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윤인섭 기자] 남아공 월드컵32강 중 ‘가장 큰 나라’와 ‘가장 작은 나라’의 대결로 관심을 모은 미국과 슬로베니아와의 경기는 축구가 땅덩어리와 인구수로 밀어붙이는 게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 한 판이었다.
18일 밤(이하 한국시각), 요하네스버그 엘리스 파크에서 벌어진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C조2차전에서 슬로베니아와 미국은 난타전 끝에2-2 무승부를 거두었다. 전반, 발터 비르사와 즐라탄 류비안키치의 골로 승기를 잡은 슬로베니아는 후반 들어 랜던 도노반과 마으클 브래들리에 잇따라 골을 내줘 미국에 아쉬운 무승부를 허용했다.
지난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슬로베니아는 경상북도 만한 면적에 약200만의 인구를 지닌 이번 월드컵에 나선32강 중 가장 조그마한 나라이다. 유고슬라비아의 독자노선을 이끌던 요시프 티토, ‘현대 철학의 이단아’슬라보예 지젝을 배출한 나라로 유명하고 구 유고 연방을 구성하던 나라 중 두 번째로 작지만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작지만 내실 있는’국가이다.
유고 연방 시절,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세는 물론, 보스니아 세에도 밀리며 유고 축구의 변방으로 취급 받던 슬로베니아는 독립 이후, 즐랏코 자호비치라는 스타 플레이어의 등장과 스레츠코 카타네치의 뛰어난 용병술을 발판으로 세기 전환기, 슬로베니아 축구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자호비치 외에 변변한 스타선수가 없었지만 단단한 수비조직과 포기를 모르는 근성있는 축구로 슬로베니아는 유로2000대회와 2002 한일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팀의 중심 자호비치와 카타네치 감독이 불화를 일으키며 슬로베니아는 자신들의 첫 월드컵을 3전 전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마감했다.
이후, 과도기를 겪는 듯한 모습으로 각종 메이저 대회 본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독일 월드컵 이후 지휘봉을 잡은 마티아즈 켁 감독의 지휘 아래, 슬로베니아는 특유의 끈끈한 축구가 부활하며 월드컵 무대에8년 만에 복귀하게 되었다.
유럽 지역 예선에서 강호 체크, 폴란드와 한 조에 속했지만10경기에서 단 네 골만 실점한 단단한 수비를 앞세워 슬로바키아에 이은 조2위를 차지했고 러시아와의 플레이오프에선 일방적인 수세로 원정1차전1-2 패배를 기록했지만2차전 홈경기에서1-0 승리를 기록하며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월드컵 본선 행을 이룩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미국, 알제리, 잉글랜드와 함께 조별리그C조에 속한 슬로베니아는 지난13일, 알제리를 상대로1-0 승리를 거두며 슬로베니아 역사 상 첫 월드컵 본선 승리를 기록하는 동시에 첫16강 진출의 가능성을 높였다. 비록, 미국전 뼈아픈 무승부로 우승후보 잉글랜드와의 경기에 커다란 부담을 안게 되었지만 슬로베니아의 ‘내실 있는’축구는 이미 여러 약소국들에 ‘축구’의 희망을 안겨주었다.
오는23일, 축구 종가를 향한 ‘작은 나라의 매운 맛’이 다시 한번 실현될 지 기대해본다.
[사진=미국vs세르비아전 ⓒ Gettyimages/멀티비츠]
윤인섭 기자 press@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