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데뷔 21년차 배우 조은지가 '장르만 로맨스'를 통해 처음으로 상업영화 연출에 도전했다. 20여 년간 TV와 스크린에서 자유롭게 펼쳐왔던 개성들을 메가폰을 통해 조금 더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다가가고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2년여의 기다림 끝에 지난 17일 '장르만 로맨스'가 개봉했다. 2019년 6월 '입술은 안돼요'라는 가제로 촬영을 시작해 9월 크랭크업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 11월 관객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영화는 개봉 후 관객들의 호평 속 21일까지 33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꾸준히 흥행 중이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은지 감독은 개봉을 기다렸던 시간을 떠올리며 "관객 분들이 많이, 같이 공감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죠. 코로나의 벽이 분명히 있긴 했고, 그런 지점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긴 했으니까요. 그래도 저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름대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말을 꺼냈다.
연예계 생활 21년차 베테랑 배우에, 2017년 제16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단편 '2박 3일' 연출 등 다재다능함을 뽐내왔던 조은지 감독에게도 장편 연출은 또 다른 도전의 영역이었다.
오전에는 화상 인터뷰로, 오후에는 오랜만에 취재진을 가까이에서 직접 마주하며 '장르만 로맨스' 이야기를 전하던 조은지 감독은 "이렇게 주목을 받아본 것이 처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제가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까' 생각도 들고, 제 자신이 어떤 감정으로 있어야 될 지를 잘 모르겠어요. 아휴, 여러 감정이 왔다 갔다 하네요"라며 미소 짓던 얼굴 속 종종 두 눈을 질끈 감아 보이며 속내를 전했다.
연출 제의를 받고 도전을 결정한 이후부터 촬영, 영화를 완성한 후 개봉을 기다리며 작품을 알리고 있는 지금까지 조은지 감독은 "많은 분들이 저의 삶과 인생을 응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고마움을 표하며 '장르만 로맨스'와 함께 한 시간들을 떠올렸다.
"연출 제의를 받고, 한 달 동안 각색 작업을 했었죠. 제작사 대표님(비리프 백경숙 대표)에게 보여드리고, 결이 맞는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며칠 고민하다 연출을 맡게 된 것이거든요. 이야기가 워낙 명확하게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지점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없었고요.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마음속에서는 '하고 싶다, 해야겠다'는 마음이 크게 들었었죠.
제작사 대표님을 비롯해 연출부 스태프들까지, 주변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줬었어요. 제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드는 작품이죠. 촬영할 때 예기치 못한 애드리브가 터질 때마다 참 많이 웃기도 했거든요. 제가 생각했던 그림들과 배우들의 연기가 맞아떨어졌을 때, 순모(김희원 분)는 울고 있는데 저는 웃는, 그런 느낌들을 참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웃음)"
"연출을 했을 때 제 모습은 사실, 어떤 경주마 같은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좀 여유가 없다고 느꼈었죠. 뒤돌아보니, 캐릭터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 더 설명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많이 반성했어요"라고 말한 조은지 감독은 작품을 함께 해 준 선배이자 후배인 동료 배우들에게도 아낌없는 고마움을 전했다.
"현장에서 제가 망아지처럼 뛰어다녔어야 하는데, 경주마처럼 저를 옭아맸던 것 같아요. 저 스스로에 대한 부담이 커서, 스스로 했던 확신만큼이나 의심도 많이 했죠. 제가 그러고 있을 때 배우 분들이 정말 많이 도움을 주셨어요. 류승룡 선배님은 이전에도 친분이 있었지만, 이번 작품으로 인해서 더 고마움을 많이 느꼈고 인생 선배로서도 굉장히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배려심이 정말 깊으시거든요. 현장도 정말 세세하게 잘 챙겨주셨어요.
(오)나라 선배님도 마찬가지고요. 나라 선배님이 라디오에서 '배우로 만났으면 후배였을 텐데, 이젠 감독님이 됐다. 저한테는 영원히 언니가 되는 거다. (밥) 얻어먹을 것이다'라고 말하셨던데, 얼마 전에도 제게 진짜 '언니'라고 하시기에, 저도 '나라 동생 왔어?'라고 말했었죠.(웃음) 제가 아무리 많은 얘기를 했었어도 배우 분들이 그 캐릭터를 구현하지 못했다면 이 작품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죠."
촬영 기간 내내 고민의 흔적이 깊었던 만큼, 조은지 감독은 삭발 헤어스타일로 마음을 다잡고자 했다. 조은지 감독은 "어떻게 보면 장기간 제가 연출을 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뭔가 그게 조금 더 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했었고요. (오)정세 오빠가 삭발한 것을 보더니 '지금까지 헤어스타일 중 제일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라며 영화에 김현(류승룡)의 동료 작가 남진 역으로 출연해 남다른 존재감을 더해준 절친한 동료 오정세와의 에피소드를 전하며 환하게 웃었다.
삭발과 함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스도쿠를 하며 다시 집중할 수 있는 힘을 키웠다고 전하며 다시 쑥스럽게 미소 지은 조은지 감독은 "스도쿠를 하고 있는 시간 동안은 '여기 이 칸에는 뭐가 들어가야 하지' 이러면서 뭔가 다른 쪽으로 고민을 하게 되니까요"라며 다시 한 번 지난 시간을 되짚었다.
'장편 연출에 도전한 것도 결국은 스스로가 벌인 일이다'는 넉살 어린 농담에 조은지 감독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그러니까요"라면서 찡긋하는 표정을 지은 뒤 "그래서 사실 개봉 날이 다가와도 '이제 내 손을 떠났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계속 조마조마하고요. 그래도 이렇게 같이 고생한 저희 배우 분들이 영화를 너무나 좋아해주시니까, 그만큼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커지는 것 같아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돌아보면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크게 남는 시간들이지만, 보는 이들에게 '영화가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더없이 만족한다고 쑥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희 영화가 코미디라는 어떤 장르를 가지고 있지만, 제가 연출을 할 때도 그랬고 그 안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제겐 1번이었거든요. 그런 지점이 보시는 분들에게 잘 닿았으면 좋겠죠. 각각의 모든 배우들의 감정이 투영된 부분들이 있어서, 어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그 지점들이 새롭게 보일 수 있고 또 새롭게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에요. 6명 인물들의 감정선을 그렇게 바라봐주셨으면 좋겠고, 그래서 더 여러 번 봐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애정을 담아 영화를 알렸다.
감독에 이은, 배우 조은지로의 활동과 도전도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장르만 로맨스' 개봉 전에도 JTBC 드라마 '인간실격'을 통해 배우로 시청자들을 만나기도 한 조은지 감독은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한정되고 소모된다는 점을 알아서, 다른 어떤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죠. 1년 정도 그 캐릭터를 찾아다니는 시간들이 있었어요. 그런 저의 절실함을 봐주셔서 그렇게 작품에 선택을 받기도 했고요. 그렇게 거의 휴식 없이 몇 달, 혹은 1년 가까이는 저 나름대로 제가 자신에게 스스로 도전을 했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계속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죠"라고 의지를 다졌다.
사진 = 엑스포츠뉴스 김한준 기자, NEW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