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흉측한 얼굴을 한 채 오페라 극장 지하에서 은둔하는 ‘유령’같은 존재이나, 알고 보면 유약하고 아픔을 지녔다. 설렘, 사랑, 분노, 아픔 등을 느끼는 똑같은 인간이지만 보통 사람처럼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없어 비극적인 인물이다.
극작가 아서 코핏과 작곡가 모리 예스톤의 합작품으로 199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뮤지컬 ‘팬텀’이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마찬가지로 추리 소설가 가스통 르루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Le Fantome de l'Opera)’(1910)을 원작으로 했다. 한국에서는 2015년 첫 선을 보였고 2016년에 재연했다. 올해 2년 만에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과는 다른 시각으로 팬텀을 바라본다. 명작 '오페라의 유령'과 비교될 수밖에 없지만,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낸 '팬텀'도 차별화된 매력이 있다. '오페라의 유령’ 속 팬텀이 광기를 띄며 사랑에 집착하는 존재였다면, ‘팬텀’은 에릭의 인간적인 면모에 집중했다. 러브 스토리보단 가족사와 비극적인 운명에 초점을 맞췄다. 팬텀은 타고난 예술적 재능의 소유자인데 흉한 얼굴 때문에 평생 가면 속에서 살아야 하는 남자다. 사람들에게 얼굴을 들킬까 봐 지하 세계에서 숨어 지내는 슬픈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왜 그가 흉측한 얼굴을 갖게 됐는지, 가면 뒤에 얼굴을 숨기고 살아야만 하는 사연을 조명하며 그의 감정에 오롯이 집중한다. 다만 주인공 팬텀의 사연에 치중해 팬텀에 대한 크리스틴의 마음은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자신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라는 말하는 팬텀의 운명은 과거 부모의 이야기로부터 비롯된다. 이때 긴 서사를 아름다운 발레 안무로 표현한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긴 이야기를 발레로 압축해 보여주는 시도가 특기할 만하다. ‘오페라의 유령’과 달리 '팬텀'에는 '밤의 노래’, ‘생각해줘요’, '바램은 그것 뿐' 등 익숙한 명곡이 없어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 대신 '내 고향', '넌 나의 음악', '이렇게 그대 그의 품에', '그대의 음악이 없다면' 등의 감미로운 넘버가 극에 녹아든다.
정성화는 어둠 속 빛이 돼준 크리스틴에게 반해 설레는 모습부터 비극적인 운명에 괴로워하는 면모 등 팬텀의 다양한 내면을 그리며 연민을 불어넣는다. 비스트로 신에서 소프라노의 기량을 뽐내는 크리스틴 다에 이지혜의 모습도 관전 포인트다.
마담 카를로타 역의 정영주는 특유의 에너지로 존재감을 발산한다. 악녀이지만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형편없는 음치 가수 연기를 비롯해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다 내꺼야’까지 무리 없이 소화한다. '아이다', '라 트라비아타', '발퀴레' 등 오페라와 팬텀과 크리스틴의 노래 연습 장면이 교차될 때 코믹함은 극대화된다.
내년 2월 1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185분.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