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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실패했다 - 현대유니콘스 편

기사입력 2005.09.26 05:14 / 기사수정 2005.09.26 05:14

이석재 기자
명가의 자존심 지키기 원년, 결과는 참혹했다

"최강의 유니콘스, 꿈의 구단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응원가의 후렴구는 위와 같이 시작된다. 1996년도에 창단하여 창단 첫 해 준우승을 시작으로 1998, 2000, 2003, 2004년까지 무려 네 차례나 우승을 차지한 현대 유니콘스. 2000년대 이후 '최강'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팀은 현대 유니콘스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는 한국 프로야구의 신흥 명문팀으로써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었고 그 뒤에는 명장 김재박 감독이 있었다. 비록 모기업은 재무 상태 악화에 경영권 분쟁 등으로 시끄러웠고 구단에 대한 지원은 커녕 연고지 문제도 해결하지 못 하는 상황이었지만 구단과 선수들이 뭔가 해내겠다는 정신만큼은 타구단을 압도했고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삼성에 주력 FA 선수들을 모두 내준 2005년은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박경완, 박종호, 박진만과 심정수…

사람의 중심이 상체와 하체를 지탱하는 허리에 있다면 야구 수비의 중심은 센터 라인에 있을 것이다. 특히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키스톤 콤비인 2루수와 유격수, 혼자만이 돌아앉아 다른 8명을 지켜보고 진두지휘하는 포수의 중요성은 현대 야구에 와서도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강조되고 있는 추세이다. 

현대는 최근 3년 동안 팀의 주축 선수 네 명을 잃었다. 박경완(2003 시즌, SK로 이적), 박종호(2004 시즌, 삼성으로 이적), 박진만, 심정수(2005 시즌, 삼성으로 이적) 등이 1년 간격으로 차례 차례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이들을 영입한 팀들에게 그들이 그대로 플러스 요인이었는지는 분명히 확인해 봐야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현대에 입장에서는  철저하게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박종호 - 박진만 콤비에 밀려 출장조차 어려웠던 서한규와 채종국이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8년간 현대에서 대주자로만 활약한 정수성은 입단 이후 처음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이들이 처음 또는 2년째 주전 활약을 한 선수치고는 분명히 좋은 성적을 거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들이 빠져나간 선수들을 대신할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실제 그들의 기록 역시 이를 증명하고 남음이 있다.

"투수 왕국" 현대에는 낯선 인물들만 가득

올시즌을 앞두고 전문가들 대다수의 의견은 "그래도 현대인데~ "라는 현대의 저력을 믿는 것이었고 이의 밑바탕에는 수년간 투수왕국으로 군림했고 3년 연속 투수 신인왕을 배출했던 현대의 강한 투수력에 무게감이 실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 섞인 예상은 그저 기대일 뿐이었다. 

정민태가 부상으로 시즌 개막을 함께 하지 못했고 이어진 허벅지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으며 지난 해 신인왕 오재영은 고졸 신인으로써는 다소 많다고 싶은 149이닝을 던진 2004년의 후유증으로 시범경기부터 부상 조짐을 보이더니 5월 중순이 되어서야 1군 마운드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애초의 그림과는 아주 다른 그림이 되어 버렸다. 빅 3 중에 유일하게 남은 김수경 역시 시즌 초반 불안하게 승수를 쌓아가다 고질적인 어깨 부상으로 8월  14일 한화 전 선발을 마지막으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면서 2003- 2004 시즌 2연패의 주역이 모두 사라지는 패닉 상태에 이르게 된다. 

팀의 주력인 빅3 투수들과 함께 팀의 3연패를 이끌 것으로 기대했던 캘러웨이는 나름대로 제몫을 했고 기아로부터 영입한 배명고 출신 9년차 황두성이 11승 7홀드 1세이브라는 기대 이상의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중간과 선발에서 알찬 성적을 거둔 7년차 송신영이나 4년차 이대환,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제몫을 다한 부산고 출신 2년차 노환수의 발굴 역시 처참했던 마운드 상황에서 거둔 수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늘 위기감이 흐르는 불안한 내야진
 

박경완, 박종호, 박진만이 사라진 내야진은 그야말로 땜방 공화국이었다. 1년전 박종호의 삼성 이적으로 2루의 주인이 되었던 채종국은 딱 1년이 지난 2005 시즌에는 박진만의 이적으로 유격수 자리를 맡아야만 했다. 1년 전 박진만이 유격수를 든든히 지킬 때 수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2루수로써의 채종국은 수비도 어느 정도 되었고 타격도 야무진 선수로 타팀의 위협적인 존재였으나 박진만이 없이 팀 내야 수비를 진두지휘해야 하는 채종국은 함량 미달의 선수였다. 수비에 대한 부담이 커지다 보니 타격 역시 부진한 모습이었다. 

지난 시즌 병역 파동으로 동계 훈련이 부족했던 3루수 정성훈 역시 특유의 타격 재질로 홈런도 간간히 터뜨리는 등 타격에서는 팀에 큰 보탬이 되었지만 수비에서는 늘 불안 요소였다. 수비가 불안하기로 유명한 한화(109개)에 이어 실책 2위(100개)라는 기록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다.

노쇠한 타선, 새로운 피가 필요해

'안타치고 도루하는' 전준호는 올해 37살(대학은 87학번)으로 프로 15년 차가 되었다. 확실히 배트 스피드가 느려지면서 삼진이 크게 늘어나는 모습이다. 1년전 487타수를 기록하면서 64개의 삼진을 기록했던 그가 올해는 고작 276 타수를 기록하면서 삼진은 무려 41개를 기록했다. 

K/BB의 비율로 보면 더 심각해짐을 알 수 있는데 2004년 전준호는 64삼진/63볼넷이었던 것에 비해 올시즌은 41삼진/24볼넷이었다. 안타수는 15년 통산 최저인 74개에 도루 역시 데뷔해와 부상으로 시달린 2000년도와 같은 18개에 그쳤다. 올시즌 기록을 놓고 보면 전준호의 응원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출루가 안되니 도루도 없어졌고 어깨가 약한 그의 핸디캡을 감안할 때 정수성의 주전 승격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중심 타선을 이끈 이숭용 - 서튼 - 송지만의 나이의 합은 102살(다른 종목 용어 같다 붙이는게 유행인 것 같은데 이런 것을 센츄리 클럽이라 하면 어떨지)로 평균 34살의 나이였다. 지난해 장가를 가면서 올시즌 새로운 각오로 시작한 이숭용은 송지만 - 서튼과 함께 홈런 선두를 견인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체력이 떨어지며 후반기에 거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며 '한국의 애덤 던'으로 불릴 만한 송지만은 모 아니면 도 식의 홈런과 삼진을 넘나드는 배팅으로 늘 불안한 요소였다. 그나마 올시즌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 할 수 있는 서튼의 활약이라도 있었기에 최하위까지의 추락은 없었다는 생각이다.

연고지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현대

올 시즌 시작과 함께 현대 유니콘스 측에서는 임시 연고지로 쓰고 있는 수원에 대해 SK에게 양보를 부탁하는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으나 단호히 거절당했다. 사실 SK로부터 연고지 이전에 대한, 정확히 표현하면 서울 입성에 대한 부담금으로 받은 54억이라는 돈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런 화해의 제스츄어는 언어 도단이라고 밖에 볼 수 없지만 프로야구 전체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2002년 이후 4년째 신인 1차 지명을 하지 못한 현대는 2006년 2명, 2007년 3명으로 확대되는 신인 1차 지명 제도로 인해 고사 상태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올시즌 2차 1번으로 광주일고의 살림꾼 강정호를 지명하기는 했지만 당장 내년부터 현대가 2차 1번으로 지명할 수 있는 선수는 전체 15위에서 22위 사이에 선수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강정호와 같은 좋은 선수를 2차 1번에서 고를 수 없다는 것이고 2차 1번이 전체 22위에서 29위 사이의 선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2007년에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여러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대가 수원 잔류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여긴다면 SK가 이에 대해 조금 열린 시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54억의 일부를 분활 상환하는 조건으로 수원 및 경기 남부의 학교에 연고권을 인정하는 것이 좋은 대안일 것이다. 사실 SK 역시 인천 팬 확보에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도 만만치 않아 다른 연고 지역의 경기 개최 등은 엄두도 못내고 있는 시점이고 결국 우리 야구가 광역 연고제가 아닌 지역 연고제로 가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공멸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한다면 이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는 어떻게든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특별히 나아질 것은 없지만

참혹했던 2005 시즌을 마감하면서도 특별히 달라질 게 없는 내년 시즌이 더욱 걱정이 된다. 올시즌을 마치고 FA가 되는 송지만을 잡을 재정적인 지원이 따를지 의문이며 김재박 감독이 공공연하게 주전 내야수 감인 김민재나 정경배의 영입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들에게 돌아갈 FA 내야수는 두산의 홍원기 정도가 유일하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 서튼에게는 벌써부터 일본에서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고 부상으로 시즌을 마친 마무리 조용준은 내년 시즌이 불투명하다.

신인 1차 지명권이 없어 최우선으로 뽑은 광주일고 출신 강정호는 김동수와 강귀태가 지키고 있는 포수보다는 다른 포지션으로 돌리고 싶은 욕심이 있을 것이고 덕수정보의 에이스 출신 김영민은 선발투수감이라기 보다는 미들맨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젊은 피의 수혈도 어렵다는 것이다.

4회 우승의 역사를 이룬 최연소 최다승 기록의 김재박 감독은 과연 어떤 묘안으로 이런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시즌 막판 서튼과 롯데 최대성의 트레이드라는 기막힌 발상을 언론에 흘린 그의 행적으로 보아 잉여 전력의 트레이드가 유일한 대안으로 보인다. 내년 시즌 구성조차 어려워 보이는 선발 로테이션 구축을 위해 선발 투수진에 여유가 있는 롯데가 그 타겟이 될 것으로 보이며 고만고만한 내야수가 풍부한 두산에게도 손을 벌릴 가능성이 크다. 롯데나 두산이 좌타요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강병식이나 전근표를 대상으로 올린다면 즉시 전력 요인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2004년 오재영 같이 내년에 깜짝 놀랄 만할 신인급 스타가 탄생하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한 마디로 도박에 가깝다.

'부자 망해도 3년간다'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현대 유니콘스의 모습이다. 3년 동안 네 명의 주축 선수를 빼앗기고 약체로 전락한 그들이 어떻게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를 지켜보는 것 역시 내년 시즌 관심거리일 것이다. 


이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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