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2.08 09:38 / 기사수정 2005.02.08 09:38
아침 11시 졸린 눈을 비비면서 잠에서 일어납니다. 대충 뒤척이다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잠시 TV를 봅니다. 그리고는 씻지도 않은 채 집앞의 책 대여점에서 시리즈 만화를 수십 권 빌립니다. 바로 앞에서 있는 슈퍼에 들러서 군것질할 꺼리를 사옵니다. 그리고는 그걸 먹으며 빌려온 만화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봅니다.
백수의 생활에나 나올 법한 일이죠. 저 같은 직장인들에게는 그 생활이 꿈만 같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휴가가 생기면 꼭 하루는 저렇게 생활을 합니다. 뭐, 어떻게 보면 헛되게 보내는 시간일 수도 있지만 만화를 보면서 취하는 휴식이 무지하게 달콤하게 느껴지거든요. 그 만화 중 추천할 만한 야구 만화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무작위로 순서를 결정했습니다.
1. 4번타자 왕종훈(나미 타로 글 / 카와 산반치 그림)
4번타자 왕종훈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설명이 필요없는 야구만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4번타자 왕종훈은 한 소년주간지에서 연재되기 시작하여 단행본까지 나오면서 많은 인기를 누렸던 만화였죠. 원래 주인공의 이름은 다케시인데, 당시 장종훈 선수가 42호 홈런 신기록을 이룩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점에 착안하여 왕종훈이란 이름으로 바뀌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드래곤볼이나 북두신권, 슬램덩크만큼이나 폭발적인 인기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야구에 관한한 사실적인 묘사로 국내에서도 꽤 많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적인 묘사는 한 게임이 끝나는데 무려 3권에 걸쳐서 완료되기도 하죠. 때론 한 타자를 승부하는데 한 권의 분량이 걸리기도 하구요.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재능으로 만들어진다.” 라는 유명한 대사도 있죠. 키도 작고 야구도 못하던 다케시의 노력은 가히 칭찬받을만 합니다. 감독의 실수로 들어간 학교였지만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마침내 갑자원에 진출하는 내용은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특히 진짜 왕종훈인 천종훈과의 대결에서의 승리는 감독이 실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50권이 넘는 긴 만화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대결로 기억되더군요. 살인적인 분량이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 왕종훈의 노력에 매료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2. 바람의 마운드(나미 타로 글 / 카와 산반치 그림)
또 카와 산반치의 작품이네요. 내용 전개는 4번타자 왕종훈과 별 차이가 없지만 다른 점은 이번에는 그가 흉내내기의 천재로 나온다는 겁니다. 다케시라는 캐릭터로 나오는 주인공은 중학교 때 야구를 했지만 주목을 그다지 받지는 못합니다. 어렵게 진학한 고교에서 그는 일본 프로야구의 거의 모든 선수들을 흉내내면서 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는데요, 신임 감독의 눈에 들어 흉내를 실력으로 승화시키게 되죠. 일본 프로야구의 스타들을 소개하는 재미가 쏠쏠하더군요. 단지 다른 점이라면 다케시가 거울을 보고 흉내를 내서 좌우가 바뀐다는 점이죠. 상황에 따라 변하는 다케시의 흉내내기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3. 드림(나미 타로 글 / 카와 산반치 그림)
역시 카와 산반치의 작품입니다. 앞의 두 작품과 다른 점은 다케시가 메이저리그를 노리고 야구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천재로 나온다는 것과 앞의 두 작품에서 작은키로 나온데 반해 비교적 큰 키에 쭉 빠진 캐릭터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비교적 온순했던 왕종훈과 다케시에 비해 머리에 염색을 하고 껌을 씹으며 빈볼도 서슴치 않는 반항적인 캐릭터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중간 중간 많은 노력이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아직도 단행본이 나오고 있는 드림은 자신을 훈련시킨 다케시의 아버지가 감독을 맡고 있는 고교와의 대결이 한창 진행중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무척이나 흥미롭군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카와 산반치의 작품에서 야구 외적인 얘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거의 야구에 모든 것은 쏟아붓기 때문에 야구팬이 아니라면 재미없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구 1구 보여지는 모든 승부를 보면 어느새 캐릭터에 매료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스터프 166km(김성모)
한국에는 스포츠 만화가 좀 드문 편입니다. 특히 야구만화는 공포의 외인구단 외에는 알려진 작품이라면 고행석 작가의 전설의 야구왕 정도입니다. 솔직히 전설의 야구왕은 야구만화라기 보다는 코믹물에 가깝습니다. 아무래도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 이유인데 이미 다들 알고 계시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제외하고 한국 작가가 그린 야구만화로 유명한 작품이 바로 스터프 166km입니다. 만화 매니아 분들께서는 다들 아시는 사실이지만 김성모 프로는 조폭물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조폭이 등장합니다. 그 조폭으로 인하여 주인공인 강건마가 오른팔을 더 이상 못쓰게 되기도 하죠. 하지만 불굴의 투혼으로 그는 왼손으로 던질 수 있게 되고 마침내 메이저리그를 정복하게 되는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솔직히 스포츠 만화 전문가가 그리지 않아서 그런지 내용 전개에는 다소 억지스런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저 같은 야구팬들 입장에서는 좀 말도 안 된다 싶을 정도로도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스토리는 탄탄하고 내용전개가 빨라서 꽤 흥미로운 야구 만화입니다. 다소 야한 장면도 나오므로 청소년은 졸업하고 보시길 권합니다.
5. 메이저(미쯔다 다쿠야)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애니매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한 메이저는 주인공인 고로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일대기를 그린 내용으로 아직까지도 단행본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야구선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본인도 야구선수가 되어 고교야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프로에 스카웃 되지만 자신을 타자였던 아버지에게 머리쪽으로 빈볼을 던져 결국 사망의 원인이 되게 한 깁슨이 자신과의 대결을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보장된 미래를 포기하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위해 홀홀단신으로 미국으로 날아가는 내용입니다. 현재 마이너리그에서 고로의 도전이 한창 진행중입니다.
고로하는 캐릭터가 다소 무모하다고 싶을 정도로 자신감이 있는 선수로 나오는데요, 그래도 직구 하나만으로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그의 활약은 눈을 사로잡기 충분합니다. 아마도 지금 마이너리그의 어려움을 거쳐 결국에는 메이저리그에서 깁슨과 맞대결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앞으로 그는 어떤 어려움을 이겨나갈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6. H2(아디치 미쯔루)
남자 주인공인 히로와 히데오, 여자 주인공인 히까리와 하루까 이 네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야구가 모티브가 되며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만화입니다. 앞에서 소개드린 만화와는 달리 야구보다는 야구 외적인 얘기가 상당히 많습니다. 야구는 어디까지나 4명의 주인공을 엮이게 하는 모티브일 뿐이죠. 재미있는 것은 이 만화의 제목이 탄생하게된 것이 후반부에 나오는데 히로와 히데오 두 선수의 대결을 마지막으로 얘기가 끝난다고 하여 앞의 이니셜을 따서 H2라고 히데오가 강조하더군요.
거의 야구 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반 정도의 내용으로 진행됩니다. 현재 완간이 다 된 상태이고 결국에는 갑자원에서 히데오와 히로가 맞대결을 벌입니다. 그게 두 친구가 흠모하는 히까리를 걸고 말이죠. 결국에는 히로가 승리하는데 친구를 위해 여자를 포기하는 다소 유치한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야구만화를 많이 그렸던 아다치 미쯔루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깔끔한 내용전개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7. 꾸러기 야구왕(나카이마 츠요시)
초울트라 황당만화의 결정판. 정말 말도 안 되는 야구지만 가볍게 웃을 수 있는 만화입니다. 솔직히 어른들이 보기에는 좀 유치하기 짝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야구가 그 배경인데 모든 스포츠의 천재인 안타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각자 독창적인 캐릭터가 흥미로운 만화입니다. 특히 안타형의 라이벌인 마장두의 존재는 이 만화의 코믹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킵니다. 나름대로는 야구에 충실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조금은 억지가 보이기도 합니다. 이 만화 역시 왕종훈과 마찬가지로 50권이 넘는 시리즈로 발간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던 것 같습니다. 만화 속의 경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러려니 하고 읽다보면 어느새 다음권이 많이 기대될 것입니다.
8. 기적의 갑자원(미츠시마 신지)
만화팬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야구만화가 바로 기적의 갑자원입니다. 이 만화의 차이점이라면 고교에 야구부가 없는데 주인공인 지로가 배구부, 테니스부 등 여러 분야의 운동선수들을 끌어모아 야구단을 창단시켜 갑자원에 도전한다는 내용입니다. 29권으로 완간이 된 상태인데 그림 조금 매끄럽지 않은 것이 단점이긴 합니다만 누구 하나 천재는 없지만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하나로만 똘똘 뭉치는 선수들을 보면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특히 이 만화의 특징이라면 각각의 캐릭터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강조된다는 점입니다. 만화를 보다보면 어느새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9. 자이언트(야마다 요시히로)
솔직히 이 만화는 본 적이 오래되었고 인상적인 내용도 없어서 스토리 자체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제가 이 만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이제까지 일본 야구 만화가 대부분 갑자원을 소재로 내용이 전개되는 반면에 이 만화는 실제 일본 프로야구를 소재로 하여 그려진 만화입니다. 90년대에 일본 프로야구를 풍미했던 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등장하는데요, 일본 프로야구에 흥미가 있는 분이라면 꽤 사실적인 선수와 감독들의 묘사가 많은 흥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10. 미스터 풀스윙(스즈키 신야)
사진속의 인물이 주인공인 아마쿠니입니다. 표지에 보면 상당히 멋있는 캐릭터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친구를 사귀기 위해 여자 탈의실을 훔쳐보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변태적인 캐릭터입니다. 19세 미만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만화입니다. 모든 야구만화 팬들이 미스터 풀스윙을 슬램덩크와 많이 비교하곤 하는데 그 이유가 주인공인 아마쿠니가 여자매니저에게 반해 뭣도 모르고 야구를 시작하는 것과 엄청난 팔힘과 지기 싫어하는 오기 하나로 조금씩 성장해 가면서 진정한 스포츠맨으로 바뀌어 가는 아마쿠니의 모습에서 그런 걸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봐도 조금은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 있군요. 하지만 슬램덩크의 강백호보다 더 비정상적인 아마쿠니의 모습과 유머를 남발하는 내용 전개는 조금은 반감을 살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마츠시마 신지의 ‘야구짱 도카벤’, 류자키 료지의 ‘골통 야구단’, 히라마츠 신의 ‘최강 야구부 리벤저스’, 류자키 료지의 ‘못말리는 야구왕’ 등이 있습니다. 정리하다 보면서 아쉬운 점은 거의 스터프 166km를 제외하고 모두 일본만화라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일본처럼 만화산업이 발전해서 다양한 소재의 만화가 나오길 바라면서 글 마치겠습니다. 다음 번에는 볼만한 스포츠 만화를 한 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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