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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박스] 결장이 박지성의 훌륭함을 가리진 않는다

기사입력 2009.04.16 14:59 / 기사수정 2009.04.16 14:59

전성호 기자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박지성의 결장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2008/2009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FC포르투와의 경기에서 박지성은 출전 선수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비록 체력 안배 차원의 결장이었지만, '꿈의 무대'에서 당당히 팀의 4강 진출을 이끄는 박지성의 모습을 보고 싶어 밤을 지새웠던 팬들에겐 아쉬움을 남겼다. 어떤 이들은 지난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의 '트라우마'를 떠올렸으리라.

박지성이 큰 경기를 앞두고 결장할 때마다 성급한 언론과 비관적인 자세의 축구팬들은 박지성에 대한 '한계'를 지적한다. 맨유에서 그의 위치가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의견부터 '약팀용'이란 비아냥까지 나온다. 몇몇은 박지성의 공격적인 능력을 문제 삼곤 한다. 박지성과 같은 포지션의 팀 동료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나 라이언 긱스, 혹은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 아르옌 로벤(레알 마드리드) 등을 예로 들며 박지성의 득점력이 보잘것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기자는 박지성에 대한 그러한 비판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물론 그를 일방적으로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박지성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결장'이나 득점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박지성에 대한 평가엔 기존의 잣대가 어울리지 않는다

최근 한 방송사 TV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축구는 잘하고 싶은데 유명해지고 싶진 않다."라고 했던 박지성의 언급이 화제다. 그런 그의 발언이 기자에겐 마치 "지금처럼 축구에서 내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고 즐겁게 소화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내게서 맡은 역할 이상의 더 많은 것을 자꾸 요구하는 게 버겁다."처럼만 들렸다.

리버풀의 레전드 플레이어 얀 몰비는 '경기에서 골을 넣는 것이 가장 힘들고, 경기를 제어하는 것이 그 다음으로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것은 팀을 위해 뛰는 것이다. 전자는 뛰어난 개인 능력의 차원에서 가능한 것이지만, 후자는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이는 단체 스포츠인 축구에서 더욱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우린 전자의 화려함 속에 자꾸만 이 사실을 잊곤 한다.

얼마 전 한 영국 언론에서는 박지성을 '신개념의 윙어'라고 정의했다. 물론 해당 언론은 수치적 근거를 들어 박지성의 수비적인 능력에 중점을 두고 얘기했지만, 박지성은 그 어떤 미드필더나 윙어보다도 팀을 위해 뛰는 선수라는 점에서 더욱 '신개념'이다.

주지하다시피 박지성은 넓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뛰는 선수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많이 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 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시험을 앞두고 몇 날 며칠을 밤새워봤자 시험 범위 밖의 내용을 공부하면 아무 소용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지성의 움직임을 자세히 보면 그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항상 뛰어다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박지성은 순간 스피드가 엄청나게 빠르지도, 가속력이 우월하지도 않다. 그러나 필요한 순간 남보다 반 박자 먼저 움직이고 한발 더 나아간다. 그래서 박지성은 스피드가 뛰어난 것처럼 보이며, 필요한 곳엔 언제나 그가 먼저 가있는 것이다. 이런 박지성의 움직임은 그가 상대팀 수비를 헤집어 놓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의 공격까지도 앞서서 차단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그러한 플레이의 근원에는 팀을 위해 뛰는 박지성만의 '이타적인 마인드'가 있다. 이건 수치화가 되는 내용이 아니다.

득점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FC서울의 이청용은 최근 수원 삼성과의 라이벌전에서 팀 동료 데얀의 슈팅이 상대 골키퍼 이운재에게 맞고 나온 것을 그대로 리바운드 슛으로 연결해 결승골을 기록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청용은 "지성이 형이 그런 골을 많이 넣었었잖아요. 그래서 저도 그 순간 뛰어들었죠."라고 말할 정도로 박지성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 후 많은 골을 리바운드 슛 혹은 문전 앞에서 건드리는 것만으로 기록했다.

흔히들 '주워 먹었다.'라고 표현하는 박지성의 리바운드 골에 사람들은 농담을 섞어 비하하기도 하지만 그건 축구의 속성을 무시한 말이다.

축구는 전쟁이다. 동시에 실수와의 싸움이다. 프랑스의 축구 영웅 미셀 플라티니는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다. 모두가 완벽하면 스코어는 0-0이다."라고 말했다. 상대의 실수를 자신의 이득으로 바꾸지 못하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주워 먹는 골이야말로 그런 축구의 속성을 가장 잘 읽고 있는 플레이다.

팀 동료가 골키퍼 정면으로 날아가는 슛이나 측면 돌파 후 크로스를 시도할 때 박지성은 항상 그곳으로 뛰어든다. 상대의 능력을 넘어서는 가공할만한 슈팅을 동료가 시도하면 그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실수를 낚아채는 것은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그걸 스스로 깨우치고 잘 수행했다.

박지성이 맨유가 가기 직전까지 일본과 네덜란드에서 기록했던 골을 한 번이라도 봤던 사람들은 박지성의 슈팅이 형편없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2002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기록했던 아름다운 결승골과 2004/2005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AC밀란을 상대로 넣은 골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대표팀에서 주장이자 에이스로 뛰었던 첫 경기에서 넣은 골 역시 일품이었다.    

박지성이 교토 퍼플상가나 PSV 에인트호벤에 있을 때는 그런 역할을 해 주었어야 하는 위치였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맨유에는 웨인 루니, 호날두, 긱스, 카를로스 테베즈, 베르바토프 등 그런 역할을 해 줄 선수가 즐비하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굳이 그런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선수들이 더 필요한 경기에선 그들이 나서고 박지성이 빠질 뿐이고, 반대의 상황이라면 그들이 빠질 뿐이다.

만약 박지성이 맨유에서 호날두나 긱스같은 역할을 하려 한다면 그건 스스로 존재가치를 깎는 것이다. 박지성이란 선수의 희귀성은 슈퍼스타급 선수의 기량을 가졌음에도 팀을 위한 헌신적 움직임을 펼치는데 조금의 불만이나 두려움, 꺼림이 없다는 점이다. 이를 극대화하여 자신의 경쟁력으로 삼아야 한다. 각 선수가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전문화와 분업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그 팀은 강팀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박지성은 지금도 먼저 움직이고, 먼저 달리고, 먼저 그곳에 가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 경이 그를 애지중지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퍼거슨 경은 그 대단하던 베컴과 반 니스텔루이도 전성기 시절에 내쫓은 인물이다.

그런 박지성의 특성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바로 '주워 먹기' 득점일 뿐인 것이다. 박지성의 팀을 향한 헌신적인 플레이는 굳은 일을 나서서 할줄 알고, 감독의 전술적 선택에 의해 배제되더라도 불만을 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 다음 경기를 위해 준비하는 자세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런 박지성을 평범한 수치와 잣대로 평가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는 볼 수 없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오류가 발생한다. 박지성은 그런 보통의 자세와 경기력으로 세계 톱 클래스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뛰고 있는 게 아니니까.

맨유에 뛰기 때문에 박지성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박지성이 단지 맨유에 뛴다는 것만으로 존경(받을 수도 있지만)받는 다는 것은 단견이다. 이렇게 자신있게 얘기하는 것은 박지성의 '팀을 위해 헌신하는 플레이'야말로 대한민국, 더 나아가 아시아 선수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여건상 우리네 축구의 현실은 유럽과 남미를 따라잡을 수 없다. 체격 조건에선 유럽에 밀리고, 기술에선 남미에 밀린다. 이들의 축구 인프라와 우리는 비교조차 불가능하다. 역사와 경제적 능력에서 앞서는 유럽은 고사하고 브라질처럼 어떤 중요 정치, 경제 정책보다도 축구를 우선시할 정도의 남미의 환경과 우리네 현실이 비교 가능할까?

1990년대부터 세계 축구의 변방을 벗어나 훌륭한 선수들을 대거 배출한 아프리카 대륙을 살펴보자.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의 경쟁력은 유럽과 남미 선수들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탄력과 유연성, 그리고 상식의 틀을 깨는 의외성 넘치는 플레이에 있었다. 그런 그들의 엇박자 축구가 대륙과 남미 축구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시아 축구의 가능성은? 바로 박지성에게서 볼 수 있다. 11명이 똘똘 뭉쳐 모두가 팀을 위해 헌신할 때 발생되는 에너지는 개개인의 뛰어남의 집합체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가까운 시간 속에서 보더라도 스타의식만 넘치던 '갈락티코' 정책시대의 레알 마드리드, 개인의 명성 외에 별 관심없던 2000년대의 아프리카대륙의 국가대표팀들이 왜 부진했던지 우리는 알 수 있다.

최근 K-리그에선 그 어느 팀보다도 굳건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광주 상무의 깜짝 1위 등극이 화제다. 군인 팀이 프로리그 선두에 올랐다는 사실을 두고 K-리그의 치욕이라는 반응도 있는데, 이는 오히려 K-리그가 선물해준. 한국 축구의 가능성에 대한 새삼스런 재발견이다. 개인의 영욕을 버리고 '한번 해보자'는 자세로 서로에게 헌신하는 팀이 스타가 즐비한 강팀을 이기는 모습에서 새로운 축구의 패러다임을 읽을 수 있다.

2002년에도 경험했지만, 우리는 선수 개개인 모두가 팀을 위해 헌신하는 축구의 힘을 알고 있다. 그게 바로 축구의 매력이다. 박지성은 이런 새삼스런 진실에 대한 살아있는 표본이다. 그래서 대단한 것이다. 그런 박지성이기에 큰 경기의 결장은 그에게 아쉬움일 수는 있어도 좌절은 되지 않는다. 그는 또 다른 경기에서 팀을 위해 뛸 준비가 되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박지성의 훌륭함을 더 이상 '일희일비'로 희석시키지는 말자.



▶ 박지성의 고백?

"축구는 잘하고 싶다 그러나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다"

[전성호의 스카이박스] 대한민국 축구를 가장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전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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