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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인터뷰①]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감독 "극한상황까지 갔던 작품"

기사입력 2016.10.18 17:30 / 기사수정 2016.10.18 20:06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영화가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좀 대견해요."

이재용 감독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죽여주는 여자'를 세상에 내놓은 기분을 전한다.

가난한 노인들을 상대하며 먹고 사는 '죽여주게 잘 하는' 여자 소영이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은 고객들을 진짜 죽여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죽여주는 여자'는 지난 6일 개봉 이후 8만7천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저예산 영화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이재용 감독이 있다. '여배우들'(2009), '뒷담화 : 감독이 미쳤어요'(2012), '두근두근 내 인생'(2014) 등으로 꾸준히 관객들을 찾았던 이재용 감독은 누군가는 해야 됐을, 또 했으면 좋았을 노인문제와 트렌스젠더,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자녀를 이르는 말) 등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죽여주는 여자'를 통해 수면 위로 꺼내놓았다.

이재용 감독은 "2개월 만에 준비해서 2개월 동안 찍고, 5일 만에 편집하고 5일 만에 사운드를 입혀서 베를린(영화제)으로 간 것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 배경에는 투자 문제, 또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한 무게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연히 대중이 즐길 오락용 영화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상업적인 투자를 받는 게 관건이었죠. 다행히 영화진흥위원회의 KAFA 프로젝트에 선정돼 찍을 수 있게 됐어요. 그렇다면, 성과를 내야 하는 거거든요. (흥행보다)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다거나 하는 것이요.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제 영화가 선정됐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저와 네 편이나 인연이 있던 베를린영화제 마감일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나갔죠. 그렇게 좀 성급하게 한 부분이 있어서 물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영화계를 떠나야 할 수도 있을 만큼, 내 커리어가 다 망가진다고 해도 못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촬영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수면부족은 당연했고, 촬영 자체에 대한 부담과 소재가 주는 우울함, 사회적으로 끼칠 수 있는 어떤 영향들에 대한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다.

"촬영 일주일 전에 사실 포기를 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저를 안정시켜 주고, 도움을 줘서 다시 이어갈 수 있었죠. 누군가는 이미 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을 수도 있을 테니, 그래서 다급한 마음도 있었어요. 누군가가 내보이기 전에 빨리 하고 싶었죠. 그래서 좋은 평을 듣고, 이런 부분을 떠나서 영화가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좀 대견해요."

실제 '죽여주는 여자'는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 40회 홍콩국제영화제에 이어 제 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또렷한 결과도 함께 남겼다.


무려 세 작품을 함께 한 배우 윤여정에 대한 믿음도 작품을 완성하는 데 힘을 더해준 부분이었다.

"'죽여주는 여자'를 만들기로 하고 윤여정 씨와 이야기를 나눴죠. 힘들 수도 있는 소재지만, 여자로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좀 더 편안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동의했어요. 현실감 있고 메시지도 강렬하고, 제가 하고 싶다고 하니 윤여정 씨도 '그러자'고 해서 함께 하게 됐죠."

성매매 노인이나 트렌스젠더, 코피노 등의 이야기는 이재용 감독이 평소에 관심 있게 보고, 꾸준히 스크랩을 해놓던 분야이이기도 했다.

"영화 속 소영(윤여정 분)이 사는 곳이 이태원인데, 그곳이야말로 다양한 인종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그 장소를 선택했죠. 소영이가 사는 집도 이태원을 돌아다니다가 찾았는데, 제가 생각했던 곳과 똑같은 집이 거기 있더라고요. 그럴 땐 정말 '내게 이런 운이 따르다니!' 하면서 희열을 느끼죠.(웃음)"

시종일관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이야기는 소영, 도훈(윤계상), 티나(안아주) 등 각자의 상처가 있는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보듬어주는 모습으로 따뜻함을 전한다.

"소재만 보면 굉장히 묵직하게 갈 수도 있었죠. 그런데 결국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더라고요. 철학자처럼 심오하게 이 영화를 소개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오히려 가볍게 그리고 싶었어요. 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얼마나 비참한 삶이에요. 하지만 그렇게만 그리면 불편할 것 같았어요. 영화 속에서도 '저 사람들도 사정이 있었겠지', '사람들은 겉만 보고 얘기하거든' 이런 대사들이 나오는데, 그게 제가 바라보는 세상인 것 같아요. 고단한 삶이 있지만, 그 안에 작은 행복들을 나눌 수 있다면 좋은 거죠. 어떻게든 힘을 갖고 살아내야 하는데, 비참한 삶에도 작은 온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만들었어요."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서예진 기자,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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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P인터뷰②]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감독 "노인문제 이야기, 너무 늦지 않았나요"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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