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3.19 15:33 / 기사수정 2010.03.19 15:33
- 유럽 대항전에서 부진한 세리에A, 변화가 필요
[엑스포츠뉴스=박문수 기자]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이탈리아 세리에A팀들의 유럽 대항전 성적이 심상치 않다. 세계 3대 리그로 꼽히며 낭만적인 축구를 구사했던 그들은 최근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이하 EPL)의 등쌀에 밀려 무릎을 꿇는 절망에 처했다.
그나마 이번 2009/2010 UEFA 챔피언스 리그(이하 챔스)에서 인테르가 첼시에 2연승을 거두며 자존심은 지켰지만, AC 밀란과 유벤투스는 각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풀럼에 완패했다.
우선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맨유를 꺾고 상위 토너먼트에 진출하며 맨유 천적으로 불린 AC 밀란은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챔스 16강 2차전에서 0-4로 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밀란의 노장들은 맨유의 패기에 완전히 밀렸으며 체력적 열세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후반에만 3점을 실점하는 결과를 낳았다.
챔스 DNA의 소유자로 불리며 유럽 대항전의 강자였던 밀란은 지난 2006-2007시즌 카카의 맹활약에 힘입어 통산 7번째 챔스 제패 이후, 번번이 8강 문턱에서 좌절하며 강팀으로서의 위엄을 잃게 됐다.
한편, 유벤투스는 2009/2010 UEFA 유로파 리그(이하 유로파 리그) 16강 2차전에서 풀럼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탈리아 세리에A 최다 우승팀 유벤투스는 이번 시즌 챔스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1-4로 완패, 16강 진출에 실패하며 유로파리그 행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그들의 전력이 여전히 강했기 때문에 리버풀, 발렌시아 등과 함께 이번 유로파리그의 강력한 초대 우승후보로 하나로 꼽히며 기대를 모았지만, 8강 문턱에서 탈락했다.
물론 축구에서 이변이란 또 다른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이다. 간혹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신승을 거두는 경우가 강팀이 약팀을 상대로 일방적인 경기를 보여주는 것보다 흥미 있다는 점과 일맥상통하다.
하지만, 이날 유벤투스는 풀럼에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었다. 지난 1차전 홈 경기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통해 풀럼에 3-1로 승리했던 유벤투스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경기 시작 2분 만에 다비 트레제게가 선제 득점을 올리며 승리하는듯싶었으나 이후에 4골이나 허용하는 집중력 부족으로 자멸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탈리아는 낭만적인 축구를 구사하면서 21세기 초반 최고의 리그로 꼽혔었다. 비록 전술적인 문제에서 한계를 드러내며(리그 중심의 경기가 진행된 점은 대외 컵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렸다는 의견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당시 이탈리아 팀들이 구사한 전술은 허점이 많았다) 대외 컵에서의 실적인 기대 이하였지만, 그들이 보유한 두터운 선수층은 모든 이의 로맨스였다.
하지만, 현재 세리에A의 날씨는 흐림의 연속이다. 우산 없이 외출한 상황에서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 끼었는데 언제 내릴지 모르는 비 때문에 조마조마한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경쟁자 분데스리가는 그들을 맹추격하고 있으니 챔스 티켓 4장 유지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다만, 분데스리가가 챔스와 달리 유로파 리그에서 포인트를 쌓은 점은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강팀들과의 맞대결에서 밀린 것과 약팀 사이에서 분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어찌 보면 세리에A는 이런 UEFA의 모순의 희생양이 될지도 모른다)
영광에서 독으로 전락한 이탈리아의 2006 독일 월드컵 우승
2006 독일 월드컵 직전, 사람들은 브라질을 강력한 우승후보로 지목하였다. 비록 선수들의 부상과 슬럼프, 전술적 문제 때문에 실패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화려한 삼바 군단의 월드컵 2연패를 의심하는 이는 드물었다. 하지만 '칼치오폴리' 스캔들 때문에 어수선한 이탈리아 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했고 그들은 강호다운 모습으로 통산 4번째 월드컵을 차지하며 강호의 입지를 다시금 다졌다.
매 경기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은 감동적이었으며 먹이를 찾는 맹수처럼 승리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는 그들의 퍼포먼스는 최고였다.
게다가 2006-2007 챔스에서 AC 밀란이 EPL 3팀이나 배치된 4강과 결승에서 각각 맨유와 리버풀을 누른 점은 이탈리아 축구의 위엄을 다시금 알리게 됐다. 비록 칼치오폴리 때문에 이탈리아 축구가 상처를 입었지만, 세리에A는 쉽게 회복될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영광은 오히려 독이 됐다. 이후 내로라하는 선수들은 거의 EPL행을 선택했으며 시설과 구조적인 문제에서 단점을 보완하지 못한 세리에A는 경쟁에서 밀려났다. 즉 이탈리아가 월드컵 우승의 영광에 취한 사이, 다른 리그는 경쟁력을 강화한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탈리아는 그들이 지닌 문제점에 대한 개선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칼치오폴리 이후, 인테르는 리그에서 독주하고 있으며 (비록 밀란이 승점 1점 차로 따라붙었지만, 그들의 스쿼드를 생각하면 역전 우승 가능성은 희박하다. 게다가 밀란의 우승은 그 얇은 스쿼드로 리그를 제패한 점에서 세리에A의 경쟁력이 떨어졌음을 시사한다) 중상위권 팀들은 평준화됐지만, 대외 컵에서의 성적은 여전히 부진하다. 실상 인테르도 이번 시즌 전까지 번번이 챔스 16강에서 탈락하며 리그 최강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기대를 모았던 AS 로마는 파나티나이코스에 2-3으로 두 번이나 무릎을 꿇으며 유로파 리그 32강에서 떨어졌으며 나머지 팀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심판의 오심으로 바이에른 뮌헨에 무릎을 꿇은 피오렌티나만이 아쉬울 뿐이다. (인테르는 첼시를 꺾었으므로 언급하지 않겠다. 모든 세리에A 팬들은 그들의 리그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인테르의 선전을 바랄 것이다. 심지어 몇몇 AC 밀란, 유벤투스 팬들은 노골적으로 인테르의 선전을 바라기도 했다)
문제점 보완이 시급한 세리에A
유럽 축구 역사를 살펴보면 최강의 리그는 늘 순환했다. 80년대는 독일이 중심이었으며 90년대와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차지했다. 이후에는 잉글랜드가 하나의 대세가 됐다. 이런 점에서 현재 세리에A는 암흑기에 처해있다.
혹자는 세리에A의 문제점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우선, 그들의 경기장 시설은 낙후됐다. EPL과 분데스리가 그리고 라 리가 팀들이 경기장 보수에 신경 쓰는 것과 달리 이탈리아는 텅 빈 관중석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오래된 경기장은 신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세리에A 강호들은 리빌딩과 전력을 보강해야 된다. 인테르의 경우, 비교적 성공적인 리빌딩을 이루면서 리그와 대외 컵에서 이번 시즌 선전하고 있지만, AC 밀란과 유벤투스 그리고 AS 로마는 상황이 다르다.
밀란의 경우, 모든 포지션에 대한 선수 수급이 절실하며 노쇠화된 선수와 작별해야 한다. 유벤투스는 조르지오 키엘리니의 파트너와 적절한 백업 요원이 필요하며 믿음직한 포워드를 영입해야 한다. AS 로마는 빈약한 스쿼드로 번번이 발목을 잡히고 있으므로 로테이션 멤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마케팅 보완이다. EPL의 성공은 외부 자본의 유치와 더불어 마케팅을 통한 시장 공략이었다. 그들은 과대 포장의 느낌이 강하지만, 하나의 팀을 상품화했으며 흐름에 발 맞춰 스스로 변화했다. 헤이젤 참사 때문에 스스로 무너졌던 그들이 재도약한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일관적인 전술에 대한 수정과 서포터들의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EPL 팀들이 빠른 템포로 경기를 진행하는 것과 달리 세리에A팀들은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지만, 어느 시점부터 이것이 먹히지 않고 있음을 스스로 인지해야 된다. 또한, 과격한 서포터들에 대한 규제도 시급하다. EPL에도 훌리건들이 존재하지만, 최근 이들보다 이탈리아 내 울트라들이 더욱 활성화된 점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
언젠가 혹자의 글을 보면서 “세리에A에도 이런 위기가 있었지”라는 생각을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기위해서 세리에A는 경기장 시설 보수부터 시작해 논 EU 제도(세리에A는 비 EU 국가 선수를 매년 두 명만 영입할 수 있다), 구조적인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사진= 풀럼에 완패한 유벤투스 ⓒ UEFA 공식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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