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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클로즈 업 V] 강혜미, "한국 여자배구의 전성기는 다시 온다"

기사입력 2009.09.16 11:48 / 기사수정 2009.09.16 11:48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한국 여자배구가 경쟁 체제를 갖추지 못하면 국제무대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여자배구팀의 세터였던 강혜미(35, 전, 현대건설)가 남긴 말이었다. 그녀가 예측한 우려는 아테네올림픽 이후, 현실로 나타났고 올림픽에 꾸준히 출전했던 한국 여자배구는 극심한 침체기에 빠졌다.

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까지 한국 여자배구의 전성기는 지속되고 있었다. 이 시절, 한국팀을 이끈 중심에는 '세터 강혜미'가 있었다. 90년대 초반, 한국대표팀을 이끈 이도희(41, 흥국생명 세터 코치)와 함께 한국 여자배구 최고의 세터로 평가받고 있는 강혜미는 '스피드'와 '조직력'을 앞세운 대표팀의 핵심 선수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코트를 떠난 그녀는 경기도 안산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고등학교 체육교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늘 배구가 함께한다고 털어놓았다.

벽에 새까맣게 물든 공 자국, '명품 토스'는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강혜미는 포지션을 세터로 옮겼다. 배구 선수로서 키가 그리 크지 않았던 그녀는 주로 수비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세터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신과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세터 포지션의 어려움도 감수해야 했다.

"지금도 벽에 새까맣게 물든 공 자국이 잊히지 않아요. 벽에 대고 토스 연습을 꾸준히 했는데 나중엔 공 자국이 벽의 색을 바꿀 정도였죠. 세터는 단시일 안에 완성될 수 없는 포지션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기본기를 철저하게 익히고 수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죠. 세터를 성장시키는 힘은 '구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겪으면서 대처능력을 익혀야 하는 자리죠"

실업팀과 대표팀에서 뛸 때, 강혜미는 가장 정교하고 빠른 토스를 구사하는 세터였었다. 양쪽 사이드와 중앙으로 빠르게 올라가는 토스는 '빠른 플레이'를 완성케 했다.

"배구를 시작할 무렵, 기본기를 비롯한 모든 것을 정말 제대로 배웠어요. 특히, 세터를 시작하면서 빠른 토스를 주문받았는데 볼을 손바닥으로 잡지 않고 바로 튕겨서 토스하는 버릇을 들였죠. 중학교과 고등학교 시절, 리시브 된 볼을 손바닥으로 잡으면 감독 선생님에게 심한 꾸중을 들었었어요. 그래서 볼을 손으로 잡지 않고 그대로 토스를 하도록 배웠었죠. 결과적으로 이렇게 익힌 빠른 토스는 '스피드'가 강화된 배구를 유도할 수 있었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지는 빠른 배구는 한국 여자배구의 전매특허였다. 그 중심에는 안정된 리시브를 기반으로 한 강혜미의 빠른 토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공격수의 성향에 토스를 맞춰주는 것보다 그녀가 구사한 빠른 토스에 공격수들이 맞춰나갔다는 점이다.

볼을 잡지 않고 바로 튕겨서 날아오는 토스를 때리려면 움직임도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팀보다 몇 박자 빠르게 진행되는 배구는 국제대회에서 통하기 시작했다. 높이와 파워를 앞세운 유럽과 남미팀들은 이러한 한국에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스피드에 자신감이 있다 보니 강팀을 만나도 주눅이 들지 않았어요. 상대 블로킹에 안 맞고 코트에 떨어지면 바로 공격이 성공한다는 자신감도 있었죠. 예전에는 유럽과 남미팀들이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변했어요. 세계배구의 흐름은 스피드가 강조된 배구로 바뀌고 있죠. 우리는 점점 느려지고 있는 반면, 다른 국가들의 배구는 매우 빨라지고 있습니다"

빠르고 정교한 토스를 구사한 강혜미에게는 바늘과 실 같은 존재가 있다. 경남여고 시절에 만난 장소연(35, 전 현대건설)과 함께 시도한 ‘이동 속공’은 아직도 '명품공격'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혜미와 장소연이 구사한 이동 속공은 현재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 두 콤비가 완성해낸 이 공격 패턴은 아쉽게도 명맥이 끊기고 말았다.

"이동 속공은 선배 언니들이 시도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게 됐어요. 당시 호남정유의 홍지연 선배가 이동 속공을 매우 잘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장소연 선수와 함께 연습을 하게 됐죠. 제 토스가 빠른 원인도 있었지만 (장)소연이의 움직임이 매우 좋아서 이동 속공이 완성될 수 있었어요. 이동 속공은 안정된 리시브와 날카로운 토스, 그리고 센터의 기민한 움직임이 있어야 가능하죠. 이 삼박자가 절묘하게 맞았을 때 완성되는 공격이 이동 속공입니다"

팀 창단과 해체의 어렵던 시절, 그러나 끝내 코트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

경남여고를 졸업한 강혜미는 장소연과 함께 SK에 입단했다. 호남정유(현 GS 칼텍스의 전신)가 독주하던 시대, 늘 정상권에 도전하는 팀이었던 SK는 97년 시즌에 처음으로 슈퍼리그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갔다.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역시 호남정유였다. 당시만 해도 ‘불패의 신화’를 이어가던 호남정유를 맞아 SK는 2승을 거두는 선전을 펼쳤다. 그러나 '이변'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생애 첫 시즌 우승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준우승에 그친 아쉬움보다 더 힘든 일이 찾아왔다. IMF위기 상황에 있던 당시, 여자배구팀은 줄줄이 해체했으며 SK도 예외는 아니었다.

"팀이 해체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죠. 그때는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찾아왔고 소연이와 같은 팀에서 뛰게 됐어요. SK가 98년에 해체된 뒤, 현대건설에 입단해 그곳에서 우승의 꿈을 실현했습니다"



1999년 현대건설은 10연패에 도전한 LG정유의 꿈을 가로막았다. 팀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둥지를 옮긴 뒤 이룩한 우승이라 그 값어치는 특별했다. 국가대표팀의 주전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LG정유의 시대가 저물고 구민정(36, 전 현대건설) - 강혜미 - 장소연 트로이카 시대가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장윤희(39, 전 GS 칼텍스)와 정선혜(34, 전 GS 칼텍스), 그리고 박수정(37, GS 칼텍스) 등이 주축이 된 기존 국가대표 멤버에 이들이 새롭게 조화를 이루었다. 이들 선수들은 모두 서브리시브를 비롯한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들이었다. 어느 선수든지 후위에 있을 때, 협력 수비를 펼쳤고 움직임 또한 매우 빨랐다.

탄탄한 수비력과 다양한 공격력까지 갖춘 당시의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은 올림픽 메달도 가능하다고 평가받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다시 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당시 멤버가 너무 좋아서 몬트리올 이후, 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로 여겼어요. 그 꿈을 향해 정말 많은 땀을 쏟았죠. 서로 간에도 한번 해보자는 열의도 무척 컸어요. 첫 상대였던 극적으로 이기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어요. 8강전의 상대가 미국이었는데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였죠"

당시 미국은 세계정상권에 있던 팀이 아닌, 떠오르는 '다크호스'였다. 수비와 조직력에서 앞서 있는 한국은 미국을 이긴 뒤, 4강에 올라가 메달을 획득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메달을 따겠다던 목표는 끝내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제가 지금까지 배구를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고 가장 아쉬움이 많은 경기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8강전이에요. 세트스코어 2-2로 마지막 세트에 들어섰을 때, 분위기는 저희가 이기는 쪽으로 흘러갔어요. 하지만, 14점을 올린 상황에서 마지막 1점을 뽑지 못해 역전을 허용했죠. 5세트 막판 미국 선수들의 움직임은 매우 민첩했어요. 넘어지면서 수비하는 경우가 없는데 그 큰 선수들이 몸을 던져가며 우리의 공격을 다 받아냈어요. 결국, 14-16으로 패하고 난 뒤 밀려오는 허탈감은 주체할 수 없었죠. 선수 대부분이 운동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당시 여자배구대표팀은 경기의 승부를 떠나 '명승부'를 꾸준히 연출해왔다. 선수 전원이 수비가 뛰어나고 움직임도 빨랐기 때문에 세계의 강호들도 한국을 어려운 상대로 지목했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참가했던 강혜미는 국가대표 주전 세터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또한, 목 디스크 부상과 고질적인 어깨부상 때문에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했던 상황이었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고 당시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대표팀에 합류할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김철용(현 페루 여자국가대표감독)감독이 올림픽 출전을 위해 팀 합류를 간곡히 권유해오셨죠. 항상 믿고 따라온 분의 부탁이라 쉽게 거절할 수 없었어요. 결국, 구민정 선수와 장소연 선수와 함께 팀에 합류했고 세 번째로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냈어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예선전 중, 러시아와 이탈리아와의 경기는 아직도 기억할만한 '명승부'로 남아있다. 특히, 0-2로 일방적으로 뒤지던 상황에서 극적으로 역전시킨 이탈리아와의 경기는 아직도 많은 배구 팬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경기다.

"제가 당시 워낙 몸이 안 좋았기 때문에 주전 세터로는 뛰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탈리아에게 일방적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철용 감독님이 맘껏 뛰어보라고 권유해주셨죠. 중요한 경기인만큼, 들어가서 최선을 다했는데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왔어요. 경기가 끝나고 난 뒤, 모든 선수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됐죠 (웃음)"

지금은 '시련기', 그러나 한국 여자배구의 전성기는 반드시 다시 온다

강혜미는 2004 아테네올림픽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은퇴를 한 뒤, 그동안 하고 싶었던 학업에 열중했다. 교단에 서고 싶었던 것이 꿈이었던 그녀는 2007년부터 안산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일하고 있다.

"평생 운동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았죠. 선수생활을 하면서 대학에 다니고 학업을 꾸준히 이어갔는데 두 가지를 병행하는 점이 무척 힘들었어요. 도중에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끝까지 공부해보겠다는 집념은 매우 컸죠. 선수생활 이후, 교단에 서고 싶었는데 그 목표를 이루어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2007년 봄, 안산고등학교의 교단에 서기 전에 현대건설의 세터 코치로 잠시 일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체육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배구 지도자의 꿈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라고 그녀는 밝혔다.

"세터는 연습으로 완성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면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 아주 짧은 시간에 명확한 선택을 해야 하는 판단력이 필요하죠. 또한, 좋은 세터는 결코 단시일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꾸준하게 경기를 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정말 필요해요"

현재 한국 여자배구의 모든 포지션을 논할 때, 리베로와 더불어 세터 역시 가장 아쉬운 포지션으로 손꼽힌다. 많은 배구 팬들은 아직도 강혜미같은 세터가 나오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조금은 다르다.

"배구에서 세터가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고 팀을 이끌어가는 역할이지만 세터 혼자만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는 없어요. 우선 리시브가 잘돼야 하고 공격수도 잘 만나야 세터의 실력도 돋보일 수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인복’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소연이와 같은 최고의 공격수를 만났던 점이 그렇고 저를 바른 곳으로 이끌어주신 선생님들도 꾸준히 만나 왔어요. 그리고 소속팀과 대표팀에 뛰면서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했죠. 이러한 점 때문에 제가 부각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지난 13일 막을 내린 제15회 아시아 여자배구선수권대회의 우승팀은 중국과 일본이 아닌, 태국이었다. 평균신장 175cm에 이르는 태국은 180cm가 훨씬 넘는 '장대군단' 중국을 유린하며 아시아 정상에 등극했다.

"우리가 대표팀에서 뛸 때, 태국의 존재는 극히 미비했어요. 오죽하면 태국팀의 관계자 분이 오셔서 '1점'만 뽑게 해달라고 말했을 정도였죠. 하지만, 그랬던 태국이 이번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어요. (웃음) 그런데 지금 뛰는 선수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서로 호흡을 맞춘 선수들이에요. 우리도 예전과 같은 조직력을 완성하려면 대표팀에서도 선수들이 꾸준하게 바뀌지 않고 호흡을 맞추는 점이 필요해요. 그리고 특정 선수가 잘못해서 배구의 흐름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배구는 모든 포지션의 선수들이 조화롭게 잘해야 비로소 강팀으로 우뚝 설 수 있어요. 잘못했다고 특정 선수를 질책하는 것보다 조직력을 갖출 수 있는 팀을 만드는데 힘써야 합니다"

2004년, 코트를 떠나면서 한국 여자배구의 앞날을 우려했던 그녀의 예언은 현실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문제는 여전히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강혜미는 한국 여자배구의 전성기는 분명히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전 세계의 배구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태국은 아시아의 강호로 부상했고 유럽 선수들은 점점 수비가 좋아지고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오히려 느려지니 지금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봅니다. 그러나 재능 적으로 보면 모두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에요. 그리고 한국 여자배구의 발전을 위해선 학생 시절에 이루어지는 기본기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점이 현실로 반영돼 한국 여자배구의 전성기가 다시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사진 = 강혜미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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