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주애 기자]
"아직 연기에 매번 한계를 느낀다"
최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은 흡인력 있는 스토리, 눈을 뗄 수 없는 연출, 그리고 소름돋는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진 드라마로 호평받았다. 이 중심에는 극을 이끌어간 주인공 한서진을 연기한 염정아가 있다.
염정아는 'SKY 캐슬'에서 부산물 집 딸 곽미향이라는 과거를 숨기고, 그레이스 켈리 뺨치는 우아함을 겸비한 은행장의 딸로 살아가는 한서진을 연기했다. 한서진은 대를 이어 의사를 하는 강준상(정준호 분)을 병원장으로, 딸 예서를 서울 의대에 보내 3대째 의사 가문을 만들려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염정아는 시청자들로부터 '한서진 그 자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말투, 표정, 몸짓은 물론 얼굴 근육 하나하나까지 연기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런 연기를 펼치기까지, 한서진에 빙의하기 위한 염정아의 무던한 노력이 있었다.
"대본으로 한서진을 볼 때도 '재수없다'기 보다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밝게 살아가고, 세상을 좀 더 폭넓게 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한서진을 연기해야 하니까 감정을 이입해서 본 것이다. 일단 한서진과 나는 부모로서 많이 다르다. 그래도 딸이 잘 먹고, 잘 자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모정은 공감이 갔다."
이렇게 한서진으로 몰입해있던 염정아에게 후반부 급격하게 모든 사실을 반성하는 한서진의 모습이 조금은 어렵게 다가오기도 했다고. 그는 "혜나가 죽고 나서부터 연기가 힘들었다. 한서진은 극 중 많은 사람과 부딪힌다. 그리고 그 관계도 계속해서 변한다. 김주영을 대하는 것도, 딸 예서를 대하는 것도 감정이 계속 변한다. 그래서 조금만 실수해도 앞뒤가 맞지 않고, 방향이 달라지니까 이걸 고민하는 게 힘들었다. 그릐고 한서진으로 살아온 시간들이 있는데, 마지막회에서 용서를 받기 위한 모습으로 바뀌니까 그걸 받아들이기까지 대본을 많이 봤다. 내가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않으면, 보는 분들이 더욱 불편할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염정아가 꼽은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혜나(김보라 분)가 남편의 딸이라는 걸 알고, 혼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앞으로 예서가 겪을 일을 생각하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는 장면.
"장면 중에 소리 없이 우는 신이 있는데, 이건 감독님과 어떻게 할까 의논을 하고 만든 신이다. 대본 상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워하는 한서진이라고 간단하게 나와있었다. 감독님과 의논을 하면서 한서진이 이 집안에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혼자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감정이 머리끝까지 끓어올라오는 걸 어떻게 주체할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한서진이라면 소리 없이 소리지르는 걸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그 신에 대해 이야기해주셔서 뿌듯했다."
또한 그는 섬세한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는 평에 "표정이 바뀌고 그런건 나도 몰랐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었던 것 같다. 그런 컷들이 몇 개 있다"며 "얼굴 근육은 내가 움직이려고 해도 안 움직여진다. 그런데 한번은 내가 몰입하니까 내가 움직이려고 해도 안움직여 진다. 하지만 연기에 몰입하면 그냥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걸 포착하는 카메라 감독님과 편집에 사용하는 감독님의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보인 것 같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염정아는 한서진과 엮인 수많은 인물들 중 최고의 파트너로 김주영을 꼽았다. 그는 "서형이하고 저는 김주영의 사무실에서 많이 만났다. 그 장소는 가는 순간 이상하다. 거기에 앉아있기만 해도 기가 빨리고 그랬다. 거기에만 앉아있으면 서형이가 날 바라보는 눈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서형이의 말을 경청해서 듣다가 빨려 들어가고, 세뇌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배경이 전부 블랙이고, 서형이도 검은 옷을 입고 있으니 얼굴만 보인다. 주변 스태프도 안보인다. 걔하고 나와 둘이서만 앉아있는데 정말 환상특급을 타는 느낌이다. 현실하고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그 느낌을 설명했다.
또 한 명, 인상깊은 파트너는 바로 딸들로 나온 예서 역의 김헤윤과 예빈 역의 이지원이다. 염정아는 "다른 작품에서는 아역을 기다려주다가 감정이 깨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단 한 번도 그런적이 없었다"고 그들의 연기를 극찬했다.
"애들이 너무 잘해줘서 내 것만 잘하면 됐다. 현장에서의 태도나 대본 숙지력이나 모두 완벽했다. 예서, 예빈이는 말할 것도 없고 혜나까지. 나와 걸리는 모든 친구들이 다 잘했다. 연기를 보면서 '내가 우리 혜윤이 나이 때 저정도 연기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예빈이는 말할 것도 없다.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지 신기했다."
언제나 연기력으로 논란이 된 적이 없었던 염정아기에, 이러한 자기 반성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염정아는 "과거에는 연기를 잘 못했다"며 "미스코리아 되고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영화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잘 못했던 것 같다. 다시 보라고 하면 부끄러울 연기들이 있다. 작품을 워낙 많이 했다. 동시에 두 개도 하고 그랬다. 지금은 그때의 그런 경험들이 다 바닥으로 다 깔려 있기때문에 연기를 더 진지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후배들이 나에게 뭘 물어보면 그냥 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하라고 이야기해준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최고의 연기력에도 늘 겸손한 태도로 정진하는 배우 염정아.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한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매번 한계를 느낀다. 감정 신을 찍을 때 매번 긴장한다. 연기를 하면서 그 긴장을 깼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감 정신을 해내고 나면 너무 좋다. 옛날에는 할머니 돌아가신 생각 같은 슬펐던 생각들을 기억하면서 억지로 울려고 했었다. 2~30대에 그랬었다. 그런데 이 방법, 저 방법, 다 시도해봤지만 결국 캐릭터의 입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입장에 서야지만 감정이 나오더라. 그걸 한 번 터득하고 그걸 연기로 해보니까 어느 순간 느낌이 왔다. 그럼에도 잘 안될까 봐 항상 걱정이 되고 고민이 된다. 굉장히 예민해진다. 앞으로도 그 한계를 극복해야한 다. 배우로서 나의 숙제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이를 고치기 위한 방법을 계속 찾는 염정아라니, 그의 연기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백척간두진일보'(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다달아 또 한걸음 더 나아간다)라는 말이 있다. 염정아가 내디딜 또 다른 한 발이 어디에 닿을 지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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