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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의 'TV처방전'] '마녀사냥', 막힌 연애를 뚫어주는 '소화제'

기사입력 2015.05.09 12:58 / 기사수정 2015.06.04 14:42

이영기 기자



[엑스포츠뉴스=김동진 대중문화평론가] 연애의 세계에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우리의 오래된 식습관이 통하지 않는다. 김종서는 <사랑을 한 후에 사랑을>이라는 곡에서, '사랑이란 쓰디쓴 술잔임을 알았네. 하지만 또 마시고 말지'라고 노래했다. 그렇다, 연애란 쓴맛 일 줄 뻔히 알면서도 뱉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쓰디쓰면서도 달콤한(bitter sweet)' 게 연애다. 눈물을 찔끔 짜고야마는 무교동 매운 낙지처럼, 맛있지만 눈물을 바쳐야하는 것.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이 난감함이야말로 연애의 알파요 오메가다. 그러니 '소화불량'을 피할 길이 없는데, JTBC의 '마녀사냥'은 이 체증을 치료해주겠다고 나선 '소화제'다.

[성분]

- 그린라이트 : '그린라이트를 켜줘'가 연애의 시작을 감별한다면, '꺼줘'는 연애의 끝을 판정한다. 상대가 연애 감정에 빠져있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신호는 상대의 '말과 행동'이다. 연애 당사자들은 흔히 감정의 격랑 때문에 이 신호를 과잉해석하거나 무시한다. 그래서 이 '연애 신호'를 읽어내기 위해 객관적인 3자가 동원된다. 그린라이트는 연애가 얼마나 '신호와 해석'에 좌우되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 남녀의 사연 : '마녀사냥'의 진정한 재미는 신청자들의 실제 사연을 듣는데 있다. 매회 색다른 사연들은 '연애 데이터베이스'를 이룬다. 점점 불어나는 이 DB 어딘가에 '나의 연애'에 꼭 필요한 지침이 들어있을 것 같다. 더불어 타인의 연애를 엿보는 듯한 야릇한 '쾌감'도 있다. 이런 '연습문제'들을 풀다 보면 둔감한 나의 '연애 촉'이 점점 날카로워지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 국민참여재판 ? : '마녀사냥'의 2부는 패널과 방청객이 흡사 100분 토론처럼 양편으로 나눠져 진행된다. 사실 의견의 대립은 좌석배치와 달리 좌우 구분 없이 이뤄지며 토론도 격렬하다. 거기에 방청객 투표로 그린라이트 여부를 묻는 것은 국민참여재판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형식은 신청자의 사연을 여러 관점에서 두루 살피면서 객관적으로 접근한다는, 그래서 그만큼 정확하다는 환상 비슷한 것을 심어준다.

- 너의 '톡'소리가 들려 : 88회를 맞아 개편된 2부 코너. 사연의 당사자가 직접 출연해 애인(혹은 썸남썸녀)과 주고받은 카톡 내용을 공개하고, 이를 토대로 패널들이 조언하고, 연애의 '시작과 끝'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방식. 사연당사자의 직접 출연은 '마녀사냥'이 매너리즘을 떨쳐내기 위해 내린 꽤 논리적인 처방이다. 언젠가부터 MC와 패널들은 '신청자의 사연'을 '연애심판자'처럼 권위적으로 판결내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것은 사연의 신청자가 MC와 패널의 판단에 대해 반박이나 부연설명을 할 수 없는 구조 탓도 있었다. 이런 권위적인 느낌을 줄이기 위해서 패널의 수를 줄이고, 사연신청자의 역할비중을 높인 것은 적절한 조치로 보인다.

[효능‧효과]

- 매뉴얼이 아닌 감정교육 : 연애에 대해 코치하는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은 '매뉴얼이란 결국 허망한 것'이라는 결말을 맺기 일쑤다. 타인의 감정에 이르는 '기계적이고 효율적인 지름길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고, 우리는 이미 그것을 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지름길을 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그만큼 고되고 어렵기 때문이리라. '마녀사냥'은 이 험난한 길을 어렵지 않게 가로지르는 사륜마차처럼 보인다. 네 명의 MC는 연애의 결승점이 코앞에 보인다는 듯이 거침없이 질주해간다. 물론 때때로 콧김을 내뿜으며 정색을 하고 조언을 포기하기도 하지만.

[부작용]

뭐니뭐니해도 연애는 결국 '케바케(case by case)'의 세계다. 두 당사자에게만 감지되는 기별들에 얼마나 예민하게 마음을 여느냐가 관건이라 일반화할 수가 없다. 당연히 세상의 어떤 연애전문가도 반파(半破)된 내 연애를 견인해주지 못한다. 나와 상대의 진심과 표현 사이에 생기는 '간극'을 알아내는 일. 그 간극을 최대한 좁혀 연애의 길이 가시밭길이 되지 않도록 개간하는 일이 우리의 숙제다.

의학계 일각에서는 소화제는 플라시보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우리 몸에 약리적으로 실제 작용하기 보다는 '내가 약을 먹었으니 이제 낫겠지'라는 믿음을 통해 소화불량이 사라졌다고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녀사냥'은 '연애불량'에 걸린 이들의 플라시보효과에 불과한 '소화제'일 수도 있다.

게다가 '몇 대 몇' 방식으로 판정내림으로써 온전해야할 연애의 가능성이 싹둑 잘려나갈 위험성도 도사린다. 또 일반인 사연자의 출연은 <화성인 바이러스>의 연예인 지망생과 쇼핑몰 운영자들의 홍보성 출연 문제 같은 불미스러운 사태로 이어질 위험성이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으랴. 더부룩하던 연애 관계가 '마녀사냥'이라는 소화제를 만나 체증이 확 풀리는 느낌을 받는다면, 한 시간을 지불한 대가로 얻는 처방전으로 그다지 나쁘다곤 할 수 없을 터이다.

김동진 대중문화평론가 nivriti@naver.com

[사진 = '마녀사냥' 출연진 ⓒ JTBC]



이영기 기자 leyoki@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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