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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완소그대 ⑨] '포스트 박진만',강정호 편

기사입력 2009.06.19 20:33 / 기사수정 2009.06.19 20:33

유진 기자

[엑스포츠뉴스=서울 목동, 유진 기자] ‘완소그대’ 아홉 번째 대상은 ‘내야 수비의 핵심요원’, 유격수 강정호다. 광주일고 시절부터 ‘투-타 팔방미인’이었던 그는 2006년 드래프트 최대어였다. 투수에서부터 시작하여 내, 외야 그리고 포수까지 두루 경험했던 그는 그만큼 ‘기본기’가 잘 되어 있는 선수였다.

아마야구에 지명타자 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투-타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드물었음을 감안해 보았을 때 강정호는 분명 모든 구단에서 탐을 낼만한 자원이었다. 투-타 모두를 겸업한 선수는 그만큼 ‘기본’이 잘 되어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때에 따라서는 투수로 키워 볼 만했다. 실제로 그는 2005년 황금사자기 전국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 투수상과 타점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포수’ 강정호, ‘유격수 강정호’로 거듭나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1순위에서 현대는 주저 없이 강정호를 지명했다. 강정호를 스카우트했던 김진철 당시 현대 스카우트(현 LG 트윈스 스카우트)는 “강한 손목 힘과 방망이에 공을 맞히는 능력에 후한 점수를 줬다. 포수든 내야수든 대형선수로 성공할 자질을 갖춘 선수”라고 평했다. 따라서 광주일고 시절 주로 포수를 봤다고는 하나 굳이 포지션에 관계없이 대형 선수로 키워 볼 만한 인재였다.

따라서 굳이 2라운드 1순위에서 현대가 그를 지명하지 않았다 해도 다른 구단에서 얼마든지 2, 3순위로 데려갈 수 있었다. 강정호는 그런 선수였다.

이에 당시 현대의 사령탑을 맡았던 김재박 감독(현 LG 트윈스)은 2005년 가을캠프 때 그에게 유격수 특별훈련을 시켰다. 2004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취득한 박진만이 팀을 떠나게 되자 ‘포스트 박진만’을 빨리 발굴해 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정호는 유격수로 뿌리내리는 데 실패하며, 2007년도까지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데뷔 2년차에는 캠프 도중 타구에 얼굴을 맞는 불운까지 겪었다. 1할 대 언저리에서 맴도는 타율은 그의 고교시절 명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사실 작년 시즌 초에도 강정호의 보직은 ‘백업 포수’와 ‘백업 3루수’였다. 그래서 그는 항상 가방에 포수 미트와 내야수 글러브 두 개를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2008년 6월 이후 이광환 당시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 아래 붙박이 유격수 자리를 꿰찼고, 7월 들어서는 공수에서 팀의 핵심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그는 작년 시즌 타율 0.271, 8홈런, 47타점을 기록하며 확실히 ‘야구에 눈을 뜬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시진 감독 ‘믿음의 야구’에도 보답하다

이후 히어로즈는 김시진 감독 체재로 2009시즌을 맞이했다. 하지만 ‘유격수 강정호’의 자리는 견고했다. 김 감독은 강정호에 대해 ‘풀타임 보장’을 약속했고, 한때 1할 대 타율로 슬럼프에 빠져도 “유격수는 수비만 잘하면 된다.”라고 말하며 절대 그를 기죽게 하지 않았다. 실제로 강정호는 19일 현재까지 63경기에 모두 출장하여 김 감독의 믿음에 100% 보답했다. 이에 ‘멘도사 라인(규정타석을 채운 선수들 중 2할 대 초반에 머무르는 물방망이 타자를 일컫는 말)’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렸던 방망이도 최근에 다시 살아나며 2할 6푼 대까지 살렸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팀의 중심이자 '포스트 박진만'으로 거듭나고 있다.

‘전 경기 출장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강정호는 타율 0.265, 11홈런, 42타점을 기록중이다. '골든글러브 유격수'로는 손색 없는 성적이다.

[사진=강정호 ⓒ 히어로즈 구단 제공]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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