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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인터뷰] '판도라' 정진영 "현장에서 숨 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

기사입력 2016.12.25 07:00 / 기사수정 2016.12.25 00:07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올해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시청자와 꾸준히 호흡해 온 배우 정진영이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로 관객들을 만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판도라'는 7일 개봉 이후 376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판도라'에서 정진영은 사상 초유의 재난 속에서도 발전소 직원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발전소 소장 평섭으로 분했다.

재난 현장 속에서 누구보다 투철한 희생정신과 책임감으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떠올리게 만드는 정진영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정진영은 '판도라'를 처음 만나게 된 때를 회상하며 "시나리오를 받고 다음 날 바로 하겠다고 연락을 했었죠"라고 웃었다.

"원전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잖아요. 그게 좀 놀라웠어요. 우리나라에서 이런 원전사고를 소재로 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나 생각이 들었죠. 상당히 많은 자본이 필요할 텐데 가능할까 우려도 있었고요. 투자가 잘 돼서 성사될 수 있어 다행이었어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인데, 정면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굉장히 많이 끌렸죠."

국내 최초 원전을 소재로 한 '판도라'는 개봉 전부터 현 시국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속 상황으로 뜨거운 관심을 얻은 바 있다. 영화를 향한 관객들의 반응에 정진영은 놀라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재난영화의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가 재난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고위층의 무능, 부패가 한 요소잖아요. 때문에 재난의 가장 최전선에 맞선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하긴 하죠. 그런데 최근 우리 시국 사태에서 그 모습이 덜커덕 현실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관객 분들도 이게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끼시는 것 같고요. 어차피 원전사고의 핵심에는 정책을 위반하고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그런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것을 상상해서 거리감 있게 대본을 구성하고 촬영했는데, 영화가 현실처럼 뵈게 된 거에요. 좀 놀랍고, 오히려 당혹스러운 마음도 들더라고요."

실제 영화 속에서는 막연히 상상으로만 그렸던 지진이 현실 속에서 일어나면서, 영화와의 거리감은 더 좁혀졌다.

정진영은 "영화를 보신 분들이 너무 공포에 떠실까봐, 두려워하실까 걱정이 돼요. 원전에 대해선 남의 일처럼 생각했잖아요. '안전한 지대에 있다고 안심을 하고 원전정책에 대해서 큰 관심을 안 가졌는데, 곰곰이 같이 생각해봐야 될 문제다'라고 말씀드리기 위해서 만든 영화이니 너무 걱정하시지 마시고 보셨으면 좋겠고, (원전의 안전문제를) 제대로 한 번 점검해서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해보자'라고 말씀드리고 싶죠"라고 강조했다.


정진영이 연기한 평섭은 노후화 된 원전에 대한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빌미로 좌천되지만, 발전소가 폭발하는 사상 초유의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와 구조 작업을 펼치고 끝까지 현장을 지키는 책임자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우리 사회에 '꼭 있었으면 하는' 인물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진영은 "평섭이라고 내면적 고민이 왜 없었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섭의 대사 속에서 발전소를 '집주인'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나의 애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애인이 어느 과정에서 악마가 됐다' 생각하면 여지가 없겠죠. 나의 애인이었던 존재가 악마가 돼서 치명적인 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악마와 맞서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덧붙였다.

지난 해 3월부터 7월까지, 촬영장에서 치열하게 땀을 흘린 시간들을 되돌아 본 정진영은 "촬영장이라는 게 편한 현장은 아니죠.(웃음) 재난 현장 속에서 뛰어다녀야 되는데, 의상이 실제 방재복은 아니었지만 비슷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땀도 안통하고, 헬멧도 본인이 쓰고 벗지 못하는 그런 형태였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헬멧을 쓰면 산소가 안 통해서 그 위의 팬을 돌려서 공기를 들어오게 하거든요. 촬영하다 보면 팬의 배터리가 나가기도 하고, 회선이 엉키면 공기가 안 들어오기도 해요. 그런데 같이 찍는 신이 많다 보니까 찍다가 팬이 안 돌아가서 숨이 막혀도 NG를 낼 수가 없는 거예요. 숨이 막히고 힘들어해도 다들 연기하는 줄 알죠.(웃음) 워낙 큰 신이라 NG를 낼 수도 없고, 간신히 참다가 '컷' 하자마자 헬멧 열어달라고 하고 그랬어요. 저 뿐만 아니라,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 배우들도 그 과정을 거쳤죠"라고 함께 고생한 동료들을 언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올해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와 '시간이탈자', '그랜드파더', 드라마 '화려한 유혹'까지 꽉 찬 시간을 이어온 그다. 정진영은 "여러가지 경험들을 하면서 많은 자극이 됐어요"라며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 위한 충전도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또 연기와 함께 할, 앞으로 그려나갈 시간들도 담담하게 그려나가며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

"(배우로서) 나이가 들면 자기 역할의 비중이나 크기들이 작아진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당연한 것 같아요. 서운해 할 일도 아닌, 자연스러운 것 같고요.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것은 그 전에 모르던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게 돼서 좋다는 것이죠. 나이를 먹는다는 게 진한 감정을 알게 되는 것 아닌가, 많은 경험을 했으니 더 진하고 깊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롤을 맡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오래 했다고 잘 하게 되는 것 같지도, 또 객관적인 성적표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어떤 면에서는 자기만이 알고 느끼는 자기 평가에 달린 것 같다"고 정리한 정진영은 여전히 현장에서 숨 쉬고 있을 때의 자기 자신이 가장 행복하다고 미소 지었다.

"연기에 대해서는 틀림없이 뭘 채워 넣었다고 생각해도 어딘가는 비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채워지지 않는 것 같죠. 현장에 있는 것은 그래서 즐거워요. 내가 오늘 살아야 할 부분이 명확히 보이잖아요? 우리가 보통 불안하다고 할 때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를 때 불안하다고 하는데, 촬영장에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 지 아니까요. 그래서, 촬영장에서의 시간이 제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에요."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서예진 기자, NEW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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