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8.14 17:56 / 기사수정 2005.08.14 17:56
K리그 팬이라면 누구나 불과 몇 년전 수원의 미들진을 진두진휘 했던 외국인 용병 가비를 기억할 것이다. 감각적인 패스와 더불어 지능적인 파울로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능했던 이 외국인 선수는 부진에 빠진 고종수와 향수병에 시달리며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루마니아 용병 루츠를 대신할 임무를 띠고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수원에서는 현재 국가대표팀 주축으로 성장한 김두현, K리그에서 손꼽히는 수비형 미들 김진우가 뛰고 있었지만 수원은 이들보다는 미드필더진에서 좀 더 핵심적으로 공수에서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를 원했다. 약관의 김두현은 경험이 부족했으며 김진우 역시 수비적인 파이팅이 강조되는 선수였기에 수원의 가비 영입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미 언론에도 많이 알려졌지만 가비는 98프랑스월드컵에도 출전한 바 있는 루마니아 국가대표 출신이다. A매치에서 14경기 1골을 기록한 그는 월드컵 본선 세 경기 중 두 경기에 선발출전한 어엿한 주전멤버였다.
그나마 출전하지 않았던 튀니지전 역시 이미 16강진출이 확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전이었던 가비의 체력부담을 고려한 선수보호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가비는 이 다음 경기에서 자신의 축구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는데 바로 월드컵 16강전이었던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페널티 박스 안에서 무리한 반칙으로 게임의 유일한 득점이었던 다보르 수케르에게 페널티 킥을 헌납하며 여론에 16강탈락의 1등공신으로 지목받게 된다.
결국 가비는 이 괘씸죄로 인해 이 경기 이후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 부름을 받지 못한다. 루마니아 축구영웅 하지와 함께 루마니아 국가대표팀의 중원을 누빈 선수치곤 너무나 쓸쓸한 국가대표 퇴진이었다. 이후 이 충격으로 인해 월드컵 전 프리메가리가 명문인 발렌시아CF에서 25경기 1골을 기록하며 입지를 다진 것을 뒤로 한 채 99~00시즌 1부리그 승격팀인 약체 누만시아로 임대되는 아픔을 겪는다.
가비는 누만시아에 임대되고 나서도 주전경쟁에 실패하며 리그에서 단 7경기 출전, 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며 고국인 루마니아로 컴백하게 된다. 당시 발렌시아는 부진에 빠진 그를 기다려줄 이유가 전혀 없었기에 그의 3년간의 스페인 생활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는다.
고국의 디나모 부쿠레슈티에 입단한 가비는 99-2000시즌 후반기리그 9경기에 출전한 뒤 2000년 1부리그 클럽이었던 내셔널 부쿠레슈티로 이적한다. 후반기 잠깐 우니베르시타테아 크라이오바로 임대된 것을 포함해 00~01시즌 26경기 2골을 기록하며 부활의 기미를 보인 그는 01~02시즌 29경기 4골을 기록한 뒤 당시 팀의 감독으로 있던 올리와 수원구단과의 이해관계 속에 루츠와 맞트레이드 되며 한국행이 결정된다.
가비는 입단하지 얼마 되지 않은 02년 7월 함께 영입된 보스니아출신 스트라이커 미트로(슬라비사 미트로비치)와 사우디 알 힐랄과의 아시안수퍼컵 1차전에 첫 선을 보인다. 이 경기에서 가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량을 마음껏 펼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 과거 수원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파벨 바데아의 뒤를 잇는 또 하나의 용병 사령관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 후 가비는 김호 전 수원감독 전술의 핵심으로 군림 하면서 팀을 리그 3위, FA컵 우승으로 이끈다. 그에게 있어 당시 K리그는 딱히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뉘지 않으면서도 두 포지션 모두를 효과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좋은 무대이자 기회였던 것이다. 이듬해에는 31경기에서 6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한층 더 만개한 기량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그 해 10월 차범근 감독이 부임하고서부터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되는데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스피드와 체력적인 면을 강조하는 차 감독의 스타일과 가비의 플레이는 대립될 수밖에 없었고 선발출전이 보장되던 1군 경기를 뒤로 한 채 2군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2군은 가비에게 의미 없는 곳일 뿐이었고 그는 수원 구단에 정식으로 이적을 요구, 결국 J리그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에서 뛰고 있던 산드로와 맞트레이드 되며 정들었던 한국을 떠난다.
미드필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그의 이적은 K리그 팬들에게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많은 K리그출신 용병들이 J리그로 재이적하는 전후상황을 고려할 때, 그 만은 한국에 남아 주길 원했던 팬들은 트레이드건을 놓고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 볼 때, 플레이스타일 차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수원은 재능 있는 미드필더를 제 발로 차버린 꼴이 되었다. 만약 그 때 가비를 방출시키지 않고 그를 현재까지 데리고 있었더라면 현재 붕괴된 수원 미들진에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가브리엘 포페스쿠. 그는 현재 수원의 No.10 가비가 아닌 J리그 이치하라의 No.7 포페스쿠라는 낯선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김호 축구의 핵심멤버로 활약하며 제 2의 바데아 아니 더 나은 야전사령관으로서의 위용을 보여준 외국인 선수 가비. 그는 비록 한국을 떠났지만 겨우 두 시즌 남짓 동안 뛰었던 용병을 치고는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많은 기억을 안긴 그가 일본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의 나래를 펼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름: 가브리엘 포페스쿠 (가비)
생년월일: 1973년 12월 23일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
신체조건: 177cm 74kg
A매치: 14경기 1골
주요경력: 스페인 프리메가리가 살라만카,
발렌시아, 누만시아 활약.
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멤버
K리그: 59경기 12골 4어시스트
루마니아 리그: 233경기 22골
스페인 프리메가리가: 47경기 6골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 뉴스
실시간 인기 기사
엑's 이슈
주간 인기 기사
화보
통합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