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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야 놀자] 메이저리그 4대 비극(2) - 블랙삭스 스캔들

기사입력 2009.02.12 01:21 / 기사수정 2009.02.12 01:21

유진 기자

[엑스포츠뉴스=유진 기자] 영문학에 햄릿, 오델로, 리어 왕, 맥베스로 이어지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있는 것처럼, 100년 역사의 메이저리그도 역사를 뒤바꾸어 놓을 만한 비극이 몇 차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슬픈 극본은 메이저리그에 몇 가지 큰 변화를 일으키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전편에 소개한 ‘칼 메이스의 저주’ 에서는 투수들의 빈볼에 대비하여 타자들의 보호용 헬멧 착용을 의무화시킨 조항을 탄생시킨 것이 그러했다.

그런데 칼 메이스의 저주가 터지기 바로 1년 전, 메이저리그는 그 뿌리까지 뽑힐 뻔한 일대 사건을 맞게 됐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터지고 난 이후 바로 이듬 해에 ‘칼 메이스의 저주’가 터져 나와 뒤숭숭한 야구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다. 바로 선수들의 도덕성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되었던 ‘블랙삭스 스캔들’이 그것이었다.

블랙삭스 스캔들(The Black Sox)

‘스캔들(Scandal)’의 의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명예스럽지 못한, 최고로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그 ‘스캔들’이 얼마나 추악하고, 얼마나 명예스럽지 못했기에 메이저리그 존재 자체가 흔들렸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

1919년,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베이브 루스가 타격의 모델로 삼았다는 전설적인 타격왕 조 잭슨, 명 2루수 에디 콜린스, 권투선수 출신의 명 1루수 치크 갠딜 등이 이끄는 막강타선과 에디 시카티, 클라우드 '레프티' 윌리엄스의 막강 원투펀치가 마운드를 지키는 최강팀이었다. 대부분의 야구 전문가들과 팬들은 ‘당연히’ 화이트삭스가 네셔널리그 챔피언인 신시내티 레즈를 무난히 물리치고 월드시리즈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9전 5선승제로 치러진 월드시리즈는 기대와는 달리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화이트삭스가 고의로 시리즈를 패배하려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화이트삭스는 1차전에서 19승 투수 시카티를 앞세우고도 1:9 라는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였고, 2차전에서도 23승 투수 '레프티' 윌리엄스가 사사구를 남발하며 화이트삭스가 2:4로 패배했다. 오죽하면 두 경기에서 최선을 다 한 포수 레이 쇼크가 윌리엄스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을 정도였다.

코미스키 파크로 옮겨 치러진 3차전에서는 ‘디키 커’라는 13승 왼손투수의 역투로 화이트삭스가 3:0으로 승리하였다. 이에 반격을 기다리는 시카고 홈팬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이트삭스의 4차전 선발은 1차전에서 고의로 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시카티였다. 하지만 팬들은 그들의 에이스가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시카티는 4회까지 완벽한 피칭으로 레즈 타선을 틀어막았다. 이러한 시카티의 역투를 지켜 본 화이트삭스 팬들은 ‘고의패배란 결국 헛소문에 불과했다. 패배를 작정한 투수가 어떻게 저렇게 잘 던질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5회초 레즈 공격에서 시카티는 어처구니없는 실책 2개로 2실점을 기록했고, 이것이 결승점이 되어 결국 경기는 화이트삭스의 0:2 패배로 끝이 났다.

이어지는 6차전에서도 조 잭슨 등의 실책으로 0:5의 패배를 당한 화이트삭스는 시리즈 1승 4패의 절대적 수세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그 결과보다 경기 내용이 형편없자 사람들은 선수들이 고의로 경기를 패배하려 한다는 의혹을 점점 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그 의혹은 사실이었다. 1919년 월드시리즈가 시작되기 직전에 화이트삭스 소속의 8명의 선수들이 도박사들과 시리즈를 고의로 패배하기로 계약을 맺었던 것이었다. 음모에 가담한 8명의 선수는 주모자였던 1루수 갠딜을 포함하여, 투수인 시카티와 윌리엄스, 3루수 프레드 맥멀린, 유격수 찰스 리즈버그, 만능 내야수 벅 위버, 외야수인 잭슨과 펠시였다.

이들은 구단주 찰리 코미스키의 연봉정책에 불만을 품고 도박사들로부터 8만달러를 받기로 하고 경기에 져주기로 했다. 그들의 불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코미스키는 지독한 수전노였는데, 불세출의 타자라고 불리던 조 잭슨의 연봉이 6000달러에 불과했을 정도였다(당시 웬만한 스타플레이어들의 연봉은 1만 달러가 넘었다). 여기에 에이스 시카티는 시즌 30승을 거둘 경우 코미스키로부터 1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기로 계약했지만, 그해 9월이 시작되기도 전에 28승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시즌이 한 달이나 남은 시점에서 코미스키는 감독에게 압력을 넣어 그가 남은 경기에서 출장하지 못하도록 해버렸다. 1919년에도 29승을 올렸으나 여전히 연봉은 6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즉, 선수들 도박의 제 1 책임은 코미스키 본인에게 있었던 샘이었다.

코미스키에 대한 선수들의 불만은 시즌 중에 파업을 모의할 정도로 심각해져 있었다. 그리고 월드시리즈를 3주정도 앞둔 시점에서 팀의 1루수 갠딜은 도박사들과 고의로 월드시리즈를 패배한다는 비밀 계약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는 점차 선수들을 포섭해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그를 포함한 8명이 승부조작에 참여했다.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화이트삭스 선수들의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에는 위와 같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갠딜과 계약을 맺은 도박사들은 레즈가 4승 1패로 앞서나가 승패가 어느 정도 결정이 되자 갠딜과의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어졌다. 8명의 화이트삭스 선수들 역시 생각했던 것보다 금전적 보상이 적어지자 패하려는 마음이 사라졌다. 10월 7일 벌어진 6차전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고, 이번 시리즈 들어 처음으로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정상적인 플레이를 벌였다. 결국 그들은 0:4의 스코어를 5:4로 역전시키면서 회생하였고, 7차전에서도 ‘본모습을 되찾은’ 에이스 시카티의 역투로 4:1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로써 시리즈 전적은 4승 3패가 되어 마지막 대역전을 꿈꿀 수 있었다.

도박꾼들의 움직임과 피트 로즈

그러자 이미 레즈에게 막대한 돈을 건 도박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8차전 선발로 예정되어 있던 '레프티' 윌리엄스를 협박했다. 만약 내일 경기에서 패하지 않으면 사람을 시켜 그의 부인을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윌리엄스는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화이트삭스는 8차전에서 5:10으로 패했다.

1919년 월드시리즈가 끝난 후 화이트삭스 구단주 코미스키와 감독 글리슨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심증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코미스키는 승부조작의 물증을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1만 달러의 현상금을 주겠다는 광고를 내걸었다. 1919년 구단주들간의 윈터미팅에서도 화제는 단연 승부조작에 대한 것이었지만, 어디서도 구체적인 증거를 찾아낼 수 없었다.

1920년 시즌이 시작되자 전년도 월드시리즈에서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은 점점 더 짙어졌고, 의혹은 또 다른 의혹을 낳았다. 결국 아메리칸리그 회장 밴 존슨(Ban Johnson)이 직접 승부조작 의혹에 대한 내사를 지시했다. 그리고 그 해 9월 24일, 뉴욕 자이언츠의 투수 루브 벤턴이 시카티, 펠시, 윌리엄스, 갠딜 등의 이름을 거명하며 승부조작에 관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에 따라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사람들은 법정에서 의혹을 밝힐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조작극의 베일은 벗겨져 갔고, 마침내 9월27일 '필라델피아 노스 아메리카'지는 조작된 특정게임, 선수들이 받은 액수까지 소상히 들춰가며 그때까지 나온 기사 중에서 가장 상세하게 진상을 밝혔다. 그 기사를 가장 먼저 읽은 사람 가운데 하나인 키드 글리슨 화이트삭스 감독은 코미스키 구단주를 다시 한 번 만나 모의에 가담한 선수들에 대한 처리방안을 상의했다. 글리슨 감독은 다음날 비상회의에 시카티를 불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코미스키와 글리슨, 그리고 구단고문변호사가 모여 있는 자리에 출두한 시카티는 채근을 받기도 전에 자신의 비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결국 코미스키와 글리슨은 시카티를 법정에 세웠고, 그의 자백으로 다른 관련자들(갠딜, 잭슨, 리즈버그 등)도 속속 법정에 세워져 그들이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자행한 고의패배의 전모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러나 판결은 쉽사리 나지 않았다. 선수들의 변호인측은 ‘피고인들이 도박사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선수들이 대중을 기만하거나 야구에 누를 끼칠 의도를 가졌다고는 볼 수 없다. 이들은 비밀리에 약속을 했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는 한 국민적 오락의 위신을 떨어뜨렸다거나 야구산업에 해를 미쳤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라고 주장했고, 이 주장은 재판을 맡은 판사들를 설득하는데 충분했다.

결국 법정은 화이트삭스 선수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선수들과 도박사들이 유죄가 되려면 월드시리즈의 승부를 뒤엎기로 공모한 의도가 단순히 져주려는 데 있지 않고 대중을 기만하려는 데에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하는데 그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구단주들이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선임한 대법원 판사출신의 커미셔너(총재) 케네소 랜디스는 법정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았다. 랜디스 판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야구계에 만연한 악습에 대해 철퇴를 가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여론 역시 법정의 결정에 불만을 나타냈다. 시카고 해럴드지는 ‘이번 재판은 승부조작 음모에 의해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는 것을 캐기보다는 빠져나갈 구멍만 찾으려 했던 인상이 짙다’고 꼬집었고, 뉴욕 타임스지는 ‘문외한이 보기에는 마치 어떤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희생자를 살해할 의사를 갖고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목을 잘랐는지를 따져 묻는 것과 같았다’고 논평했다. 결국 법정의 판결이 내려진 이튿날, 커미셔너 랜디스 판사는 이번 사건에 관련된 8명의 선수에 대해 야구계로부터 영구추방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 블랙삭스 스캔들은 ‘감독의 도박’이라는 형태로, 네셔널리그 중부지구에서 재현되었다. 이는 피트 로즈가 자신의 팀(신시네티 레즈)을 빌미로 승부조작 도박을 한 것이 그것인데, 이 때문에 로즈는 조 잭슨 등과 마찬가지로 야구계에서 영구히 추방을 당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명예의 전당 입성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이후 메이저리그는 부도덕한 사람에게 매우 냉정한 평가를 내림으로써 선수 이전에 인간이 되지 않은 선수를 추방시키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 즉, 선수/감독의 도덕성이 중요하게 대두된 것이다. 이는 ‘총파업’과 ‘약물 파동’ 등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게 된다.

- 3부, ‘메이저리그 총파업’ 편에서 계속 -

[사진=191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C) ESPN 공식 홈페이지, 피트 로즈(C) =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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