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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토크] (18) 24년의 기다림, 1994 브라질

기사입력 2010.03.10 21:17 / 기사수정 2010.03.10 21:17

박문수 기자

-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강하다! 1994 미국 월드컵 우승팀 브라질

[엑스포츠뉴스=박문수 기자] 지난 삼바 토크 17편에서는 8강 리그에서 이탈리아에 패하며 탈락했지만, 경기 내용과 선수 면에서 최고의 팀 중 하나로 꼽히는 1982 스페인 대회 텔레 산타나의 브라질에 대해 알아봤다. 지쿠와 소크라테스, 팔카우 등, 내로라하는 스타 플레이어가 포진했던 82년 브라질은 파울로 로시의 해트트릭에 무릎을 꿇으며 무관의 챔피언에 오르게 됐다.

한편, 이 대회의 실패는 1970년 멕시코 대회를 끝으로 브라질이 침체기에 돌입했음을 의미했다. 전통적으로 브라질은 월드컵 우승이란 목표를 걸고 대회에 임했기 때문에 4강과 8강에서 화력을 멈춘 점은 부진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이번 삼바 토크 18편에서는 24년의 기다림 끝에 월드컵 우승에 성공한 1994 미국 월드컵 브라질 대표팀에 대해 알아보자.

브라질 국내 사정의 변화

애초, 브라질은 자국 출신 FIFA 회장 조앙 아벨란지를 두고 있었지만, 그의 관장은 브라질 국내 축구의 발전을 저해했다. CBD(구 브라질 축구협회)를 거쳐 FIFA 회장이 된 아벨란지는 국내 축구 문제에는 안일한 자세를 보였으며 브라질과 잦은 마찰을 일으켰다.

이후, 아벨란지는 1989년 자신의 사위를 CBF의 회장으로 임명하며 브라질 축구에 대한 간섭을 시작했지만, 개혁이 필요한 브라질 국내 축구 사업에 대해서 현상유지를 시도했다. 이 외에도 정치적 영향까지 가세한 브라질 국내 축구는 정부와 체육부의 마찰을 일으켰으며, 동시에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됐다.

즉, 많은 이적료를 지급하면 해당 선수는 유럽으로 이적하게 되며 이를 통해 그의 전 소속팀은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인다. 한편, 선수는 새로운 팀에서 상향된 연봉과 마케팅 등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하게 된다. 이 때문에, 브라질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지쿠는 선수의 이적권을 두고 아벨란지와 잦은 마찰을 일으켰으며 이에 대해 아벨란지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선수에 대해 규제를 할 경우, 브라질을 FIFA에서 영구 제명할 것이라는 협박을 가했다.

그럼에도, 브라질 축구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자국 시장의 경영을 현대화했다. 자국 축구팬들은 미디어 사업의 확장으로 각종 매체를 통해 쉽게 축구 경기를 접하게 됐으며,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은 부의 축적과 별개로 선전 축구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며 브라질 축구를 널리 퍼뜨리게 됐다.

한편, 브라질은 1993 FIFA U-20 월드컵에서 통산 세 번째 우승에 성공했으며, 자국 프로팀인 상 파울루가 세계 클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축구 강국의 자존심을 회복한다. 게다가 카푸와 마우로 시우바, 레오나르두, 마르시우 산투스라는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며 1994년 대회의 기대감을 높인다.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 마리오 자갈로의 코치였던 카를루스 파헤이라(現 남아공 대표팀 감독)가 사령탑으로 선임됐으며, 그는 안정성을 기반으로 대회에 나서게 된다. (2006년 파헤이라의 브라질이 지나치게 공격력에 의존했다면, 94년 브라질은 현재의 둥가 감독이 지향하는 전술과 유사한 경기를 펼쳤다. 즉, 브라질 특유의 공격 축구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안정감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흥행에 성공한 1994 미국 월드컵

제15회 1994년 월드컵은 축구의 불모지 미국에서 개최됐다.

1984년 LA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감한 미국은 거대한 시장을 보유하고 있었고, FIFA는 미국을 비롯한 제3대륙(당시 축구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남아메리카와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의 축구 발전을 원했다.

이해타산이 맞은 FIFA와 미국은 ‘축구의 역사를 만들자!’는 표어와 함께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원했으며 이 대회는 지난 대회인 이탈리아보다 수익률이 높았으며, 각국에서 몰린 관광객들로 사상 최다 관중을 갱신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도하의 기적과 함께, 3회 연속 대회 진출한 것과 별개로 이 대회는 많은 이변이 있었다. 우선,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으며 이들을 대신해 그리스, 불가리아, 노르웨이, 스위스, 노르웨이 등이 출전했다. 아르헨티나는 홈에서 콜롬비아에 0-5로 무릎을 꿇었으며, 브라질은 볼리비아 고산 지대에서 0-2로 패배. 월드컵 지역 예선 첫 패를 기록했다.

불가리아와 스웨덴이 4강에 진출하며 전통의 강호인 이탈리아, 브라질과 어깨를 나란히 한 점도 이변이었다. 특히 불가리아는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8강에서 제압하는 최고의 이변을 연출했다.

- 효율성에 기반을 둔, 파헤이라의 안정적인 브라질

80년대를 기점으로 축구 경기에서는 압박의 개념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는 단순히 수비 위주의 경기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공수양면에서의 적극성을 의미했다. 브라질도 이러한 요소를 중시했으며 파헤이라의 브라질은 안정적인 경기력을 밑바탕으로 깔면서 (스페인을 정복한 두 명의 포워드 베베투와 호마리우로 대표되는) 막강한 공격력을 지닌 공수의 균형이 완벽한 팀이었다.

파헤이라는 기본적으로 투 톱인 호마리우와 베베투를 전진 배치했으며 베베투가 저돌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상대 수비진을 압박하면서 생긴 공간을 호마리우가 직접 침투하여 득점에 가담하는 형식의 공격진을 운영했다.

미드필더는 예선 초반에는 하이가 나왔지만, 스웨덴전을 기점으로 마지뉴(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셀로나 소속의 티아고 알칸트라의 아버지)에게 오른쪽 미드필더의 역할을 부여하면서 그에게 수비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다시 말하면 공격적인 임무를 수행하면서 적극적임 움직임을 통해 상대와의 압박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이바지했다. 반대편의 지뉴는 좌측에서 브라질 공격진을 이끌었다.

마우로 시우바와 둥가가 위치한 중앙 미드필더는 모두 수비적인 임무를 부여받았으며 적극성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진을 일차적으로 막았다. 게다가 둥가는 날카로운 킥력을 바탕으로 동료에게 공격의 물꼬를 틀어주는 역할도 수행했으며, 때에 따라서 직접적인 공격 가담을 시도했는데 이것은 브라질의 또 다른 무기로 자리 잡았다.

측면 수비진은 조르지뉴와 브랑코가 담당했으며, 두 선수는 브라질 풀백의 전통인 적극적인 오버래핑과 뛰어난 체력을 지닌 공수의 핵심 중 하나였다. 조르지뉴는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와 카푸와 함께 브라질을 대표하는 오른쪽 풀백 중 하나이다. 그의 적극적인 오버래핑은 우측의 마지뉴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줬으며 공간을 적절히 메우는 두 선수의 콤비 플레이도 돋보였다.

알 다이르와 마르시우 산투스가 맡은 중앙 수비진은 대회 초반 카를루스 모제르와 히카르두 고메스 그리고 히카르두 호차가 부상 때문에 누수가 생겼지만, 얼떨결에 주전이 된 행운의 두 선수가 완벽하게 메우며 우려를 잠재웠다. 게다가 마르시우는 피파가 주관한 대회 올스타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브라질의 우승의 일등공신이 수비력이라 할 만큼 대회에 나선 철의 포백은 난공불락이었다. 이 외에도 골키퍼는 클라우디우 타파렐이었다.

다시 말하면 당시 브라질은 최전방 공격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수비적인 임무를 동시에 부여받으며 상대를 압박했으며, 상대 공간을 노리는 효율적인 축구로 대회 우승에 성공했다. 역습을 효율적으로 활용했으며 호마리우와 베베투의 한방은 브라질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데 큰 도움을 줬다고 볼 수 있다.

24년의 기다림, 통산 4번째 우승에 성공한 브라질

본선에 나선 브라질은 러시아와 카메룬, 스웨덴을 상대로 2승 1무를 기록하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는데 16강 상대는 개최국 미국이었다. 스탠퍼드 경기장에서 열린 이날 경기에서 브라질은 부진했으며, 레오나르두(現 AC 밀란 감독)의 퇴장까지 겹치며 힘든 경기를 치른다. 베베투의 결승골로 승리했지만, 대표팀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졌으며 그들이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인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기 시작한다.

미국에 신승을 거둔 브라질은 네덜란드와 8강에서 맞붙는다. 4년 후, 4강에서도 명승부를 보여준 양 팀은 5골을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브라질이 승리를 거둔다. 미리 보는 결승전으로 주목받은 양팀의 경기는 유럽이 승승장구하는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미의 강호 브라질이 78년 이후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할 수 있을 지가 관심사였다.

경기 초반부터 브라질은 네덜란드의 수비진을 뚫기 위해 공격을 시도했다. 쿠에만이 버티는 네덜란드의 수비진은 지난 대회 16강 탈락의 아픔을 이겨내고자 브라질을 상대로 선전했지만, 호마리우와 베베투는 벅찬 상대였다. 조직력이 흐트러진 네덜란드는 후반 8분 호마리우에 첫 실점을 내준다.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한 호마리우는 먹이를 찾아나서는 맹수처럼 상대 골문을 지속적으로 공략했으며 베베투의 패스를 득점으로 연결했다.

이후, 베베투의 발에서 추가 득점이 나왔다. 네덜란드 수비진이 우왕좌왕한 틈을 노린 호마리우는 상대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완벽하게 뚫고 나서, 베베투에게 공을 연결했으며 이를 받은 베베투는 골키퍼마저 따돌리며 빈 골대에 공을 집어넣었다.

두 번의 득점은 브라질의 승리에 무게를 두었지만, 네덜란드에는 데니스 베르흐캄프가 있었다. 베르흐캄프는 추가 득점을 내주자마자 감각적으로 만회 득점에 성공하며 추격의 의지를 살렸으며 아론 빈테르가 후반 21분에 동점골에 성공하자 분위기는 네덜란드에 돌아섰다.

하지만, 브라질에는 브랑코가 있었다. 대회 좌측 풀백으로 나온 브랑코는 전의가 되살아난 네덜란드를 상대로 후반 종료 직전 통쾌한 중거리 슈팅에 성공하며 브라질이 3-2로 승리한다. 이는 분위기가 네덜란드로 넘어간 상황에서 브라질 선수들이 끝까지 집중하면서 얻은 성과였다.

네덜란드를 제압하며 4강에 진출한 브라질은 조별 예선에서 만났던 스웨덴과 경기를 펼친다.

예선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던 브라질은 스웨덴의 수비진을 쉽게 공략하지 못했지만, 호마리우의 한방으로 1-0으로 승리. 24년 만에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한편, 이탈리아도 불가리아를 제압하며 결승에 진출하는데 2002 한일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전통과 신예의 싸움은 모두 전통이 승리를 거두면서 신예의 돌풍은 그쳤다.

1994년 7월 18일, 패서디나 로즈볼 구장에서 브라질은 이탈리아와 12년 만에 재회했다. 82년 황금의 4중주에 굴욕을 안겨준 이탈리아는 이번 결승전에서 지난 대회의 영광을 이어나가며 1970년 자신의 선배들이 1-4로 무릎을 꿇은 결승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경기에 임했다.

브라질은 기존의 멤버로 경기에 임했으며, 이탈리아는 마싸로와 로베르토 바죠를 투톱으로 두면서 좌우 측면 자원으로 베르티와 도나도니를, 중앙 미드필더에는 디노 바죠와 알베르티니를 배치했다. 포백은 무시와 베네리보를 풀백으로, 바레시와 말디니를 중앙 수비로 기용했으며 골키퍼는 팔류카가 나왔다.

결승에 오른 양팀은 월드컵에서 3번이나 우승하며 대회 최다 우승의 타이틀 경쟁에 나섰다. 또한, 팀의 에이스인 호마리우와 로베르토 바죠가 대회 MVP를 위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치열한 접전을 예고했다.

경기가 시작한 순간, 브라질은 호마리우와 베베투를 앞세워 이탈리아의 수비진을 지속적으로 괴롭혔지만, 프랑코 바레시의 호수비에 막혀 번번이 고전했다. 브라질의 창과 이탈리아의 방패가 격돌한 상황에서 방패는 창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았으며 기습적인 공격을 통해 브라질의 수비진을 공략했지만, 무산됐다. 기본적으로 역습에 중점을 두는 브라질은 상대에게 쉽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으며 경기 내용에서도 이탈리아에 앞섰다.

이후에도 브라질은 계속된 공격을 통해 이탈리아의 골문을 노렸지만, 바레시와 이탈리아의 수비진은 매서웠으며 전, 후반 그리고 연장에서 보여준 양팀의 120분간 사투는 승부차기로 넘어가게 됐다.

운명의 승부차기가 시작된 순간 양팀의 첫 번째 키커인 마르시우와 바레시는 모두 승부차기에 실패했지만, 호마리우와 알베르트니, 브랑쿠와 에바니는 모두 성공했다. 2-2로 균형이 잡힌 상황에서 브라질의 주장 둥가는 침착하게 승부차기에 성공했지만, 이탈리아는 마사로와 바죠가 모두 실패하며 2-3으로 무릎을 꿇는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바죠에 의해 결승에 진출했지만, 바죠 때문에 준우승에 머무르는 불운의 팀이 되었다. 반면, 브라질은 24년의 기다림 끝에 월드컵 우승에 성공하며 대회 4번째 우승에 성공.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대회 직후 지나치게 안정적인 부분에 주안점을 둔 파헤이라의 브라질은 국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이들이 미국땅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최고였다. 이러한 파헤이라의 효율적인 축구를 계승한 카를로스 둥가는 자신의 스승이 쌓은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지금도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

[예고] ▶ 삼바 토크 19회는 2002년 월드컵을 제패한 스콜라리의 3R이 이어집니다.

[사진= 1994 미국 월드컵, 브라질 우승의 주역 카를루스 둥가 ⓒ FIFA 공식 홈페이지 캡쳐 ]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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