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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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한국 축구가 ‘A매치 논쟁’에서 얻어야 할 것은?

기사입력 2009.08.21 13:54 / 기사수정 2009.08.21 13:54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대표팀 A매치를 둘러싼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그 어느 쪽도 양보할 생각 없이 외나무 다리에서 서로 거꾸러트릴 기세다. 이를 두고 축구팬들조차도 양분되어 끊임없는 논쟁이 오가고 있다. 

그런데 ‘대표팀이 먼저인가, 자국리그가 먼저인가’라는 해묵은 논의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국리그가 굳건해지는 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여기에는 한국 축구의 발전이란 ‘대승적 차원’이란 말이 항상 뒤따른다. 물론 그 ‘대의’를 위함에 있어 대표팀과 K-리그 어느 한쪽도 가볍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논의가 단순히 치고받을 때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라는 답 없는 순환논리만 계속될 뿐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무엇이 한국 축구를 발전시킨다는 것인가?

대표팀이 월드컵 16강 이상의 성적을 올리면 대한민국은 행복한 2010년 6월을 보낼 수 있다. 금의환향한 대표팀은 영웅대접을 받고 축구에 대한 관심도 증대된다. 대중은 또 다시 들끓는 열정으로 ‘CU @ K-리그’를 외치며 경기장을 찾는다.  언론에선 300만 관중 시대 도래를 찬양한다. 유소년 축구의 중요성을 논하는 이들이 TV 심야 토론을 벌이는 ‘어색한’ 장면에도 시청률은 반응하며, 다시 주말 공중파에 K-리그 경기가 중계되고 A매치는 또 다시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만원으로 채운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한국 축구가 발전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모습들이 단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공갈 빵’이란 걸 우린 2002년에 이미 경험했다.

이번 사태는 협회와 연맹이 한국 축구에 대해 얼마나 무책임하고 오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입으로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말하고 팬서비스와 마케팅을 말하지만, 축구팬들이 지금의 논란을 지켜보며 알 수 없는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가장 중요한 선수와 팬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한 그들의 태도다.

‘문화상품의 관리자’ 역할에 대한 직무유기

축구는 하나의 문화요, 대표팀과 프로축구는 문화상품이다. 협회와 연맹에는 많은 종류의 책임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담당한 문화상품이 최상의 품질로 유지∙발전될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축구라는 문화를 즐기려는 일반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협회와 연맹은 이러한 그들의 책무를 다했는가?

대표팀과 K-리그의 일정이 겹칠 것이란 사실은 이미 1월에 K-리그 일정이 나왔을 때부터 제기되어 왔던 문제다. 그런데 인제야 협회와 연맹이 일정 조정에 대해 끝 모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껄끄러운 문제를 여론몰이를 통해 해결하려는 자세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A매치데이 기간이나 월드컵 최종 예선 플레이오프가 열릴 수도 있던 날짜에 리그 일정을 잡은 연맹이나, 월드컵에 즈음하면 항상 K-리그가 손해를 감내하라고 반 강요했지만 이번에는 한발 양보해 주중 경기를 치를 수 있음에도 주말 경기를 고집하는 협회나 기자가 보기엔 오십보백보다. 이들의 갈등은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모른 척하며 남의 눈 속 티끌을 비난하는 수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다.

당장 9월과 10월에 있는 평가전은 물론이고 11월에 있을 K-리그 6강 플레이오프도 문제다. 내년 1월과 3월에 있을 대표팀 전지훈련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양보와 이해가 필요한 그때에도 ‘대승적 차원’과 원리원칙을 운운하며 여론몰이를 통해 서로 ‘승리’를 쟁취하려 할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기자는 이전의 칼럼을 통해서도 K-리그의 일정에도 전략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K-리그를 대표해서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서는 클럽들이 K-리그와 국제무대를 최상의 환경에서 동시에 치를 수 있도록 배려해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적절한 시기에 빅매치를 만들어냄으로써 일정 자체를 마케팅의 유용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었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근거는 선수들이 혹사당하지 않고 가능한한 100%에 가까운 컨디션을 유지토록 하여 최상의 경기력을 그라운드에서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 K-리그가 프로스포츠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라는 점이다. 국가를 대표해서 벌이는 A매치에 대한 협회의 자세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연맹이 4~5년치가 한꺼번에 정해지는 A매치 스케줄을 몰랐을 리도 없고, 협회가 올 시즌 K-리그 일정을 전혀 모른 채 대표팀 일정을 짜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만약 조금이라도 의지가 있고, 심각한 접근이 있었다면 이제까지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없었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3월 28일 대표팀 평가전과 4월 1일의 월드컵 최종예선이 벌어진 뒤 K-리그 최고 인기 클럽인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라이벌전이 4월 5일에 열렸다. 그리고 두 팀은 곧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4월 7일과 8일에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러야 했다. 

당시 서울과 수원에는 대표선수가 양 팀 합쳐 8명이나 있었다. 두 팀의 핵심 선수들은 평가전과 월드컵 진출의 사활이 걸린 최종예선 경기에서 체력을 소진한 채 치열하기로 유명한 두 팀 간의 라이벌 전과 중국 원정 경기까지 곧바로 나섰다. 기성용, 이청용 같은 주력선수들은 20여 일 동안 무려 6경기를 치렀다. 서울과 수원이 시즌 초반 예상과는 달리 부진한 성적을 거둔 데는 이러한 일정의 불합리함의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이는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정된 자원(선수)의 효율적 분배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해 상품의 질(K-리그의 경기력)을 떨어뜨린 결과다. 그런 점에서 축구 산업의 주체이자 관리자가 되어야 할 협회와 연맹은 직무유기를 저지른 셈이다.

일정의 변경이 전부가 아니다

이제 우리가 이번 논란에서 얻을 점은 분명해졌다. 물론 당장 일정 문제를 합리적 논의를 통해 하루빨리 해결하는 것이 일차적인 당면 과제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협회와 연맹이 챙길 것은 ‘자존심 싸움의 승패’나 ‘주도권’ 따위가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협회와 연맹이 서로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를 통해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 했듯이, 기자 역시 이 글을 통해 ‘여론몰이’를 해볼까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축구팬과 여론은 연맹과 협회를 압박해 이번에야 말로 이들이 공동으로 주관하여 대표팀과 K-리그의 일정을 함께 정하는 공식적인 행사를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둘은 매년 초 정기적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자국 선수들이 K-리그, AFC 챔피언스리그, FA컵, 리그컵, 해외리그, 대표팀 경기를 동시에 치르는 상황에서 체력적 부담을 줄이고 최상의 경기력을 펼칠 수 있을지를, 그리고 팬들에게 흥미를 배가시키는 일정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이는 대표팀과 프로축구라는 문화상품의 가치를 증대시켜 팬들이 축구라는 문화를 가장 높은 차원에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 한국 축구의 발전이란 대의는 그때 비로소 아주 조그마한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대표팀에게 K-리그가 양보해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거나 K-리그가 대표팀보다 한국 축구에 있어 우선순위를 가진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니다. 그래 봤자 어차피 다음 차례가 되면 또 다시 문제는 반복될 뿐이다.

협회와 연맹은 언론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걸 그만두고, 지금까지 이런 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반성을 선행해야 한다. 이후 서로 한 발씩 물러서는 양보와 이해를 통해 올 시즌 향후 일정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일정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목표를 이뤄나가는 과정에선 애초에 생각하지 못한 여러 암초가 있기 때문에 계획이란 언제든지 가장 좋은 방향으로 수정돼야 한다. 등산가가 높은 산을 오르면서 생각지 못한 날씨의 변화와 지형의 변수를 무시하고 처음 생각한 경로만을 고집할 경우 그가 조난당할 확률은 급격하게 높아진다. 일방적 장기 대표팀 선수 차출이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친선 경기 같은 어느 한쪽의 불평등한 희생의 강요가 아닌, 서로 공생을 지향하는 합의에 의한 일정의 변경은 그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이다.

또한, 앞으로도 이러한 시즌 일정 수립의 공조체계를 유지해 나감으로써 한국 축구에 한 단계 진일보한 체계를 가져와야 한다. 모든 축구 선진국은 축구협회와 프로리그가 논의를 거쳐 가장 이상적인 일정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 대표팀과 K-리그의 일정 결정 과정과 방식은 전혀 이상적이지 않다. 최선의 선택은커녕 차선책도 못 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협회와 연맹이 합리적인 일정 수립 체계를 확립한다면, 그야말로 한국 축구 발전에 커다란 한 획을 긋게 되는 것이 아닐까.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전성호의 스카이박스] 대한민국 축구를 가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진 = 2010년 월드컵 예선전 북한전을 앞둔 한국대표팀 (C) 엑스포츠뉴스DB 남궁경상 기자]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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