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나금주 기자] '선녀들-리턴즈' 김좌진 장군의 후손 송일국이 청산리 독립전쟁 100주년 특집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25일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60회에서는 설민석이 봉오동 전투에 관해 밝혔다.
이날 송일국, 전현무, 설민석, 김종민, 유병재는 독립기념관으로 향했다. 전현무는 독립기념관이 1987년 8월 15일에 개관됐다고 밝혔다. 설민석은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에 관해 밝혔다. 설민석은 두 영웅을 배트맨과 슈퍼맨의 만남으로 비유했다.
설민석은 김좌진 장군이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하면서 독립전쟁 역사에 출사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홍범도 장군은 포수들을 규합해 의병 활동을 시작했고, 일본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했다. 김종민은 "함경도 분들이 홍범도 '날으는 홍범도가'라고 노래를 만들어줬다"라고 말하기도.
설민석은 "일제는 홍범도를 체포하기 위해 치졸한 방법을 쓴다"라고 밝혔다. 가족을 인질로 삼은 것. 일제는 아들에 이어 홍범도 아내에게도 투항하라는 편지를 쓰게 했다. 하지만 아내는 단호하게 거부했고, 혹독한 고문에 스스로 혀를 끊기까지 했다고. 홍범도 아내는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설민석은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이 승리로 이끈 청산리 대첩에 관해 밝혔다. 시작은 백운평 전투였다. 북로군정서군은 낙엽으로 매복하고, 백운평 계곡으로 유인했다. 전현무는 "동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도와드린 것 같다. 독립군이 사기가 떨어져서 도망갔다고 거짓 정보를 흘린다. 일본군이 기고만장해서 쳐들어왔다고 하더라"라고 밝혔다. 일본군은 300명 몰살당했다고.
완루구 전투에선 홍범도 장군이 기지를 발휘했다. 설민석은 "일본군이 앞뒤로 치고 들어오니까 옆으로 빠져서 일본군 옆에서 같이 들어온다. 군복도 비슷하고 어두우니까 구분이 안 가는 거다"라고 밝혔다.
이어 설민석은 천수평 전투에 관해 "김좌진 장군은 백운평 전투에서 승리하고 갑산촌에서 쉬고 있었다. 일본 기마부대가 주둔한다는 정보를 듣고 자지도 않고 천수평으로 이동, 말을 쏘기 시작한다. 120기가 전멸한다"라고 밝혔다.
설민석은 "기마부대 몇 명이 어랑촌의 일본군 본대로 간다. 그럼 방법은 후퇴하거나, 움직이는 경로에 매복하거나 두 가지였다. 김좌진은 매복을 하고 있다가 일본군을 상대한다. 근데 일본군 병력이 너무 많았다. 끝이라고 생각했을 때 위에서 총소리가 났다"라고 밝혔다.
홍범도 장군이었다. 설민석은 "두 장군의 연합으로 300명 이상의 적이 몰살당한다"라고 했다. 이 전투가 바로 어랑촌 전투였다. 송일국은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에 관해 "일본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기록이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후 선녀들은 김좌진 장군 묘로 향했다. 송일국은 "정말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송일국은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과 오니 느낌이 색다르다"라고 밝혔다. 이어 송일국은 가져온 사진을 꺼냈다. 6.25 전쟁 전으로 추정되는 김좌진 장군 일가의 가족사진으로, 송일국 어머니 김을동과 김좌진 장군 부인, 어머니, 며느리가 찍힌 사진이었다. 송일국은 "네 분이서 서울집에 계셨는데, 김좌진 장군의 집이라 목숨을 건지셨다고 하더라"라고 밝혔다.
김좌진 장군 순국 후 사회장이 치러졌고, 1,000명의 인파가 모였다고. 설민석은 "김좌진 장군의 추도사를 누가 하느냐. (김좌진 장군이) 어려울 때 만났던 분이다. 서대문형무소 수감 시절 만났던 김구 선생님이었다. 나이도 잊고 어린아이처럼 통곡하셨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추도사를 낭독한 송일국은 "사실 41살에 돌아가셨잖아요. 한창 뭔가를 하실 나이에 세상을 등지셨다는 게"라며 "제가 가족을 꾸리니까 이 느낌이 또 다르게 오더라"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enter@xportsnews.com / 사진 = MBC 방송화면
나금주 기자 nkj@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