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5.15 00:48 / 기사수정 2010.05.15 00:48
[엑스포츠뉴스=김진성 기자] 삼성 정인욱에게 2010년 5월 14일 목동 넥센전은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프로 데뷔 이후 1군 경기 세 번째 출장 만에 전격 선발 등판했지만, 4이닝 13실점으로 난타를 당한 후 쓸쓸히 마운드를 내려왔기 때문이다.
될성부른 '떡잎'
그는 대구고를 졸업해 2차 지명 21번으로 지난 시즌 삼성에 입단한 프로 2년 차 우완투수다. 그나마 첫해에는 2군에서 7경기에 나온 것이 전부이고, 올 시즌에도 팀 구원투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뒤늦게 1군에 등록됐다. 1군 성적도 14일 경기 전까지 2경기에서 합계 7이닝 7피안타 6실점으로 평균자책점 6.43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선 감독은 그의 1군 데뷔전의 '씽씽투'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실제로 그의 1군 데뷔 전이었던 지난 4일 대구 롯데전은 선발 차우찬이 1.2이닝 만에 일찍 무너진 후 2사 만루 상황에서의 부담스러운 등판이었다. 게다가 그의 1군 데뷔 첫 타자는 리그 타점 1위의 강타자인 홍성흔. 팀은 3대0으로 뒤지고 있었지만 경기 초반이라 승부가 완전히 갈린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 푹 놓고 공을 던지기에는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떨리는 1군 데뷔 전. 으레 경험이 없는 신인투수는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잡는 것은 고사하고, 몸쪽은 제대로 찔러보지도 못하고 단조로운 피칭으로 일관하다가 사사구를 곁들여 얻어맞는다. 그러나 정인욱은 그렇지 않았다. 홍성흔에게 연이어 몸쪽 직구와 체인지업을 던져 범타로 처리하는 대범함을 선보였다. 이후에도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구질로 침착하게 승부 했다. 비록 3.1이닝 3실점을 했지만 타자를 피하지 않고 공격적인 승부를 했다.
8일 대구 SK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구와 2구에 연달아 체인지업으로 카운트를 잡았다. 그가 2경기에서 내준 6실점은 타자를 피하다가 자멸했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공을 믿고 던지다가 마운드 운용능력의 부족으로 얻어맞은 것이었다. 평소 선수들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선동렬 감독도 이런 그의 모습에 "위기상황에서도 자기 볼을 던지더라.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볼을 남발하지 않고 얻어맞더라도 스트라이크를 집어넣는다"며 칭찬했다.
한번에 '와르르'
이런 그의 투구는 결과를 떠나 선발, 불펜 할 것 없이 마운드의 부침이 심한 삼성에 가뭄의 단비가 됐다. 급기야 최근 부진을 거듭하고 있는 삼성 선발진에 임시선발투수로 전격 기용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부진한 투구로 불펜으로 강등됐던 에이스 윤성환의 선발 순번인 14일 목동 넥센전에 선발로 등판한 것이다.
출발은 좋았다. 2회 2아웃까지 단 한 번도 출루를 허용하지 않는 놀라운 투구를 펼쳤다. 그러나 그 후 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낼 때까지 무려 9피안타 6볼넷 13실점(8자책)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실책성 수비가 두 번 있었지만 2회 2사 이후 연속 세 타자에게 볼넷을 내준 것이 화근이었다. 그 이후 넥센 타자들은 그의 공을 배팅볼 두들기듯 장타로 연결했다. 황재균에게는 만루 홈런까지 허용했다. 그야말로 숨 고를 틈 없이 얻어맞았다.
맞으면서 큰다
역시 신인은 신인이었다. 대범한 승부를 할 줄 안다며 많은 점수를 받았던 그였지만 데뷔 후 첫 선발의 압박감을 견디기에는 다소 모자랐다. 무심코 내준 볼넷이 쌓이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제구는 흔들리고, 단조로운 구질은 산전수전 다 겪은 진갑용의 볼 배합으로도 이겨내기 어려웠다. 적시타 한두 개를 맞다 보니 급격히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초구부터 공격적인 피칭이 이뤄지지 않아 스트라이크를 집어넣기 바빴다. 그리고 그 볼은 모조리 난타당했다. 어느새 프로 데뷔 '보통' 신인투수와 같은 길에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다.
14일 정인욱은 좋은 경험을 했다. 투수가 마운드에서 피해 가다 보면 볼넷만 쌓일 뿐, 본인의 진짜 장단점을 마운드에서 확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투수는 얻어맞아 봐야 자신의 제구, 구속, 구질, 볼배합 등 전반적인 투구 커맨드를 돌이켜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반성하고, 문제점을 찾아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실 프로에서 아직 보여준 것이 없기 때문에 13실점을 했지만 잃은 것은 없다. 단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통과의례'를 겪었을 뿐이다.
이제 남아있는 과제는 과연 정인욱이 14일의 난타를 교훈으로 삼아 다음 등판 때 개선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다. 정신없이 얻어맞았지만 절대로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씩 개선해 나가면 된다. 만약, 다음 등판에서 또 같은 문제점이 반복되면 그것이 더 뼈아픈 것이다. 프로에서 발전이 없는 것만큼 무서운 '병'은 없기 때문이다.
투수가 피해간다면 얻어맞을 기회도 없다. 지금 그는 신인투수지만, 자신감을 바탕으로 던지다가 시원하게 얻어맞았다. 그래서 반성할 기회를 얻었다. 이제 정인욱의 다음 등판을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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