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김옥빈이 아닌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었다. 그녀는 영화 '악녀'(감독 정병길)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완성했다.
8일 개봉한 '악녀'는 살인병기로 길러진 최정예 킬러 숙희가 그녀를 둘러싼 비밀과 음모를 깨닫고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옥빈은 어린 시절부터 고도의 훈련을 받고 최정예 킬러로 길러졌지만, 조직으로부터 버림 받고 살기 위해 국가 비밀 조직의 요원이 돼 이름도 신분도 가짜인 삶을 살아가는 숙희로 분했다.
앞서 '악녀'는 김옥빈의 액션 도전, 또 지난 5월 열린 제70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으로 주목받았다. 김옥빈에게는 2009년 '박쥐'에 이은 8년 만의 칸 입성이었고, 영화는 '여성 액션의 신세계'를 보여줬다는 평과 함께 현지에서의 뜨거운 관심을 몸소 입증하며 의미를 더했다.
김옥빈은 칸 영화제 참석 이후 곧바로 '악녀' 홍보 활동에 나서며 분주한 5월을 보내고, 또 6월을 맞이하고 있었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옥빈은 "공항에 도착하면 기억이 날 줄 알았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더라고요"라며 "그 때는 너무 어렸으니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선배님들을 따라다니기만 하면 됐잖아요. 이번에는 모든 기억을 새로 씌우는 과정이기도 했어요. 레드카펫도 설렜고, 다시 가니까 좋긴 좋더라고요"라고 웃어보였다.
'악녀'는 김옥빈의 표현을 빌려 '행운 같았던 작품'이었다. 숙희라는 캐릭터를 통해 한 여자의 굴곡진 인생, 성장 과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 김옥빈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걸 어떻게 만들 생각을 했지?' 싶었죠.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액션신이 보통 이상으로 너무 많은 거예요. 여자들에게 맡기는 한 두신 정도가 아니었죠. 카체이싱 신부터 버스 액션 신까지 소화해야 될 양이 어마무시했어요. 그 안에 복수도 있고 인생도 담겨 있죠. 이것을 모두 영화 안에서 만나는 게 행운처럼 느껴졌고, 정말 하고 싶어서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았어요."
실제 '악녀' 속에서 김옥빈은 칼과 총, 검, 도끼까지 거친 무기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강렬함을 뽐낸다.
김옥빈은 "액션은 거의 90~95% 다 했어요. 목숨을 내놓아야 할 장면 빼고는 다 제가 했죠. 예를 들면 오프닝 액션 신에 얼굴이 나오지 않는 손동작은 스턴트맨이고, 제가 나오면서부터는 모두 저고요. 유리창을 뚫고 와이어에 매달려서 뛰어내리는 것도 다 저예요. 복면을 쓴 모습이요? 스턴트맨이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는데 다 접니다. 버스 액션 신, 오토바이 신도 그렇고요"라고 설명을 이었다.
버스 액션 신에서의 매달리고, 달리면서 찍는 장면이 어려웠다고 토로한 김옥빈은 "와이어는 보통 줄 하나를 달고 하잖아요. 이번에는 거미처럼 4~5개 방향에서 와이어를 달았어요. 몸에 긴장이 많이 돼서, 힘든 부분도 있었죠. 또 저희 버스 액션 신이 마을버스에서 촬영됐잖아요. 공간이 좁다 보니까 버스 안에서 촬영감독님도 같이 피하면서 찍으셔야 했고, 그렇게 서로 부딪히고 피하면서 스턴트맨, 신하균 선배님과 같이 합을 맞추는 것이 어려웠어요"라고 돌아봤다.
힘들었던 과정을 얘기하면서도, 촬영 과정을 전하는 김옥빈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김옥빈은 '액션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가'라는 물음에 쑥스러운 듯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있는 것 같아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지난 해 7월부터 액션 연습을 시작했고, 10월부터 촬영에 들어갔었거든요. 그 때 느꼈던 것이 일단 굉장히 빨리 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액션을 즐겨하고 좋아하는 것 같았고요. 또 뭔가 새로운 합을 짜주면 설레요. 그리고 촬영하면서도 느낀 것인데, 오토바이에서 보닛으로 가고, 버스로 가고 이렇게 자꾸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정말 신나더라고요.(웃음) 와이어를 여러 개 달고 (신)하균 오빠와 동시에 떨어지는 장면도 있었는데, 이런 장면은 어떤 영화에서도 해 본적이 없는 것이라서 많이 신나하면서 했어요."
칸에서도 여성 액션 영화의 등장에 대해 외신들로부터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김옥빈은 "한국에서 여성 액션이 나왔던 적이 많이 없잖아요. 외신들이 전 세계적으로 여성액션 영화가 많이 없는데, 한국의 여성 액션 영화가 정말 신기하다고 얘길 많이 하더라고요. 처음에 '악녀'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감독님에게 "투자가 됐어요?"라고 물었거든요. 여자한테 액션을 시켰을 때 폼이 제대로 안 나고 쉽게 다쳐버리면 '거봐, 안되잖아' 이런 소리를 듣기가 너무 싫어서, 다치기도 정말 싫었고 제대로 소화를 해내고 싶었어요. 그래야지만 앞으로 여성 영화에 대한 투자가 잘 이뤄질 거란 생각이 들었고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액션을 하다 멍들고 찢기는 건 일상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옆에 스턴트맨들은 더 힘든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차마 자신이 더 힘들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을 다잡게 만들었던 현장이었다.
2005년 영화 '여고괴담4'로 데뷔한 이후 김옥빈에게는 강렬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뒤따라왔다. 김옥빈은 '센 이미지의 캐릭터에 끌리는 것이냐'는 물음에 "제가 그런 캐릭터를 좋아하나 봐요. 무조건 이런 캐릭터를 하겠다는 것은 아닌데, 이렇게 자기 생각을 좀 또렷하게 얘기할 수 있는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숙희는 다른 세상에 있지만 보여줄 수 있는 게 굉장히 강렬했기 때문에 좋았던 것 같고요"라고 강조했다.
차기작으로도 "액션 영화를 다시 하고 싶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음악과 관련된, 춤추는 영화도 정말 하고 싶어요"라고 마음속에 그리는 바를 살짝 귀띔하기도 했다.
올해의 5월은 배우 김옥빈에게도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됐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일단 나이를 먹었고요.(웃음) '박쥐' 때만 해도 정말 신기한 게 참 많았던 것 같아요. 더 들떠 있고, 아기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현장에서의 그런 경험들이 익숙해지고 조금 더 노련해지는 것 같고요. 연기에 대한 고민도 많아지고, 참견도 늘어나고요.(웃음) 그렇게 되더라고요."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서, 김옥빈은 앞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더 많은 여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소망하며 '악녀'에 대한 기대를 함께 당부했다.
"한국에 멋진 여배우들이 많잖아요. 저도 팬인 분들이 많고요. 성별에 구분을 두자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조금 더 많이 활용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악녀'도 정말 최선을 다 한 작품이어서, 많은 관객 분들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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