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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녀석들' 광복절 특집…제암·고주리 학살사건에 분노 [종합]

기사입력 2020.08.16 22:48

나금주 기자

[엑스포츠뉴스 나금주 기자] '선녀들-리턴즈' 설민석이 제암·고주리 학살사건에 대해 밝혔다.

16일 방송된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51회에서는 광복절 특집으로, 최희서가 등장했다.

이날 선녀들이 국립항공박물관에 모였다. 설민석은 국립항공박물관이 최근 개관한 이유에 관해 "올해 7월 5일에 개관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 창설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인비행학교가 1920년 7월 5일에 생겼다"라고 밝혔다. 전현무는 "소름 돋는 게 우리 광복 75주년이다"라고 덧붙였다.


설민석은 한인비행학교가 탄생한 과정에 대해 밝혔다. 도산 안창호, 노백린 장군, 청년혈성단, 그리고 이들을 후원한 김종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유럽에 군량미를 수출해 부자가 된 김종림은 고아원 설립, 임시정부 지원, 한글학교 창설, 유학비용 지원 등 엄청난 돈을 지원했다고. 전현무는 "별명이 '백미 대왕'이었다고 한다. 한인비행학교 건립도 지원해주셨다"라고 했고, 설민석은 "비행기, 부지, 건물을 산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인비행학교는 곧 문을 닫게 된다. 후원자 김종림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 재정적 지원이 끊기자 한인비행학교는 개교 1년 만에 폐교됐다. 설민석은 "그 1년 동안 조종사를 배출했다. 실제 항일전에 투입되고, 중국군과 연합해서 하늘의 독립군으로 활동했다"라며 의미를 밝혔다.

이어 선녀들은 화성에 있는 독립운동가 차병혁 생가로 향했다. 화성 지역 독립운동가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생가였다. 설민석은 화성에서 격렬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이유에 대해 "화성이 바다랑 인접하고, 옥토다. 간척사업하기도 좋았다. 일본이 대규모 간척사업을 시작했는데, 어민들에겐 직격탄이었다. 내 밥줄 끊는 일에 내가 동원되고, 터무니 이 일을 시켰다. 그때 서울에서 3.1운동이 벌어졌단 소식이 들렸고, 주민들도 폭발한다"라고 밝혔다.


설민석은 "1919년 3월 26일 홍면옥이 신문에서 3.1운동 기사를 보고, 만세운동이 시작된다. 200명에서 1,000명으로 늘자 노구치란 순사가 홍면옥에게 총을 쏜다. 이를 본 주민들이 노구치를 처단했다. 홍면옥은 1심에서 15년형을 받는다. 유관순 열사가 3년이고, 보통 1년이었다. 순사가 죽어서 그랬던 거다"라고 밝혔다.

이어 가와바타 순사가 죽고, 주재소가 불타자 일본은 내란으로 규정했다고. 설민석은 "일본은 평화적 시위를 할 때도 총질을 했던 자들이다. 군대를 파견해서 인간 사냥을 한다"라고 말했다. 군대가 마을을 방화해서 수촌리의 경우 절반이 불탔다. 당시 이장님은 72군데 난도질당했다"라고 말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설민석은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해 "아리타가 침투해서 남자들을 교회당으로 모이게 한다. 주민들은 '때린 걸 사과하려고 하나?'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알 수 없는 세 번의 구호를 외치더니 밖으로 나갔다. 문이 잠겼고, 창문 틈 사이로 총구가 안으로 겨눠진다"라고 밝혔다. 교회에 불을 지르고, 탈출하는 주민들을 총칼로 죽였다고.


설민석은 "아리타는 바로 옆에 있는 고주리로 쳐들어간다.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거의 대피했지만, 김흥렬 일가가 남았다. 죄지은 게 없는데 왜 도망을 가며, 저들도 인간이니까 집을 지키자고 한 거다. 하지만 그들은 김흥렬 일가 6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까지 불에 태운다"라고 밝혔다.

설민석은 "일본은 이게 세계에 알려지면 안 되니까 은폐를 시도한다. 하지만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다"라고 했고, 김종민은 "스코필드란 분이 제암리 학살사건 3일 후 학살 현장을 촬영했다"라고 덧붙였다. 설민석은 "보여주기식 재판이 열렸는데, 아리타는 무죄를 받는다"라고 밝혔다. 

enter@xportsnews.com / 사진 = MBC 방송화면

나금주 기자 nkj@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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