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11.01 08:27 / 기사수정 2010.11.01 08:27
[엑스포츠뉴스=김현희 기자]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 마운드를 이끄는 선두 주자는 단연 류현진(한화)이라 할 수 있다. 평균자책점(1.82)과 탈삼진(187개) 부문에서 리그 1위를, 다승 부문(16승)에서 리그 2위를 차지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올 시즌 23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면서 MVP에 근접하는 활약을 펼친 바 있다.
동산고의 에이스, 한화의 마운드를 책임지다
그는 동산고 1학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될성부른 나무’였다. 2003년 미추홀기 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하여, 예선 3경기에 나와 평균자책 0.00을 기록한 것이 시작이었다. 2학년이었던 2004시즌에 팔꿈치 수술을 받아 1년 동안 재활에 매진했지만, 3학년 시절에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리기도 했다. 그 해 열린 청룡기 고교야구 선수권대회 8강전 성남고와의 경기에서 삼진을 무려 17개나 잡아내면서 완봉승을 거둔 것이 결정적이었다. 류현진과 최승준(LG)의 활약을 앞세운 동산고는 1966년 이후 39년 만에 6번째 청룡기 우승을 일구어냈다. 그리고 대회 우수투수상은 류현진의 몫이었다.
이에 류현진은 2006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우선지명으로 연고 구단인 SK에 입단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SK가 당시 인천고 포수인 이재원을 지명하면서 상황이 묘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2학년 시절에 받은 팔꿈치 수술이 원인이었다. 결국, 그는 2차 지명 1라운드 전체 2번으로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1번 지명권을 지니고 있었던 롯데가 나승현을 지명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류현진을 선택한 한화가 2006 신인 드래프트의 승자였던 셈이다.
입단 첫 해에 예상 외의 활약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던 류현진은 그 해 트리플 크라운(평균자책점, 다승, 탈삼진 1위)을 기록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수상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었다. ‘동산고의 에이스’가 한화 마운드의 기둥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올림픽에서의 빼어난 활약, ‘국제무대 타입’
그러나 그의 진가는 국제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캐나다전 완봉승에 이어 쿠바전에서도 8과 1/3이닝 동안 2실점하는 빼어난 투구로 대표팀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9 WBC에서도 대표팀에 선발됐다.
그랬던 류현진이었지만, 첫 아시안게임에서는 ‘아픈 기억’이 많았다. 2006 도하 참사가 바로 그러했다. 대표팀에 처음으로 합류했던 류현진이었지만, 당시 해외파 멤버를 완전히 배제했던 것이 착오였다. 이때의 실수로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동메달에 머무는 수모를 맞기도 했다.
이후 4년이 지났다. 류현진은 또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도하참사’를 직접 겪었던 류현진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설욕’에 나설 수 있을지도 큰 관심사다.
[사진=류현진(사진 좌측) ⓒ 엑스포츠뉴스 권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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