도 하고 했지만 그런 것들이 저를 채찍질했던 거 같다. 그렇게 성장해서 매체에 늦게 데뷔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처음에 연기를 못 했다면 감독님들이 잘 안 찾게 되지 않나. 하지만 저는 훈련장이 연극 무대여서 너무 좋았다. 연기를 못했던 시절도 많았고, 연기가 뭔지도 몰랐다가 하나씩 깎아나가면서 아직까지도 완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단련하고 있지만, 욕 많이 안 먹고 활동하고 있기에 그 시간이 감사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갑작스럽게 가수 활동을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홍서준은 “연극이 돈이 안된다는 건 알고 있지 않나. 집안 사정이 힘들었기에 가수를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것도 무대 중에 하나니까 중간중간 알바를 했던 시간을 제외하면 무대를 떠나본 적은 없는 것 같다”면서 “당시 형수님께서 소개를 시켜줘서 가수를 했는데, 정식으로 트레이닝을 받지 못하고 어깨너머로 배웠다. 같이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과 모여서 음악 활동을 1년 하고 그만두고 학교에 들어갔다. 돌이켜보면 노래를 그만두길 잘 한 거 같다”고 말했다.
아쉬움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현재로서는 아쉬움도 없고 활동 계획도 없다”면서 “하지만 나중에 조금 더 시간이 나면 트레이닝을 받아서 좋은 뮤지컬에 참여하고 싶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프롤로나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 브라운관 등 매체로 넘어오게 된 계기에 대해서 홍서준은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는데, 장혜진씨와 함께 했던 공연에 참여했던 후배가 남자 동료를 데리고 왔다. 이 친구가 제 연기를 인상깊게 봤던 거 같더라. 1년 뒤에 뭐하냐고 연락이 와서 물어보니 캐스팅 디렉터를 한다고 하더라. 그 때 단막극에서 북한군 장교를 맡은 것이 시작이었고, 신윤섭 감독님의 ‘못난이 주의보’로 본격적으로 매체 연기를 시작했다. 그 때부터 조금씩 먹고 살았던 거 같다. 민연홍 감독님과도 현재 신작을 찍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출연 욕심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사실은 작년에 상업영화를 처음으로 찍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개봉 못하고 있다. 거기서도 변호사 역할이긴 하다. (웃음) 누구나 그렇겠지만, 영화는 언제든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기회가 되면 최선을 다해서 할 건데, 좋은 기회가 올 것 같다”며 신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홍서준은 ‘사’자가 붙는 직업을 가진 캐릭터들을 자주 연기하는 대표적인 배우다. 그는 “‘왕이 된 남자’를 촬영할 때 형조판서가 뭔가 하고 찾아보니까 법관이라더라. 제 얼굴이 딱딱해 보이나보다. 차갑고 냉철한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변에서는 저보고 바보라고 할 정도”라면서 “그래도 제게 주어진 거니까, 제 몫이니까 즐겁게 감사히 하고 있다. 또 다른 분들이 길에서 걸어다닐 때 저는 항상 차를 타고 다녀서 저와 맞는 거 같다. 겨울에 촬영할 때 너무 좋다”며 웃었다.
8월 초에 ‘너를 닮은 사람’의 촬영을 마친 그는 평소 쉬는 시간에는 육아에 전념한다며 “아이들이 각각 7살, 4살인데 제가 일을 하고 있어서 아내가 쉬질 못한다. 그래서 운동을 하거나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99% 육아에 시간을 쏟는다”고 말했다.
홍서준은 드라마가 방영 중인 상황에서도 최근 막을 내린 연극 ‘무지개의 끝’으로 무대에 오른 바 있다. 그는 무대에 서는 걸 잊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매체 연기는 거의 혼자서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연기 선생님을 두고 하는 분도 계시지만, 결국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기 자신을 생각한대로 연기하기 때문에 균형을 잃을 수 있다. 반면 무대는 공동작업이다. 상대방의 다른 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제 스스로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전했다.
그는 ”매체 연기를 계속하다보면 놓치는 부분들이 굉장히 많다. 퇴화되는 것처럼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데 무대를 하게 되면 그것들이 살아난다. 그래서 이 둘은 굉장히 상호보완적이다. 매체를 통해서 재화를 벌어들이고 무대에서 부족한 부분을 충전해서 다시 매체로 가는 과정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발전이 없으면 결국 자기 복제가 시작될 것 같다. 늘 같은 역할이 들어오기 때문에 어떻게든 다른 연기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다른 분들은 똑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그렇기에 꼭 해야 하는 분야인 것 같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사실 드라마 촬영하고 공연까지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인데, 온전히 한 공연만 집중적으로 하고 나면 많은 걸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배우로서의 목표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옛날에는 할리우드 가는 게 목표라고 했는데, 지금은 그냥 작은 즐거움이 될 것 같다”며 “저는 ‘정말 저 작품은 잘 했다’, 작품 안에 제가 녹아들어서 ‘너가 작품 하나 남기고 가는구나’ 하는 작품을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작품과 하나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사진= 박지영 기자
이창규 기자 skywalkerle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