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연기자로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18년.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은 배우 조인성에게 여러 새로움을 안긴 작품이다. '더 킹'에서 조인성은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 나게 살고 싶었던 박태수 역을 맡았다. 영화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야기의 중심에 선 박태수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30년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한다.
▲ "박태수 캐릭터, 지치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다"
'더 킹'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조인성은 소탈하고, 또 솔직했다.
"제 얼굴이랑 목소리가 화면에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걱정했어요. 박태수가 '더 킹'이고 '더 킹'이 박태수잖아요. 영화를 보고 나서요? '살았다'고 생각했죠. '해냈다' 이게 아니라, '다음 작품을 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그런 느낌이요.(웃음)"
스크린 복귀는 9년 만이었다. 2011년 전역 이후 복귀작으로 영화 '권법' 출연을 계획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제작이 지연됐다. 3년 간의 기다림 끝에 결국 '권법' 하차를 결정했고, 그 사이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와 '괜찮아 사랑이야'(2014)로 대중과 마주했다.
그리고 '더 킹'을 만났다. 조인성은 "'비열한 거리'(2006)와 '쌍화점'(2008) 모두 100회차가 넘었거든요. 고생길이 훤한데.(웃음) 괜찮을까 걱정이 됐죠. 찍기 전, 또 찍고 난 후의 조인성이 갑자기 너무 안 좋아져서, 지금의 나도 유지 못하는 건 아닌가라는 불안감도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하게 됐죠"라고 웃어보였다.
박태수 캐릭터를 '지치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다. 조인성은 "(태수가 극의 중심에 있는데) 태수가 싫어지면 (관객도) 그 시선을 놓고 싶어지거든요. 그게 굉장히 어려운 지점이었어요. 함께 갈 수 있는, 이해가 되고 동질감이 들고 공감이 되는 캐릭터가 돼야 했으니까요. 태수가 갖고 있는 메시지가 강한데, 표정 같은 것을 세게 연기하자니 (보는 분들이) 지칠 것 같고, 가볍게 연기하자니 너무 뜰 것 같고요"라고 고민했던 지점을 토로했다.
'더 킹'은 박태수 시점으로 이어지는 내레이션을 통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서사를 친절하게 풀어준다.
"내레이션을 어떻게 해야 될까에 대한 부담이 있었죠. 격정적으로, 감정적으로 하면 너무 과한 것 같고, 담백하게 하자니 심심한 것 같고요. 다양하게 해보다 보니 후반작업 때 시간이 두 배 정도 걸리더라고요. 또 대사량도 어마어마했잖아요. 이걸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런 여러 생각들을 섞어 최종적으로 만든 버전이 지금의 '더 킹'이예요."
온통 걱정과 어려움, 고민이 가득했다고 회상하는 그이지만, 스크린 가득 꽉 채워진 존재감에는 기꺼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올릴 만하다. 양아치 고등학생이던 박태수가 검사가 되고,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정우성)을 만나 권력의 중심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경쾌한 리듬으로 중심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한재림 감독의 응원에 힘을 얻었다. 조인성은 "증폭이 넓은 캐릭터이다 보니 고민이 많았는데, 감독님이 가끔씩 '조인성의 종합선물세트라는 느낌으로 편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해주셨어요. 저의 능력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해 봤죠"라고 얘기했다.
조인성과 한재림 감독을 비롯해 정우성, 배성우, 류준열 등 감독과 출연진들이 누구보다 끈끈한 정을 자랑했다는 것은 앞서 많이 화제가 됐던 내용이다. 조인성은 "어느 순간 제가 제작사 같고, 감독님처럼 이 작품에 파트너십 같은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서로 이해하면서 찍었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하며 미소 지었다.
▲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세요"…연기로 얻은 인간 조인성의 깨달음
'더 킹'을 촬영하며 느꼈던 부담감은 없었다. 조인성은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지 않나 당연히 생각했었다"면서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마당놀이나 풍자 같은 느낌이요"라고 설명했다.
"검사를 묘사하려고 했던 부분이 아니라, 태수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하물며 우리가 '뭘 먹을까'도 선택의 문제인데, 그 때의 나는 어떤 선택을 해서 만들어졌고, 또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이 돼 있을까 그런 지점을 보니 흥미롭더라고요. 힘이든 공부든 누구나 1등에 대한 욕심이 있게 마련인데, 그런 개인적인 삶 속에서 인물을 바라보니까 (태수처럼) 위험한 선택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부분에 공감이 됐죠."
그렇게 '더 킹'을 통해 자신의 삶도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됐다. 조인성은 "전 스위치를 끄면 평범한 조인성으로 돌아가요. 직업적인 불편함 때문에 놀이동산 같은 곳에 못 가는 것 뿐이지, 나머지는 저도 평범한 사람처럼 법적 테두리 안에서 걸어다니고요, 술도 많이 마시고요. 사람도 만나요.(웃음) 제가 여기서나 연예인 조인성이지, 집에 가면 누군가의 아들로 불려요. 그건 보통 사람과 똑같죠"라며 웃는다.
1998년, 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해 2000년 시트콤 '뉴 논스톱'으로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드라마 '학교3'(2000), '피아노'(2001), '발리에서 생긴 일'(2004), '봄날'(2005) 등 드라마와 영화를 아우르며 필모그래피를 채워 넣었다. 자신 앞에 붙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도록, 스스로 일궈낸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마주해 온 19년이라는 시간동안 18살의 치기 어리던 고등학생 조인성은 어느새 여유와 노련함을 갖춘 30대 중반의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성장통이 좀 심했어요. 빨리 어른이 됐죠. 세상 살면서 왜 힘든 것이 없겠어요. 그 벽이 누구나 있죠. '괜찮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 말이 제 발목을 잡았어요. (지금의 제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게 절 더 가혹하게 만들었죠. 인기와 관심, 돈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도 부정은 못하겠어요."
가족을 바라보며 또 다른 시선을 찾게 됐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던 조인성의 목소리에 묵직함이 더해졌다.
"몇 개월 전에, 부모님을 보면서 생각했죠. '어머니의 삶은, 또 아버지의 삶은 어땠을까' 하고요. 보통 사람들이 제가 자수성가를 했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부모님을 보니, 내가 잘해서 된 게 아니더라고요. 분명 저희 어머니, 아버지도 자존심이 있고 그것을 어쩔 수 없이 굽혀야 되는 순간들도 계셨겠죠. 그런 순간에도 아들을 키워보겠다고, 그렇게 애써주셔서 제가 이렇게 된 것인데, 제가 나 혼자 잘해서 이렇게 잘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다는 이 생각이 딱 들었어요. 미안했던 것 같아요."
"'누구나 어려움을 다 겪는 것이구나. 저희 어머니도 저를 30년 넘게 키우셨지만 매 순간 힘든 일이 있으셨겠구나. 왜 나만 힘들었다고 생각했지?'란 마음이 들었어요. 어머니도 지치실 때가 있었지만 절 이렇게 품어주셨잖아요.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어요"라고 말을 이은 조인성은 "그래서 깨달은 게, 그게 무엇이 됐든 10년 이상을 하면 무엇이라도 돼 있다는 것이요. 저 역시도 연기를 잘 하냐 못하냐를 떠나서, 포기하지 않고 10년이 지나니 배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잖아요"라고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조인성은 "자전거를 배울 때 열 번 넘어진 친구가 한번 넘어진 친구보다 더 잘 타는 건 사실이잖아요. 우리가 너무 '실패하면 안 돼' 이렇게 세뇌를 당한 게 크니까, 이제는 스스로를 귀하게 여겨서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잘나고 못나고가 아니라) 뭐가 돼 있더라고요. 저 역시도 먹고 살기 위해서 연기한 건 사실이에요, 먹고 살면 되지 않나요?"라고 웃으며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진심어린 마음도 함께 전했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아이오케이컴퍼니,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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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