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5.25 19:57 / 기사수정 2007.05.25 19:57
[엑스포츠뉴스 = 고동현 기자]
# 상황 1- 2006년 4월 26일 광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의 대결. 3-2로 SK가 한 점 앞선 가운데 KIA가 7회말 공격에서 2사 만루 찬스를 잡았다. 이 상황에서 타자가 때린 공은 좌익수 쪽의 평범한 타구. 그러나 SK 좌익수 정근우는 그만 공을 글러브에서 떨어뜨리고 만다. 만루 상황이었다보니, 내준 점수를 불보듯 뻔한 일. 경기는 KIA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 상황 2- 이번에는 1년여가 흐른 뒤인 2007년 5월 20일 열린 SK-현대 유니콘스의 경기. SK는 선발투수 케니 레이번의 호투를 발판으로 9회까지 2-0으로 앞섰고 2사 후 상황에서 현대의 클리프 브룸바가 때린 타구는 유격수쪽으로 흘렀다. 그러나 SK 유격수 정근우는 공을 뒤로 빠뜨렸고 이후 송지만이 극적인 동점 홈런을 때려내며 경기는 연장전으로 흘러갔다.
# 상황 3- 그리고 5월 24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SK의 경기. SK 유격수로 선발 출장한 정근우는 1회말 수비에서 쉽게 잡을 수 있는 플라이 타구를 안타로 둔갑시키며 마운드에 서 있던 최상덕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정근우는 3회말 수비에서도 실책을 저지르며 결국 경기도중 나주환과 교체됐다.
위에서 설명한 상황들은 프로야구에서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경우들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공간이라는 프로야구지만 실책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정근우, 그리고 정근우에 대한 SK의 고민을 바로 알려주는 상황들이다.
정근우, 3년간 5개 포지션 소화…자리도 매해 이동
정근우는 고려대를 졸업한 후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SK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이후 정근우는 조범현 전 SK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데뷔 첫 해부터 주전 3루수 자리를 꿰찼다. 당시 SK의 3루수 자리가 비어있기도 했지만 정근우의 근성 있고 활기 넘치는 플레이가 조범현 감독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수비는 둘째치고 1번 타자로서 전혀 역할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근우는 시즌 중반 2군으로 떨어졌고 1할대 타율로 데뷔 첫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이것의 정근우의 본모습은 아니었다. '2006년 정근우'는 '2005시즌 정근우'가 권토중래한 모습이었다.
정근우는 2006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지만 다른 선수들의 부진과 부상을 발판삼아 1군 엔트리에 다시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고 뛰어난 공격력을 선보였다. 시즌 초반 중견수와 좌익수, 2루수를 옮겨다니던 정근우는 기존 SK 주전 2루수였던 정경배의 부진을 틈타 주전 2루수에 안착했고 2006년 SK의 유일한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07시즌. 지난 4년간 SK를 이끌었던 조범현 감독이 물러나고 그의 스승인 김성근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에 올랐다. 김성근 감독은 팀을 전면개편하기 시작했고 정근우 역시 그 대상자였다.
이에 정근우는 잠시나마 자신의 보금자리였던 2루수 자리를 떠나 유격수로 자리를 옮겼다. 비록 2006시즌에는 부진했지만 공격력이 좋은 2루수인 정경배와 정근우를 함께 쓰겠다는 김성근 감독의 복안이었다.
일단 정근우의 올 시즌 공격 성적을 살펴보고 있으면 SK로서는 흐뭇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 24일까지 타율 .333, 5홈런, 15타점, 6도루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빠른 발과 함께 5개의 홈런을 때려낼 정도로 장타력까지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김성근 감독은 정근우를 1번 타자는 물론이고 3번, 5번 등 중심타선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SK가 정근우에게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정근우의 수비는 마치 외줄타기를 보는 것과 같다. 10개의 실책으로 이원석(롯데)과 함께 실책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는 정근우는 기록된 실책 외에도 여러 차례의 불안한 수비로 SK 코칭스태프와 마운드에 서 있는 선수들의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그리고 '수비의 핵'이라는 유격수 자리가 불안하다 보니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도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타석에서는 '복덩이', 수비에서는 '미운오리새끼'가 되고 있는 요즘의 정근우다. 그리고 정근우의 이러한 모습을 바로 보여준 것이 위에 <# 상황 2>다. 정근우의 실책 후 현대의 극적인 동점 투런 홈런이 나오며 연장전에 접어든 그날 경기를 끝낸 선수 역시 정근우였기 때문이다. 정근우는 9회에 이어 10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현대 선발투수 미키 캘러웨이의 공을 받아쳐 좌측담장을 넘어가는 끝내기 홈런을 날려 SK 코칭스태프와 선수, 그리고 팬들을 울리고 웃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SK의 고민은 나날이 늘어갈 수밖에 없다. 정근우가 가장 안정적인 수비를 보이는 2루수 자리에는 정경배가 버티고 있으며 정근우 대신 유격수를 볼 수 있는 선수인 나주환 역시 정근우보다는 낫지만 최근 몇 년간 3루수와 2루수로 많이 출장해 유격수 자리에서 만족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진영, 박재홍을 비롯해 올 시즌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박재상, 조동화, 김강민이 버티고 있는 외야수로 돌리기에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은 정근우의 수비가 향상되기만을 바라며 현재와 똑같이 가는 것과, 정근우를 2루수로 돌리고 유격수로는 트레이드로 데려온 나주환을 넣는 것뿐이다. 하지만, 첫 번째 선택을 한다면 내야의 수비 불안을 1년 내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두 번째 선택을 하게 된다면 공격력의 약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올 시즌 정경배가 타율 .224, 1홈런, 13타점으로 부진하다지만 나주환보다 공격력에서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격을 보강하자니 수비가 불안하고, 수비에 가중치를 두자니 공격력이 떨어지고. 이래저래 정근우 때문에 딜레마인 SK다.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 뉴스
실시간 인기 기사
엑's 이슈
주간 인기 기사
화보
통합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