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배우 이가섭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차분히 생각하며 신중하게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무언가 생각할 때는 다른 곳을 보곤 한다'며 계속해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미안함도 조심스레 함께 전한다.
단편영화 '복무태만'(2011)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후 8년여의 시간동안 연기라는 길을 꾸준히, 조심스레 걷고 있다. 10월 30일 개봉해 상영 중인 '니나 내나'는 이가섭이 조금 더 고민하며 답을 꺼내놓게 만든,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정말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올해의 작품이기도 하다.
'니나 내나'는 오래전 집을 떠난 엄마에게서 편지가 도착하고, 각자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삼 남매가 엄마를 만나기 위해 여정을 떠나며 벌어지는 용서와 화해의 시간을 그린 이야기.
이가섭은 삼남매의 막내이자 SF 작가 재윤 역을 연기했다. 진주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부산에 살고 있는 재윤은 겉으로 보기에는 예민하고 차가운 성격으로 누나 미정(장혜진 분)과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조카 규림(김진영)에게는 따뜻한 삼촌이자 형 경환(태인호)에게는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결같은 동생이기도 하다.
"선배님들, 김진영 배우와 처음 만났을 때 정말 재미있었어요"라며 살짝 미소를 비친 이가섭은 "정말 좋은 선배님들이라는 것이 느껴졌어요. 사투리 연기를 해야 했는데, 제 고향이 부산이기도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 '내가 쓰는 사투리가 맞나' 싶을 때가 있거든요. 선배님들과 있으면 사투리가 더 저절로 나오기도 했어요. 그래서 시작부터 불안감들이 많이 없어지기도 했고요"라고 떠올렸다.
'내가 적응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작품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나 주위의 환경 같은 것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 같다고 전한 이가섭은 "감독님과도 항상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사투리의 경우도 감독님이 '가섭 씨 하시던 대로 쓰시면 된다'고 믿음을 주셨어요"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제가 평소에 쓰는 부산 사투리를 사용했는데,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선배님들 덕이죠. 선배님들이 워낙 사투리를 잘 쓰시니까 저도 그것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던 것 같아요. 함께 지내면서 짧은 쉬는 시간에도 선배님들과 많은 얘기를 했거든요. 그 연장선상에서 연기도 나오지 않았을까 싶죠."
추위가 매서웠던 지난 겨울 촬영했던 '니나 내나'를 마치며 이가섭은 '정말 행복하게 촬영했는데, 그 행복한 것이 어느 정도까지 보일까 궁금했다'면서 "추웠는데, 가족의 사랑으로 극복했죠"라고 조용한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연기적으로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아요. 진짜 선배님들이 많이 도와주셨다고 생각하거든요. 선배님들의 눈을 보면 바로 느낌이 왔어요.(웃음) 연기는 매번 어려운 것 같아요. 어쨌든 (시작은) 나로부터 출발을 해야 하는 것이니까, 매번 모든 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까칠해 보이는 재윤이지만, 누나 미정의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전화가 올 때마다 화면에 보이게 할 정도로 속에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품고 있는 그다.
이가섭은 "재윤은 표현이 서툰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분명히 있다고 봤죠. 투덜투덜 대지만, 또 누나가 무엇을 같이 하자고 하면 다 따르고 해주거든요. 차 안에서 미정과 '시끄럽다, 아니다'라며 라디오 채널을 갖고 아웅다웅 싸우는 모습들도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리허설 할 때는 정말 일상적으로 같이 있다가, 촬영이 시작되면 그 공기가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요"라고 얘기했다.
진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낄수 있는 엔딩신을 언급하면서도 "(장)혜진, (태)인호 선배가 엄청 즐거워하셨고, 저도 흐뭇해하는 느낌으로 계속 웃고 있더라고요. 너무 세게 비치는 햇빛을 보고 있는 제 표정도 그렇고 모든 것이 다 진심이었던 순간이었어요"라고 웃었다.
실제로는 내성적이 성격이라며, 현장에서도 보통 수줍은 모습으로 있곤 하지만 '니나 내나'를 찍으면서는 자신도 모르게 선배들에게 다가가 "오늘 촬영 끝나고 뭐하실 거예요?"라고 먼저 물어보는 등 자신도 몰랐던 적극성을 발견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1991년생인 이가섭은 데뷔작 이후 '오래된 아이'(2016), '양치기들'(2016) 등에 출연했고, 자신의 첫 주연 데뷔작이기도 한 '폭력의 씨앗'(2017)을 통해 제55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상을 거머쥐는 등 차근차근 존재감을 알려왔다. 말과 행동, 모든 것에 집중하며 눈과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고등학생 때까지 10년을 넘게 마주해왔던 바둑을 바라보던 얼굴과도 닮아있다.
영화가 지난 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먼저 공개됐고, "아들로서 부모님에게 제가 노력한 결과물을 보여드릴 수 있어 좋았다"며 뿌듯했던 기억도 털어놓는다. 이가섭은 "부모님에게 살가운 아들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전화도 자주 드리곤 하지만 표현을 엄청 크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라고 짚으며 "부모님께는 항상 감사하죠. 무슨 말을 특별히 안 해주셔도, 응원해주시는 것이 느껴지니까요"라고 마음을 드러냈다.
어느덧 올해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지만, "(서른 살이 되면)다시 뒷자리가 0이 되잖아요. 9(스물아홉)가 끝나고 다시 0(서른)이 돌아오는 것이죠. 또 다시 9(서른아홉)까지 달려가야하는 것이에요"라며 조용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시간의 흐름 역시 성숙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이를 먹고, 시간이 간다는 것에 대한 조급함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덧붙인 이가섭은 "제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캐릭터들이 항상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많은 경험을 하다 보면 조금 더 잘 느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죠. 더 많은 작품들을 하면서 선배님들, 동료 배우들을 만나 같이 호흡하고 얘기해보면,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다부진 각오를 함께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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