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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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존 로커는 왜 메이저리그에서 사라졌나?

기사입력 2009.11.11 01:40 / 기사수정 2009.11.11 01:40

조인식 기자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박찬호가 LA 다저스에서 맹활약을 펼칠 때 많은 관심을 가지고 메이저리그를 지켜본 이라면 존 로커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존 로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촉망받는 마무리 투수였다. 변화구 구사나 제구력 면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젊은 투수답게 싱싱한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의 위력은 약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에 더해 왼손투수라는 이점은 그를 리그에서 가장 유망한 클로저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93년 드래프트에서 그리 빠르지 않은 18라운드 지명을 받고 고교졸업 후 브레이브스에 입단한 로커는 98년에 이르러 빅리그 무대를 밟게 되었다. 데뷔 해부터 특유의 강속구를 바탕으로 이닝 당 1개가 넘는 탈삼진을 기록했으며, 이듬해인 99년에는 팀의 주전 마무리였던 케리 라이텐버그의 부상을 틈타 터너필드의 9회를 책임지는 선수가 되었다. 그는 경기장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줄 아는 선수였고, 사이영 3인방(그렉 매덕스, 탐 글래빈, 존 스몰츠)과 함께 브레이브스의 마운드를 이끄는 또 하나의 기둥이었다. 그러나 그는 영광스러운 커리어를 쌓은 3인방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성적으로 불명예스런 퇴장을 하고 말았다. 라커는 매덕스처럼 승부욕이 있었지만 매덕스와는 달리 그런 승부욕을 마운드 위가 아닌 엉뚱한 곳에 표출하기도 했고, 글래빈과 같이 왼손으로 공을 던졌지만 글래빈의 순수한 열정은 따라가지 못했으며, 스몰츠의 강속구를 닮은 공을 가졌지만 스몰츠의 모범적인 사생활을 닮지는 못했다. 쉽게 말해 그는 그라운드 안보다 밖에서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그는 평소 인종차별적인 마인드를 가진 선수였다. 한 흑인 동료를 동물에 비유하며(브레이브스에서 뛴 바 있는 흑인선수 랜달 사이먼은 이를 자신을 두고 말한 것이라고 여겼다.)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끼친 바 있는 로커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라이벌인 뉴욕 메츠에 대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 이주민과 성적 소수자 등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뉴욕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로커의 이러한 반응에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뉴욕의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이후 미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기도 했으며, 뉴욕 양키스의 열렬한 팬으로 잘 알려져 있다.)와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 까지도 이러한 로커의 발언을 비난했다.
 언론과 야구팬들의 집중 포화를 받고 정신적으로 흔들린 로커는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의 팀이 방문하는 곳마다 야유가 끊이지 않았고 홈 팬들의 시선마저 곱지 않았다. 정신적인 부분이 많은 것을 지배하는 ‘멘탈 게임’인 야구에서 로커로서는 다시 일어설 가능성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인해 버드 셀릭 커미셔너로부터 출장 정지 처분을 받고, 징계가 풀린 후 팀에서 잠시 활약했으나 결국 2001시즌 중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쫓겨나듯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브레이브스의 존 슈어홀츠 단장은 이에 대해 인종차별 발언과는 상관없는 트레이드라고 밝혔지만, 슈어홀츠 단장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인디언스 또한 로커를 감당하기엔 벅찼고, 마크 샤피로 단장은 그를 텍사스 레인저스로 보냈다.(그리하여 2002시즌을 앞둔 텍사스 레인저스는 메이저리그의 대표적 악동인 칼 에버렛과 존 로커, 그리고 경기 중 이단 옆차기를 날린 박찬호가 한 팀에서 뛰는 ‘문제아 집단’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부진했던 2002 시즌 후 끝내 레인저스에서도 방출당한 로커는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와 계약하여 1이닝을 던진 후 메이저리그에서 자취를 감췄다. 사고뭉치에다가 구위까지 예전과 같지 않았던 그는 더 이상 메이저리거 재목이 아니었다. 잘못 꺼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로커는 명백한 잘못을 했음에도 반성할 줄 몰랐다. 오히려 자신의 발언을 크게 기사화 한 기자를 비난하고 심지어 협박까지 가했으며, 리그를 떠난 뒤에도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MLBPA)가 선수들에게 금지약물 사용을 권하고 가르쳤다고 말하는 등 끊임없는 비행으로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비록 가벼운 실수는 아니었지만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자신의 일에 매진해 재기에 성공하고 팬들의 사랑까지 얻은 다른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로커의 사례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누구나 잘못은 한다. 하지만 뉘우치지 않는 태도나 사과를 가장한 책임 전가는 그가 저지른 잘못보다 타인을 더 불쾌하게 만든다. 

만약 로커가 ‘진심어린 사과’를 통해 모든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야구에만 전념했다면 그의 선수생활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조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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