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나금주 기자] '선녀들-리턴즈' 설민석이 여몽연합군에 맞섰던 삼별초에 관해 밝혔다.
29일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65회에서는 전현무, 설민석, 김종민, 유병재, 정태우가 제주도에서 고려 역사를 공부했다.
이날 설민석은 몽골군의 총사령관 살리타를 막아낸 김윤후에 관해 밝혔다. 설민석은 "기록에 따르면 승려다. 몽골의 2차 침입을 막은 거다"라며 "김윤후는 용인 처인성에서 활로 적장 살리타를 꿰뚫었다. 그러자 강화도에 있던 왕이 상장군 벼슬을 내린다"라고 밝혔다. 설민석은 "그런데 김윤후는 '저 활 없었다. 제가 죽인 거 아니다. 제 부하들이 죽인 거다'라며 부하들에게 공을 돌린다"라고 했다.
하지만 몽골의 침략은 계속됐다. 설민석은 "몽골 3차 침입 때 팔만대장경을 만든다. 그런데 몽골군이 갑자기 철군했다. 몽골의 칸이 죽는다. 장례 지내고 새로운 칸을 모셔야 했다. 그게 4차 침입이었다. 그런데 또 쳐들어온다. 길목에 충주성이 있었다. 그때도 김윤후가 있었다. 변방 지휘관으로 발령받아서 변방에서 전투하다가 충주에 나타난 거다. 그리고 백성들과 함께 몽골군을 막았다"라고 밝혔다.
6차 침략은 피해가 심각했다. 몽골의 요구는 태자 입조. 태자의 병을 핑계로 거부하다가 태자를 몽골로 보낸다. 그런데 태자가 만나야 할 몽케 칸이 죽었다. 태자에겐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고려로 돌아가거나, 당시 실세인 몽케 칸의 동생 아릭 부케를 찾아가거나 또 다른 칸의 후보 쿠빌라이와 손을 잡는 것이었다. 설민석은 "원종은 미래에 투자했다. 자기 판단으로 쿠빌라이를 찾아갔다. 제일 놀란 게 쿠빌라이였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설민석은 "그러다 원종 아버지 고종이 승하했단 소식이 들려왔다. 원종이 고려로 귀국해야 하는 상황. 쿠빌라이는 고려의 태자를 호위해서 정중히 모시라고 한다"라고 했다. 설민석은 "포장을 잘하면 형제인데, 군신관계였다. 보통 승전국이 패전국한테 요구하는데, 원종이 쿠빌라이에게 6가지 요구 조건을 보낸다. 쿠빌라이는 나머지는 모두 수락하고, 6번 조항은 부분적으로 수용한다"라고 밝혔다. 원종은 몽골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태자를 혼인시킨다.
이어 설민석은 삼별초의 항몽에 관해 밝혔다. 설민석은 "삼별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항몽이지 않냐. 원래는 최우가 만든 사병집단이었다. 최고의 특급 전사만 뽑았다고 해서 '뽑을 초'를 썼다"라고 설명했다. 설민석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항몽을 하고 있었는데, 태자가 돌아오더니 속국이 되겠다고 한 거다. 개경 환도, 삼별초 해산 명령이 떨어졌다. 거기다 삼별초 명단을 명나라에 제출하라고 했다"라고 밝혔다.
이에 배중손 장군은 강화도의 백성들과 삼별초를 모아 봉기하고, 새로운 왕 왕온을 옹립했다. 삼별초는 여몽연합군을 격퇴하고, 전라도, 경상도를 점령해서 세력 확보에 나섰다. 원종은 관군을 제주도로 보냈지만, 삼별초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제주도민들의 지원이 있었다고. 원종은 배중손을 회유하지만, 배중손은 두 가지 조건을 걸었다. 전라도 지역을 주고, 몽골군은 철수하란 조건이었다.
그런 가운데 선녀들은 삼별초가 세운 대몽항쟁 최후 거점지인 항파두리성으로 향했다. 설민석은 "여몽연합군이 진도를 공격한단 소식이 들렸다. 삼별초는 모든 병력을 벽파진 전방으로 집결시켰지만, 여몽연합군은 사방에서 공격을 했다"라고 밝혔다. 설민석은 "여몽연합군은 피난을 가던 왕온부터 참살한다. 배중손 장군은 끝까지 항전하다가 목숨을 잃게 된다. 김통정 장군이 남은 패잔병을 이끌고 제주도로 온다"라고 했다. 유병재는 "제주도민이 삼별초에 호의적이었는데, 막상 주둔 기간이 길어지자 달라진다. 삼별초는 항파두리성에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했고, 제주도민은 굶주림에 허덕였다"라고 덧붙였다.
원종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1년이 지나서 삼별초가 전라도에 상륙했단 소식이 들렸다. 삼별초는 경기도, 경상도도 점령했고, 원종은 삼별초에게 회유의 사신을 보낸다. 하지만 한 명만 남기고 다 죽인다. 원종은 김통정 가족을 보내 다시 회유하기로 한다. 하지만 조카 한 명 빼고 전부 참수시켰다고. 결국 최후의 항쟁이 펼쳐졌고, 삼별초는 끝까지 맞서다 패배했다.
설민석은 "삼별초가 항몽의 아이콘이자 자주의식의 상징인데, 일부 미화됐을 수도 있다. 자주의식만으로 진도로 간 건 아니었다. 그걸 뒤로하고 민족과 자주의식의 상징처럼만 보는 것도 이 시대와는 맞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안위만을 위했다면 그 전에 타협했을 텐데 한라산까지 오르며 가족과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는 기개, 기상만큼은 진짜 군인이다. 입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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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금주 기자 nkj@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