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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우익수' 이진영 "은퇴 후회 없다, 이제 후배들에게 양보할 때"

기사입력 2019.07.28 17:18 / 기사수정 2019.07.28 17:29

채정연 기자

[엑스포츠뉴스 수원, 채정연 기자] "이제 후배들에게 양보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진영은 28일 LG 트윈스전에 앞서 케이티위즈파크 1층 대회의실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악천후 속 은퇴식 실시 여부도 불투명했지만, 다행히 오후 4시 30분을 넘기며 비가 그쳤다.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던 이진영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SK 유니폼을 입고 리그 대표 외야수로 거듭났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는 인상적인 다이빙캐치로 '국민 우익수'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LG로 팀을 옮겼다. '효자 FA'로 불리며 2014년에는 주장직까지 역임, 팀의 가을야구를 이끌었다. 2015년 2할5푼6리의 타율과 9홈런 39타점의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한 뒤, 2차 드래프트로 풀렸다. KT의 선택을 받아 3년간 더 뛰며 베테랑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진영은 지난해를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으며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은 이진영과의 일문일답.

-은퇴 소감은.
▲내게는 어려운 자리라 낯설다. 많이 찾아와주셔서 감사하다. 20년간 정말 열심히 했는데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찾아올 줄은 생각 못했다. 날씨가 좋지 않은데, 경기를 할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많이 축하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날씨 보며 초조하지 않았나.
▲계속 기상청을 확인했다. KT 구단이 은퇴식을 성대하게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 준비하신만큼 잘 됐으면 좋겠는데, 날씨가 어찌될지, 하늘이 날 도와줄지 모르겠다.

-팬사인회를 했는데 팬들 보니 기분이 어땠나.
▲선수로서 마지막 팬사인회였는데, 평소보다 더 뭉클한 마음이었다. 우시는 팬 분들도 계셔서 울컥했다. 야구인생은 마무리됐지만, 팬 분들께 돌아올거란 약속을 하며 즐겁게 보낸 것 같다.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은.
▲20년간 야구하며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표팀에서의 영광, SK 시절의 우승 순간들, LG 시절의 포스트시즌 갔던 것, KT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는 것이었다. KT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명문구단이 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게 목표였다. 그런 부분들이 뜻깊은 시간이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일들을 했구나, 하는 자부심도 생긴다. 20년이란 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온 기분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잘 안 오더라. 많은 생각으로 잠을 설쳤다. 막상 야구장에 오니 기분이 좋았다. 근심걱정들이 다 잊혀지고 지금은 좋은 추억이 내게 생기는 것 같아서 기쁘다.

-한국에 언제 다시 왔나.
▲6월에 라쿠텐 국제 스카우트와 함께 같이 왔다. 도움을 요청해서 한국에 있는 동안 함께 야구장을 돌아다녔다. 8월 4일 다시 돌아간다.

-은퇴 결정과 은퇴식 사이에 텀이 있었다. 연수를 받으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은퇴의 경우는 추측도 많고 오해도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 내가 결정한 것이다. 30대를 넘어서며 생각을 했던 게 선배들에게 양보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고참이 되어서는 후배들에게 양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후회가 있거나, 그런건 전혀 없다. 선수가 아닌 삶은, 바쁘게 정해진 스케줄로 살다가 자유를 느끼는 기분이다. 가장 바뀐 부분은 가정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수 가서는 또다른 야구를 배우러 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열심히 하고 있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었다. 돌아가서도 열심히 해야할 부분이 있다. 

-당일에 박용택 등 비슷한 연차의 선후배들에게 들은 말이 있었나.
▲그 전에 식사도 몇 번 같이 했다. (이)병규 형이 은퇴를 먼저 했기 때문에 은퇴 후의 어려움을 미리 이야기해줬다. (박)용택이 형은 조금 힘든 시기에 많은 좋은 이야기를 해줬다.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그 외의 선배들도 조언해주셨다. 크게 힘든 건 없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은퇴를) 잘 선택했다는 마음이었다.

-프로 생활을 하며 돌아가고 싶었던, 아쉬웠던 순간이 있었나.
▲좋았던 생각만 한다. 딱히 힘든 것보다는, 내 위치에서 해야할 일들을 못했을 때 속상하고 서운했지만. 성격이 좋은건지 감각이 둔한건지 크게 연연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KBO리그 역사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내세울 성적이 2000경기, 2000안타다. 군산에서 올라와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싶었다. 특별히 좋은 성적보다는 결정적일 때, 팀이나 대표팀에서 찬스에 강했던 좋은 흐름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 기가 좋은 선수로 기억됐으면 한다.

-제2의 야구인생은 어떻게 그리고 있나.
▲연수를 하며 생각할 시간이 많았는데, 미리 생각하는 편이었다. 은퇴하는 선수들이 좋은 지도자가 되려 노력하지 않나. 나 역시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한게, 선수들을 도와주는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코치님보다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바뀌었다. 코치보다는 도와주고 싶다.

-생각나는 은사나 감독님이 있나.
▲많은 감독님을 만났다. 그 분들이 계시지 않았으면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가장 기억나는 감독님은 김성근 감독님이다. 정말 훈련을 많이 시켜주셔서 강인한 체력이 생긴 것 같다. 연습을 하며 느끼는 부분이 많았고, 좋은 시간이었다. SK로 와서는 강병철 감독님이 어린 나이에 좋은 기회를 주셨다. 덕분에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주전이 됐다. 조범현 감독님도, 김재박 감독님도 감사하다. 감사하지 않은 감독님은 없다. 나를 다 좋아해주셨던 것 같다. 

-팬들의 사랑만큼 별명도 많았는데.
▲'국민 우익수'가 물론 가장 마음에 든다. LG에서는 '이(2)땅선생'이라고도 불렸는데 그것 역시도 감사하다. 팬 분들이 나를 관심있게 지켜봐주셨기 때문에 2루수 땅볼을 많이 치는 장면을 봐주신 것 아닌가. 당시에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은퇴 후에는 다 감사하다. 머리가 크다는 것도 별명이 됐는데 다 사랑해주신 덕분인 것 같다.

-일본 야구는 한국 야구와 어떤 차이가 있나.
▲한국 야구와는 전혀 다른 것 같다. 일본은 아직까지 고유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훈련량이 정말 많다. 선수들이 원해서다. 한국 선수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많은 훈련량 속에서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게 2군 육성의 기조인 것 같다. 수많은 훈련 속에는 단점과 부상, 체력 저하도 있을 것이다. 풀타임을 뛸 수 있는 체력을 만드는 게 첫번째라고 하더라. 

-한일전에서 잘했는데 노하우가 있나.
▲요즘 시국에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일본전을 많이 뛰었는데, 실력 외인 것 같다. 한국 선수들에게 그런 힘이 있다. 일본전에서 그런 힘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데,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야구가 무조건 1등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첫번째인 것 같다. 내가 할 일은 선수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내가 맡은 역할을 잘 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20년간 선수생활을 할 수 있던 이유는.
▲'희생' 덕분인 것 같다. 부모님이 어려운 환경에서 뒷바라지 해주신 것은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것이다. 부모님께서 좋은 신체, 생각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20년간 야구를 보시며 가슴 조마조마하셨을 때가 많으실텐데 이제는 좀 편안하게,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가족들, 아내와 채슬이, 예준이에개 10년간 좋은 남편, 아빠 역할을 한번도 못한 것 같은데 내색하지 않고 뒷바라지 해줘 고맙다. 덕분에 10년을 더 할 수 있던 것 같다. 여느 아빠처럼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는데 아이들이 잘 기다려준 것 같다. 가족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뜻깊은 일인 것 같다. 

lobelia12@xportsnews.com / 사진=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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