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5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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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사랑을 싣고' 인요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통역" [전일야화]

기사입력 2019.06.08 07:05 / 기사수정 2019.06.08 02:11

유은영 기자

[엑스포츠뉴스 유은영 기자] 인요한 교수가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 통역을 맡았다고 밝혔다.

7일 방송된 KBS 1TV 'TV는 사랑을 싣고'에 인요한 교수가 출연했다. 인요한 교수는 최초로 한국형 구급차를 만든, 순천 토박이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1993년 한국형 구급차를 최초 개발하기도 했다.

인요한 교수는 집안에 대해서 밝혔다. 인요한 교수는 "복잡하다"며 "쉽게 말하면 아버지는 켈트족 미국인이다. 어머니는 원주민 혼혈아 코만치다. 브레이브 하트가 코만치를 만나 애를 낳았는데 전라도에서 컸다. 그게 나다"라고 웃었다.

인요한 교수의 집안은 약 130년간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중에서도 전라도에 오랜 기간 정착했다. 인요한 교수는 "우리가 여기서 워낙 오래 살았다. 할머니가 1899년 목포 태생이다. 4대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아버지는 군산에서, 저는 전주에서 출생했다"고 밝혔다.

그는 "1895년 외증조부 유진 벨이 한국 땅을 밟은 이후 130년간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유진 벨은 일본으로부터 위협받던 고종 황제를 도왔다. 당시 미국 선교사들이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은 3.1운동을 미국에 알렸다. 일본 잔인성을 비난하며 신사 참배를 반대하기도 했다. 아버지 휴 린튼은 인천 상륙 작전에 참여했다"면서 "전쟁 후에는 순천에서 선교 및 구호 활동을 하셨다. 어머니는 결핵 퇴치 사업에 앞장섰다"고 덧붙였다.



특히 인요한 교수는 "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 통역을 했다. 한동안 굉장히 힘들었다. 중요한 건 전라도와 함께 130년이 돼 간다. 좋은 일도 함께하고 안 좋은 일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요한 교수는 친구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요한 교수는 "외국인 학교에 가야 했다. 대전으로. 우울증에 빠졌다. 기숙사 규율이 엄격했다"며 "야생마를 거기다가 집어 넣어놨으니 환장할 일이다. 그리고 영어를 너무 못하니까. 생긴 건 미국놈인데 영어를 못 해"라고 웃었다.

그는 "외국인 학교 다니면서 말 안 듣는 놈 손 좀 봤다. 한스 그놈을 조사부렸다. 학교가 '인요한이 폭력을 행사했으니 기도해야 한다'고 하더라. 동급생 모두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버릇을 고쳐줬는데 상을 줘야지 회개를 시키냐고 했다. 동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 아니냐. 그 정도로 문화 충격이었다. 제가 가서 한 달 아팠다. 적응을 못 해서. 소화가 안 되고 먹는 거 다 토하고 그랬다. 병원까지 갔다"고 했다.

인요한 교수는 이어 "6주에 한 번씩 집에 왔다. 연락을 받고 친구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하니 천국에 온 기분이더라. 지금도 생각하면 아주 죽겠다"며 "너무 반가웠다. 밤늦게까지 놀아도 불과 3일이면 끝났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기차 소리만 들려도 눈물이 난다. 지금도 그렇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친구를 떠나야만 하는 기차 소리가"라고 덧붙였다.

enter@xportsnews.com / 사진=KBS 1TV 방송화면

유은영 기자 y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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