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1970.01.01 09:00 / 기사수정 2010.12.23 22:32
집 앞 편의점 행사로 구매한 C사의 콜라에 L사의 사이다를 동시에 얻었는데 공짜라는 사실에 기쁜 나머지 실수로 마시다 만 사이다에 콜라를 조금 따른 것이다. 맛은 심하게 변하지 않았지만, 어느덧 투명했던 사이다가 콜라 덕분에 조금씩 어두워지다가 나중에는 본연의 색채를 잃었다는 사실에 순간 기분이 상했다. 톡 쏘는 맛은 그대로였지만, 오묘하게 다른 맛을 자랑하는 두 음료수가 섞였으니 맛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날은 그냥 기분이 상했다.
이 상황에서 필자는 엉뚱한 상상을 하나 해봤다. 콜라와 사이다가 섞인 것을 축구에 대입했는데 정말인지 딱 들어맞는 팀이 있었다.
그 팀은 뛰어난 지도자 아래서 정말 잘 나가고 있었다. 경기력이 완벽하지 않아도 끈끈함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경기 운용을 했고 이에 소위 잘 나가는 팀을 모두 꺾으며 자국 역사상 최초로 3관왕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이 팀이 한 시즌 아니 불과 6개월도 안돼서 확 변했다. 위엄 있던 모습은 어느새 실종됐고 승리 공식을 잊은 듯 결과와 내용 면에서 모두 실망감만 안겨주고 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필자가 말하는 팀은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절대 강자였던 인테르 밀란이다.
지난 시즌 인테르는 AS 로마의 추격을 뿌리치고 리그와 코파 이탈리아 컵에서 모두 우승했고, 첼시와 CSKA 모스크바, FC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을 격파하며 챔스 우승에도 성공했다. 이에 그들은 이탈리아 클럽 사상 최초로 트레블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트레블 직후 인테르는 팀의 사령탑 주제 무리뉴를 레알 마드리드로 보냈고, 설상가상 전력 보강에도 실패하며 시즌을 기약하게 됐다. 무리뉴의 공백은 리버풀 감독이었던 라파 베니테스를 데려오며 어느 정도 메우는 듯싶었으나 베니테스호의 행보를 고려하면 만족스럽지 못하다. 나아가 인테르 본연의 색채를 잃어버려 고전하고 있다.
무리뉴의 인테르, 하나의 팀으로 변모하며 트레블 달성하다
지난 2008년 여름 인테르 사령탑으로 부임한 무리뉴는 첫 시즌 챔스 16강 탈락이라는 오명을 썼지만, 상대가 디펜딩 챔피언 맨유였고 결과는 아쉽지만, 내용 면에서 대등했다는 점에서 위안이 됐다. 나아가 리그에서도 우승하며 챔스 8강 진출 실패라는 오명을 조금은 씻었다. 당시 인테르는 2위 유벤투스와 AC 밀란을 승점 10점 차로 제치며 당당히 스쿠데토를 들어올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음 시즌 인테르는 도박을 하게 된다. 물론 무리뉴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 된지는 알 수 없지만, 팀의 주포이자 에이스였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바르사로 보내는 대신 사뮈엘 에토와 현금을 받고 레알에서 자리를 잃어 가던 베슬리 스네이더르라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영입했다. 제노아에서는 각각 디에고 밀리토와 티아구 모타를 데려왔고, 바이에른에서는 브라질 대표팀 주장 루시우를 영입했다.
즐라탄이 빠진 인테르는 다른 포지션 보강에는 성공했지만, 반신반의했다. 그 정도로 인테르에서 즐라탄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았다. 이브라카다브라라는 애칭에서 드러나듯 즐라탄이 공을 잡으면 인테르는 무언가 할 것 같았다. 아니 이뤘다. 바르사 입단 전 시즌 즐라탄이 25득점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것만 봐도 그의 존재감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무리뉴의 인테르는 강했다. 챔스 조별예선 바르사와의 경기에서 1무 1패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첼시와 CSKA 모스크바를 차례로 격파하고 나서 바르사와 리턴 매치를 했을 때 인테르는 끈끈한 전력을 바탕으로 종합 3-2로 바르사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당시 무리뉴는 점유율은 내줄지라도 막강한 수비야말로 최상의 공격이라는 전략을 통해 바르사를 틀어막았고, 크랙의 부재라는 우려에도 주축 선수들이 전력을 기울이며 트레블이란 성적표를 얻어냈다.
베니테스와 인테르, 잘못된 만남
2010년 여름, 무리뉴의 시대가 저물자 인테르는 베니테스를 신임 사령탑으로 앉혔다.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를 바탕으로 비교적 선전한 베니테스는 전 시즌 자신의 팀 리버풀을 리그 7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마쳤음에도, 그동안 인상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줘 무리뉴 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팀을 잘 이끌 것으로 보였다.
반신반의한 상황에서 시즌을 시작한 인테르는 리그 초반 디펜딩 챔피언의 위엄을 조금이나마 보여주며 선두권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게 다였다. 5라운드 로마전 패배를 시작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하더니 비교적 쉬운 상대인 삼프도리아, 브레시아, 레체를 상대로 승점 1점을 따내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밀란 더비와 키에보전에서 모두 패하며 어느새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이를 만회하고자 파르마와의 홈 경기에서 5-2로 승리하며 부활하는 듯 보였지만, 라치오 원정에서 1-3으로 패하며 15라운드가 진행된 현재 리그 6위를 기록 중이다. 이마저도 7, 8위 삼프도리아, AS 로마와 동률을 이루고 있고 제노아 키에보의 추격을 받고 있어서 장거리 원정인 클럽 월드컵 일정을 모두 소화하면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혹자는 무리뉴도 첫 시즌에는 그저 그랬다는 평을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무리뉴는 리그 우승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베니테스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영원한 맞수 AC 밀란은 어느덧 1위 안정권에 들어서며 고공비행 중이고 한물갔다는 평을 받던 유벤투스도 부활의 전주곡을 울리며 순항 중이다. 라치오와 나폴리, 팔레르모도 선전하고 있기에 냉정하게 말해 인테르가 이들을 꺾고 상위권 도약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베니테스의 인테르가 부진한 원인한 원인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베니테스 자신과는 상관없이 인테르에 불어 닥친 부상 악령이다. 주축 선수들이 돌아오긴 했지만, 현재 인테르는 마이콘과 왈테르 사무엘이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에 신임 사령탑 베니테스는 팀에 대한 정비를 채 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선수 구성에 애를 먹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베니테스 자신과 관련한 문제다. 베니테스는 점유율 축구를 선호하는데 이는 인테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전술의 유연성이 떨어져 상대 팀을 공략하는데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베니테스식 축구를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2선에서 완벽한 공 배급으로 공격을 풀어나갈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와 수비적인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윙 포워드가 절실한데 현재 인테르에는 이런 선수가 없다.
스네이더르는 창의적인 움직임은 돋보이지만, 베니테스의 성격에 맞지 않으며 최전방 공격수 밀리토 역시 이에 해당한다. 마이콘을 측면 미드필더로 올리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번 시즌 마이콘은 좀처럼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나마 에토오가 고군분투하지만, 축구는 팀 스포츠지 개인 스포츠가 아니라 판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무리뉴가 상대의 공간을 틀어막으며 철옹성 같은 수비력을 보여준 것과 대조적으로 베니테스는 무리하게 전진하는 형태를 보여줘 뒷공간을 내줘 실점하는 때도 비일비재했다.
지난 주말 열린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마우로 사라테에 두 번째 실점을 하는 과정에서 인테르의 수비진은 오프사이드 트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왼쪽 측면에 있던 사라타에 공간을 내줬고 이는 곧바로 추가 득점으로 연결돼 1-3으로 패했다. 이는 지난 토트넘과의 챔스 조별 예선에서도 드러났는데 빠른 발을 자랑하는 가레스 베일에 뒷공간을 내준 인테르는 소위 오른쪽 측면이 털렸다 싶을 정도로 베일에 농락당하며 무릎을 꿇었다.
애초 인테르는 베니테스를 선임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 개편과 성적 유지를 원했을 것이다. 물론,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며 인테르의 전성기를 가져온 무리뉴와 비교된다는 점에서 베니테스는 불운의 사니이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반복된 실패와 성적 부진 나아가 짧은 시간 안에 선수들의 폼이 급격히 저하된 점은 '베니테스의 방식이 인테르에 적합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사진= 베니테스와 캄비아소 (C) UEFA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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