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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렇게 실패했다 - 기아 편

기사입력 2005.09.21 01:58 / 기사수정 2005.09.21 01:58

이석재 기자

'가을에도 야구하자' 라는 롯데 팬들의 플래카드 문구처럼 어느덧 그 가을이 오고 있다. KBO가 10월 1일부터 시작되는 포스트시즌 일정을 발표함으로써 페넌트레이스는 말그대로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각 팀이 5-6 경기를 남겨놓은 20일 현재 가을 잔치에 참가할 네 팀은 정해진 상태이다. 준플레이오프제도가 도입된 이후 프로야구에서 한 해 농사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을 잔치에 참가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닐까 싶다. 이 시점에서 '실패한' 네 팀의 원인을 찾아보고 그 팀들의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편집자 주)

제1부 :  V10을 노리는 용맹스러운 호랑이들은 없었다 - 기아타이거즈 편

2005 시즌 개막을 앞두고 전문가들의 우승팀 예상에서 빠지지 않은 팀이 삼성과 기아였을 것이다. SK와 현대가 4강권에 들 것으로 보이나 우승을 넘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 사실 그럴만했던 것이 기아에게는 검증된 두 용병 리오스에 2003 시즌 후반기에만 8승을 거뒀던 마이클 존슨이 합류하였고 기존 FA선수인 마해영에 팀 FA 선수 심재학을 잔류시키면서 별다른 전력 손실없이 시즌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최강의 원, 투, 쓰리 펀치의 꿈은 사라지고 -

리오스 - 존슨 - 김진우로 이어지는 세 명의 선발 라인업은 8개 구단 최강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2004 시즌 17승으로 레스, 배영수와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던 리오스나 토종 에이스 김진우의 위력은 이미 검증된 바 있었고 메이저리그 출신 마이클 존슨 역시 절반의 시즌을 통해 위력을 과시한 바 있었다. 

그러나 시즌 초에 합류가 가능할 것이라고 하던 김진우는 재활이 늦어지며 등판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했고 4월 15일에 첫선을 보이고 5월이 되어서야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기 시작하였으나 투구 밸런스를 찾지 못하고 조기 강판하기 일쑤였다. 기아의 우승 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2003년도의 놀라운 포스를 기대했던 존슨 역시  팔꿈치 등의 잔부상을 이유로 1개월만에 퇴출 수순을 밟았다. 홀로 남은 리오스가 다른 두 사람 몫을 해야 했으나 지난 3년간 무리한 탓인지 예상보다 훨씬 부진한 내용의 피칭을 보였다. 처음부터 뭐가 잘못 꼬여도 단단히 잘못 꼬인 것이었다.

- 선발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더 위험했던 것은 불펜진 -

시즌 개막과 함께 기아가 구상했던 불펜의 축은 셋업맨에 이강철, 마무리 신용운 구도였다. 2004 시즌 중간에서 120.2 이닝을 던지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던 유동훈이 병풍으로 구속되면서 기아의 불펜진은 그 틀부터 다시 짜야하는 상황이었지만 벤치의 대응은 안일했다. 체력 저하로 기량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이강철을 지나치게 과신한 탓이었는지 유동훈의 빈 자리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설상가상이라고 2004 시즌 이강철과 함께 더블 스토퍼로 활약하며 11세이브를 올렸던 신용운의 팔이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통파 투수는 무리가 따르면 팔이 내려가고 잠수함 투수는 무리가 따르면 팔이 올라간다는 야구계의 속설처럼 신용운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몸이 예전같지 않다보니 자신감은 더욱 떨어지게 되고 늘어나는 것은 블론세이브였다. 그러나 벤치는 그의 자신감 결여에 촛점을 맞췄을 뿐 몸상태에 대한 대책이 부족했다. 결국 신용운은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고 기아는 2006 시즌에 신용운이라는 선수를 전력에서 제외할 수도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안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불안한 불펜의 틈에서 윤석민이라는 쓸만한 재목을 발견한 것이다. 분당야탑고를 졸업한 신인 윤석민은 신용운이 마무리에서 이탈한 이후 7세이브를 거두며 마무리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나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당시 유남호 감독 대행에게 마무리투수로 뛰기 어렵다고 하면서 원래의 자리인 중간으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고졸 신인 윤석민이 보여준 배짱 있는 피칭은 너무나 인상적인 것이었다.

- 부실한 내야수비, 승패를 뒤집는 실책의 연속 -

1루수 장성호 - 2루수 김종국 - 3루수 손지환 - 유격수 홍세완으로 연결되는 기아의 내야진은 공격에서는 최정상급, 수비에서도 리그 정상급이라고 평가되는 라인이었다. 그러나 1루수 장성호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내야수는 동시에 풀가동된 경기가 얼마되지 않을 정도로 부상 및 슬럼프에 시달렸다.

리그 최강의 공격형 유격수로 꼽혔던 홍세완은 고질적인 무릎부상에 시달리며 시즌 개막전부터 유격수가 아닌 3루수로 출장하게 되었고 유격수 자리는 입단 이후 줄곧 2루를 맡아온 김종국이, 2루수는 손지환과 김민철이 번갈아가며 맡게 되었다.

원래부터 수비에 그다지 강점을 보이지 못했던 홍세완은 강한 타구 처리에 미흡한 모습을 보였고 2루수가 익숙했던 김종국 역시 수비에 부담을 느끼며 타격마저도 안 되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한 시즌도 풀타임 출전 경험이 없었던 손지환이나 김민철 역시 늘 불안하기만 했다. 불안한 내야진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투수들에게 갈 수 밖에 없었고 엽기적으로 높았던 리오스의 BIPA(Ball In Play Average)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 수석코치에 익숙했던 유남호 감독, 트레이드의 귀재(?) 정재공 단장 - 

김응룡 감독 밑에서 줄곧 수석코치로 손발을 맞춰온 유남호 감독은 김성한 전 감독의 퇴출로 감독직을 맡기는 하였으나 수석코치에 익숙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유남호 감독하면 팬들의 원성을 많이 샀던 한 템포 늦은 투수 교체가 떠오르는데 사실 수석코치 시절 좀더 냉정한 판단을 내리면서 감독에게 고견을 전달하하던 입장에서 성적이 유일한 평가 잣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감독의 입장으로 바뀌고 나니 그날 그날 승패에 연연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나이는 김인식 한화 감독을 제외하고 최연장자였지만 초보 감독임을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프로농구 기아 엔터프라이즈의 전설적인 단장으로 유명했던 정재공 단장. 그와 트레이드 관련해서 테이블에 마주 앉은 사람치고 이긴 적이 없었다는 전설적인 일화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프로야구에 와서 그의 전설은 이미 오래된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두산에서 어느 정도 용도 폐기된 진필중을 거액을 주고 데리고 온 것이나 정성훈에 10억이라는 돈을 주고 또다른 프랜차이즈 스타 박재홍을 영입한 것, 삼성에서 FA로 굳이 잡지 않던 마해영을 데리고 온 것 등 선수 영입에 연속되는 실책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 득실을 따지기에는 이르지만 그레이싱어의 영입을 위해 리오스를 두산에 넘긴 것 역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바닥을 쳤으니 이제는 대세 상승(?) - 

2005년은 기아가 전신인 해태를 포함해서 처음으로 최하위로 떨어지는 불명예스러운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쓰라린 기억은 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 더 용기있는 것이라는 말처럼  기아는 2005 시즌의 불명예를 거울 삼아 2006 시즌을 와신상담할 수 있는 한 해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단 내년 시즌의 전망은 그다지 나쁘지 않다. 10억의 계약금을 일시불로 지급하고 영입하는 올시즌 고졸 최대어 한기주(광주동성고)를 영입하는데 성공했고 늘 좌완 부재에 시달렸던 벤치의 고민은 두산으로부터 전병두를 영입하면서 한 시름 더는 모습이다. 엘지로부터 영입한 이용규는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이고 정원이나 조태수, 박정태 등 젊은 투수들의 성장도 눈에 띈다. 청소년 대표 2루수 김준무(서울고)나 대졸 랭킹 1위 투수인 박정규(경희대), 서울 랭킹 1위 포수인 이해창(경기고)를 지명한 신인 2차 지명 역시 성공적이었다는 평이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있는 전력 손실 요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타구단에서 데리고 갈 만한 큰 매력이 없는 이종범은 제외하더라도 개인적인 블로그에 불만의 글을 올려 물의를 일으켰던 마해영이나 공공연하게 FA 자격 취득 후에 수도권 팀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흘리는 장성호를 과연 내년에 안고 갈 수 있느냐는 우선 선결해야할 과제이다. 중간에서 쏠쏠히 자기 역할을 해온 이강철은 은퇴가 결정되었고 신용운이나 홍세완은 내년 시즌 전력 요인이 될지 불투명하다.

마해영과 장성호를 모두 안고 가는 방향으로 결정이 난다면 용병은 투수 두 명(그레이싱어는 유력, 블랭크는 불투명, 대체 용병 필요)으로 가야하겠지만 둘 중에 하나를 놓치는 상황이라면 용병은 타자 한 명, 투수 한 명으로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대회에서 연속 끝내기 홈런을 맞은 한기주에 대해서는 선발로 쓰면서 일정한 투구 간격을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며 국내 유일의 완투형 투수라고 할 수 있는 김진우 역시 마무리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아깝다는 생각이다. 

타격에서는 올시즌 놀라운 성장 가능성을 보인 송산을 김상훈과 경쟁시키면서 두 선수의 동시 성장을 꾀하고 김주형에게는 대형 야수 키운다는 생각으로 보다 많은 기회를 주되 수비에 대한 부담으로 타격 마저 안되는 그의 1루 전향 역시 고민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올시즌 최대 고민거리였던 마무리 투수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숙제로 남지만 스토브리그 내에 충분히 고민한다면 정답은 아니더라도 가장 정답에 가까운 근사치를 얻어낼 수도 있다. 구자운의 대안을 고민하다가 최선은 아니었지만 차선책이라 할 수 있었던 정재훈으로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낸 두산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성적을 내면서 구단이나 선수 모두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한 해를 보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최하위를 했다는 것이 선수들에게는 좋은 자극제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보다 긍정적인 생각이 더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모두가 우승 전력이 아니라고 했던 96년과 97년에 해태타이거즈는 2연패라는 놀라운 업적을 보이면서 모든 전문가들을 머쓱하게 했던 팀이었다. 그들을 계승한 기아타이거즈 역시 그럴 만한 충분한 저력이 있는 팀이고 힘이 있는 팀이다.

V10을 향한 호랑이들의 와신상담을 기대한다.

 



이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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