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0.01.04 02:43 / 기사수정 2010.01.04 02:43
최우수선수상(MVP) ,득점상 ,"FAN"tstic 플레이어
2009년 전북에서의 이동국의 성적표이다. 이번 시즌 이동국은 그동안 포효하지 못했던 사자왕의 포효를 터트렸다.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 허정무감독이 이끄는 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과연 이동국이 이번 2010남아공 월드컵 최종 명단에 들어서 그동안 한이 맺힌 월드컵 무대에서 한을 풀 수 있을까?
굴곡 많았던 이동국의 역사
이동국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19세의 나이로 선발되었고, 유럽의 강호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후반에 교체 투입되면서 강한 슈팅으로 세계정상급 골키퍼 반 데사르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등 예사롭지 않은 플레이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후 그는 2000년 아시안컵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한국의 대표 공격수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도전하고자 한 이동국. 하지만, 적극적인 수비 가담이나 폭넓은 움직임을 요구하던 히딩크 국가대표 감독에 눈에 못들고 결국 주전경쟁에서 탈락하면서 2002년 월드컵출전의 꿈이 무산되었다.
그 후 2003년 광주 상무에 입대하였고 2004년 조 본프레레 감독이 부임 후 다시 한번 국가대표 선출되면서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도전하였다. 그때 당시 이동국은 2005년 2월 열린 월드컵 예선에서 환상적인 플레이로 2006년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독일월드컵 국가대표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2006년 4월 5일 열린 리그 포항과 인천의 경기중 갑작스럽게 치명적인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으로 결국 2006년 독일 월드컵 또한 출전하지 못했다. 꿈의 무대 월드컵 출전은 좌절되었지만, 성공적인 재활과 K-리그 활약을 바탕으로 이동국은 2007년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 입단하면서, 잉글랜드 무대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축구종가까지 진출했지만…이상하게 꼬여간 커리어
그러나 이동국은 계속되는 골대 불운 등 부진 끝에 결국 2008년 7월 K-리그의 성남 일화로 이적했다. 이동국의 영입으로 공격에서의 시원한 축포를 기대한 성남. 하지만, 이동국의 발끝에서 골은 좀처럼 터지지 않았고, 결국 13경기 출전 2골 2도움,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체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그해 성남은 6강 플레이오프 전북과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고, 성적 부진의 이유로 김학범 감독이 사임하면서 새롭게 신태용 감독이 부임하였다. 신태용 감독은 부임 이후 '팀 개혁'을 선언하였고, 이동국을 비롯해 여러 선수를 방출리스트에 올리면서 팀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동국은 2009년 1월 당시 조재진의 공백으로 스트라이커 부재 문제를 안고 있던 전북으로 둥지를 옮겼고, 절치부심한 마음으로 전북에서의 새삶을 시작했다.
묵은 한을 털어내다
최강희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과 함께 부활을 준비하던 이동국은 시즌 초반 우려를 낳는 플레이를 보였지만, 이후 해트트릭을 신고하면서 부활의 조짐을 보이더니, 결국 32경기 출전해 22득점을 올리며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전북은 정규리그 1위로 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했고 이동국은 리그 득점왕에 오르면서 잊지 못할 한해를 보냈다.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떠오른 지금 이동국은 이제 이 기세를 몰아 2010 남아공 월드컵에 출전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보았던 사자왕의 포효를 다시 한번 월드컵에서 볼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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