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최희재 기자) '악마판사'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2일 종영한 tvN 주말 드라마 '악마판사'는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라이브 법정 쇼를 통해 정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드라마. 캐릭터 한명 한명이 존재감을 발하며 드라마의 탄탄한 스토리를 이끌었다.
'악마판사'는 각 에피소드마다 강렬한 내용으로 주목을 받았다. 정체불명의 역병, 독재정권을 떠올리게 하는 사회 분위기, 폭발물 테러 사건, 권력자들의 파렴치한 뒷모습, 고위층 자녀의 갑질 사건, 남자 연예인의 성범죄, 혐오 콘텐츠로 돈을 버는 크리에이터, 고립된 주민들 등 '가상의 디스토피아'지만 과거 그리고 현재와 멀지 않은 이야기들을 다뤄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이 드라마를 끌고 가는 주제는 '죗값'이다. 스타 판사 강요한(지성 분)은 국민 시범 재판을 통해 범죄자들에게 선고를 내린다. 시범 재판은 실시간으로 이뤄지며 국민들이 어플을 통해 직접 투표, 그에 맞게 강요한이 판결을 내리는 시스템이다. 오직 국민의 뜻으로 미디어 재판을 감행하는 것이다.
'악마판사' 최종회에서 김가온(진영)은 권력자들이 가장 은밀하게 숨겨둔 꿈터전 병원에 잠입해 실상을 파헤쳤다. 병원에는 가난한 동네에 살던 국민들이 남녀노소 잡혀와 실험체로 쓰이고 있었다. 이후 배신자 민정호(안내상)과 함께 자폭하려던 김가온은 민정호를 풀어주며 속죄할 기회를 줬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했던 민정호는 다른 의미로 역사에 남게 됐다. 죽은 줄 알았던 강요한(지성)은 다시 국민 재판을 열었고 국민들이 투표한 유죄 비율은 무려 99%에 달했다. 선착순 한 명만 살려주겠다는 강요한의 말에 이들은 모두 추악한 모습으로 서로의 발목을 잡았고, 강요한은 10년 전 성당 화재 사건을 떠올렸다.
무고한 생명을 한없이 경시했던 이들은 자신의 삶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처절하게 싸웠다. 스스로 죄를 뉘우친 이는 정선아(김민정) 뿐이었다. 결국 강요한은 '국가'와 '복지 재단'이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를 뒤집어 쓴 이들에게 허무한 죽음을 선사했다. 강요한은 스스로를 '악마'라 칭하며 함께 사라지는 듯 했으나 통쾌한 복수 후 '마법사'처럼 살아남아 한국을 떠났다.
부패한 권력자들은 창피를 모르고 날뛰고 강요한을 이용하려들지만 강요한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에서 나는 놈을 맡고 있다. 첫 회부터 강요한은 피고에게 금고 235년형을 내리는가 하면 태형 30대, 미국 교도소와의 MOU 체결 후 이관, 사형 집행 등 예상을 빗겨가는 속시원한 판결로 화제를 모았다.
또한 시범 재판은 범인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부터 처벌을 받는 과정까지 라이브로 진행, 국민들이 지켜보게 했다.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실제 대한민국이라면 집행유예에 그치고 말았을 것들이 '범죄'로 다뤄지는 것을 보면서 통쾌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악마판사'는 전직 판사 출신 문유석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이에 시청자들은 "문유석 작가님 판사 시절에 많이 답답하셨나", "소원 성취 대리 만족 드라마", "퇴사한 후가 더 무섭다" 등의 유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시범 재판의 잔혹성에만 열광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 어린 아이들이 처벌 장면을 보고 따라하기도 했다. 강요한은 사이비 종교 수준이 됐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그러나 이 디스토피아의 대통령 허중세(백현진)는 소위 '사이다 발언'으로 지지를 얻어 대통령까지 된 인물이었다.
이후 허중세의 심복이었던 죽창(김충식)이 정치 같지 않은 정치에 개입하면서 죄 없는 국민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처럼 '악마판사'는 현실성을 왔다 갔다하며 정의와 옳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말이 되지만 말이 안 되는, 말이 안 되는데 되게 만드는 내용을 배우들이 만들어갔다. 지성, 김민정, 진영, 박규영, 장영남, 김재경, 이소영, 안내상, 백현진, 홍서준, 이기택까지, 모든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며 몰입도를 높였고, 각 캐릭터마다의 케미도 보는 재미를 더했다. 특히 지성과 진영은 부장판사와 좌배석판사, 선과 악처럼 절대로 친해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남다른 브로맨스로 이목을 모았다.
또 '악마판사'에는 다양한 여성 인물들의 존재감이 돋보였다. 기존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캐릭터'와 서사가 있었기 때문. 정선아와 차경희(장영남)은 빌런으로 활약했다. 김민정은 첫 방송 전에 진행한 제작발표회에서 악녀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았다. '악녀'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 전형성과 진부함에서 벗어났다.
사회적 책임 재단의 실세인 정선아와 법무부 장관 차경희의 공통점은 '야망'이다. 어릴적 강요한의 집에서 하녀로 일했던 정선아는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맘대로 주무르고,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죄책감 없이 치워버린다. 그게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이라도 말이다.
또 윤수현(박규영)은 김가온의 오랜 친구이자 광역수사대의 에이스 형사로, '악마판사'에서 가장 선(善)의 얼굴을 하고 있다. 어린 학생이 성인 남성들에게 위협 당하는 걸 본 윤수현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차에서 뛰어내린다. 또 흔들리는 김가온을 잡아주며 옳은 길로 이끈다.
오진주(김재경)은 푼수 매력이 넘치는 아이돌 비주얼의 우배석 판사지만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 그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하는, 또 잘못을 빠르게 인정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이목을 모았다. 뻔하게 만들었다면 오진주는 '민폐캐'가 되었겠지만 '악마판사'에서는 말 그대로 진주 같은 캐릭터가 됐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차경희, 윤수현, 정선아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차경희, 실험체로 이용 당하는 아이들을 본 후 자신의 죄를 돌아본 정선아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윤수현은 뜬금없이 총을 맞고 죽임을 당했고, 김가온을 각성시키는 소재로 쓰였다. 많은 사람을 구할 것이라고 생각해 정선아의 꾐에 넘어갔다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다시 지성, 진영의 곁에 섰던 오진주 또한 마지막회에서 다시 지방으로 내려간다. 서울에 올라왔을 때 '기회'라고 말했던 오진주의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혼자가 된 김가온은 부패한 국가 기관과 권력자들, 언론 등 크게 바뀌지 않은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러나 자신을 스치듯 찾아온 강요한과 무언의 인사를 나누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악마판사'는 '광기의 시대'에 책임을 지려는 이들이 남았고, 또 다른 악마들과 싸울 것을 암시했다.
현실과 판타지, 통쾌와 불쾌, 죄와 속죄를 넘나드는 '악마판사' 종영에 많은 시청자들이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사진=tvN 방송화면
최희재 기자 jupit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