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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 삼국지] 안양 한라, '저력'으로 만들어 낸 벼랑 끝 승리

기사입력 2009.01.19 17:51 / 기사수정 2009.01.19 17:51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17일, 세이부 프린스 래빗츠와의 경기에서 4-0의 셧아웃 승을 거둔 안양 한라의 팬은 다음 날 부푼 맘을 안고 안양 빙상장을 찾았습니다. 전 날 보여줬던 그 호쾌한 경기력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가득했습니다.

안양 한라는 서서 관전한 관중이 앉아서 관전한 관중만큼 많아, 일요일 경기에서는 지정석을 폐지하고 티켓을 모두 자유석으로 판매할 만큼 선두를 다투는 이 두 팀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선수들이 워밍 업을 위해 링크로 들어서자 벌써 관중석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안양 한라의 팬은 함성과 박수로 선수들을 맞으며 때 이른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기자에게도 전 날의 경기력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항상 리그 최강이라 여겨지던 세이부를 상대로 단 1점의 실점도 하지 않았다는 점도 물론 대단했지만, 몸을 날리는 허슬 플레이를 비롯해 무엇 하나 흠 잡을 수 없었던 60분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18일은 전 날 보여줬던 양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전 날 크게 데인 세이부는 경기 초반부터 안양 한라를 거칠게 몰아 붙였습니다. 공수 할 것없이 모두 안양 한라 진영으로 올라와 공격에 주력했죠. 그 치열했던 공격은 결국 첫 골이라는 결실을 만들어 냅니다.

안양 한라의 수비 실수를 놓치지 않은 세이부는 1피리어드 8분 59만에 스즈키 타카히토가 첫 골을 터트렸습니다. 이후 세이부는 이 기세를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맹공을 펼쳤습니다. 맹공은 결실을 맺었고, 11분 34초에는 후지타 키요시가 팀의 두번째 골을 만들어냈죠.

11분 만에 두골. 우리의 것이 아닌 상대의 것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안양 빙상장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여전히 화이팅을 외치며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고, 일부에서는 '정신차리라.'는 말까지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터진 골 마저 세이부의 것이었습니다. 2피리어드 4분 43초만에 카미노 토루의 슈팅이 손호성 골리를 지나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세이부는 전 날의 수모를 갚아가고 있다는 기쁨에 빙판에 서 있는 선수는 물론 벤치마저 기쁨을 감추지 않았죠.

0대3, 어찌보면 더 이상 승부를 뒤집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분위기였지만 안양 한라가 올 시즌 보여준 '13번의 역전승'의 저력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세이부의 골이 터진 지 2분만에 첫 만회골이 터졌습니다. '코리안 로켓' 송동환이 자신의 진가를 맘껏 선보였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첫 골. 안양 빙상장은 흥분으로 물들었습니다.

연이어 4분 뒤, 그동안 조금 잠잠하던 리그 득점 선두 브락 라던스키도 질 수 없다는 듯, 세이부의 골대를 뚫었습니다. 세이부의 골대 뒤를 빙 돌아와 살짝 방향만 바꾼 것이 틈새를 지나 골 라인을 넘었습니다.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안양 빙상장은 시끄러워졌습니다. '코리안 로켓' 송동환의 골이 관중석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앞 서 터진 라던스키의 골은 30:12, 송동환의 골은 30:45초 터졌습니다. 두번 째 골이 터진 지 33초만에 만들어진 동점 골.

전광판의 숫자가 3-3을 기록했습니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숫자가 동률을 이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관중석에선 환호와 즐거움이 가득 찬 비명이 연방 터져나왔죠.

그러나 3피리어드가 시작하자마자 그 기쁨은 너무나도 쉽게 사라졌습니다. 3피리어드 33초만에 우치야마 토모히코의 골이 다시 승기를 세이부로 몰아갔습니다. 조용해진 관중석은 아랑곳하지 않는 다는 듯 세이부 선수들은 포옹을 나누며 역전을 기뻐했죠.

앞 서 '저력'을 언급했습니다. 이대로 끝났다면 저력이라는 말은 꺼낼 수 없었겠죠. 9분 뒤 브락 라던스키가 다시 균형을 맞추게 되는 천금과도 같은 동점골을 성공 시켰죠.

정말, 세이부도 마음을 독하게 먹고 경기에 임했던 듯 합니다. 라던스키의 골이 터진 지 1분만에 콘 요스케의 골로 다시 역전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제 3피리어드도 10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드리블로 세이부의 골문까지 달려갔지만 키쿠치 나오야 골리에 막혀 번번히 돌아서야 했습니다. 돌아설 때 마다 관중석의 탄식은 길어졌습니다. 어찌 그렇게 안들어가는지 발을 동동 구르고 '제발, 제발'을 외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될 정도였죠.

스포츠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라고 불리는 데는 종료 부저가 울릴 때까지 결과를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종료 27초를 남기고 라던스키가 자신에게는 해트트릭, 팀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천금과도 같은 동점골을 터트렸습니다.

'열광' 이 단어로 그 당시 안양 빙상장을 표현하면 맞을까요? 세상 그 어떤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그 분위기만큼은 쉽사리 표현하기 어려울 겁니다. 모두가 양 팔을 들어올리고 맘 껏 기쁜 마음을 내질렀습니다. 그렇게 세이부의 승리로 마무리 될 것 같았던 경기는 연장전으로 돌입했습니다.

너무나도 극적이었던 그 순간이 힘겨웠던 탓인지 5분간 진행되었던 서든 빅토리 방식의 연장전에서는 골이 터지지 않았습니다. 피말리는 슛아웃이 그 들앞에 놓여있었죠.

한 번의 응원과 또 한 번의 야유가 번갈아가며 빙판을 가득 채웠습니다. 마침내 패트릭 마르티넥의 골이 터지고 골 부저가 울리고, 주심이 안양 한라의 승리를 선언 했습니다. 벤치에서 초조하게 바라보던 푸른 유니폼이 파도처럼 빙판으로 밀려 들었고, 다 이긴 경기를 놓친 세이부는 허망하게 그 파도를 바라볼 뿐이었죠.

소리지르며 서로를 부둥켜 안은 안양 한라의 선수들은 하나의 푸른 덩어리와도 같아 보였습니다. 벤치에서는 차마 뛰쳐나오지 못한 코칭 스태프도 서로 얼싸안고 승리를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 안양 한라는 정규 리그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했던 샴페인을 터트리지 못했습니다. 샴페인이 터질 수 있을지는 오는 25일 목동에서 열리는 하이원과의 경기까지 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극적인 기쁨'을 위해서 잠시 미뤄둔 샴페인은 '파란 백곰들'이 그토록 바랐던 한국 '최초' 정규리그 우승을 위해 마지막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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