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박소현 기자] 배우 박근형은 자신만의 연기론이 확고한 뜨거운 '청년'이었다.
영화 '장수상회'에서 박근형은 처음으로 강제규 감독과 조우했다. 강제규 감독도 박근형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을 드러냈듯, 박근형 또한 그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배우를 존중하고 배우의 생각을 높이 사는 감독을 만나 행복했다고 먼저 입을 열었다.
"강제규 감독은 촬영에 들어가서 배우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조용히 본다. 자신의 생각과 배우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맞춰나간다. 영화라는 건 감독 예술이다. 그는 드라이 리허설 할 때 카메라 위치를 잡고, 보완하고 테스트를 여러차례 한다. 그러니 테이크는 1,2번에 끝낼 수 있다. 그렇게 치밀하다. 배우가 최상의 컨디션일 때의 컷을 뽑아낸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현장에서도 웃음이 많았다. 존경스러웠다."
박근형은 영화 '장수상회'를 통해 무뚝뚝한 성품을 지닌 성칠로 변신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윤여정은 "박근형이 남우주연상을 노려봐도 될 정도다. 이번 영화에 그의 '정수'가 담겼다"고 극찬했다.
그는 '장수상회'에서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성칠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뜨겁게 표현했다. 극 중 장수마트의 사장이자 동네 재개발을 주도하는 장수(조진웅)와 다투는 신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펼쳤다. 장수와 몸싸움을 하는 장면에서 자신을 더 세게 밀칠 것을 요구하는 등 '장수상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장수상회'와 박근형은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몸 같은 사이가 됐다.
뛰어난 연기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박근형이지만 그에게도 배우로서 슬럼프의 기간은 있었다. 쉼없이 연기에만 몰두하며 달려왔지만 나이가 들자 어느덧 그를 찾는 이들이 점점 줄어 들었다 그는 3,4년 가까이 쉬어야 했다. 그 때 그는 다시 연기를 배웠다.
"내가 50세 가까이 되니 발붙일 곳이 없어졌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아니니 아무런 쓰임새가 없어 공백이 생겼다. 배우 생활의 위기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계간지에서 역할창조론이라는 글을 읽고 이를 해보기로 했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하면서 악역이지만 인간의 내면을 넣어 연기했다. 단순히 나쁘다고 손가락질 할 수 없도록, 동정론이 나올 수 있도록 역할을 했다. 그러다보니 반응이 좋았다. 이게 맞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모래시계'등을 거치며 나만이 갖는 '회장님' 이미지라는게 생겼다. 그렇게 연기를 한 것이 추적자에서 정점을 이뤘다. 내가 한 역할 창조가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박근형이 '회장님'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갖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에 안주하기 보다는 새로운 역할을 갈망하고 있다. 연기인생만 50여년에 달하지만 그는 매번 도전을 꿈꾸고 있다. 일흔 여섯의 꿈꾸는 청년인 셈이다.
"배우이기에 역할에 대한 욕심이 가장 강하다. 연극을 하면서 유럽, 러시아, 인도 등 여러 국가의 다양한 연극들을 거쳤다. 그래서 그런지 역할에 대한 욕구가 크다. 다중인격 같은 것도 도전해보고 싶다. 나이가 든 배우가 선보인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주책이 없는지 젊은 사람들이 하는 역할을 이렇게 탐내곤 한다. 늙은이들이 발 붙일 곳이 없다. 그러다 '장수상회'를 만났다. 이런 천운이 어딨나 싶었다. 하하."
박근형은 심도있는 연기론을 가진 배우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신을 보고 배우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연기는 자신의 몸을 빌어 상상력으로 다른 이를 표현하는 창조활동이기 때문이다. 공식이 없기 때문에 강압적으로 자신의 방법을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오랜 세월을 지나며 자신의 연기의 근원지는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배운 경험에 따르면 모든 연기의 모태는 무대다. 무대 연기서부터 시작해서 토대를 튼튼하게 해놓으면 어떤 미디어가 와도 흔들림 없이 인물을 표현해낼 수 있다. 연극을 하면 한가지 역할을 40일씩 한 무대에서 계속 하게 된다. 안될 수가 없다. 나이를 먹고보니 내 연기의 모태는 연극이었다."
박근형은 tvN '꽃보다 할배-그리스편' 이야기를 하면서도 '꽃할배'들과 함께 서양 연극의 발상지 디오니소스 극장을 방문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그 곳에서 무엇인가 한 편 올리고 싶었다. 마음에서 불같이 끓어올랐다"며 남달랐던 감회를 전했다. 머나먼 그리스까지 가서도 연기를 떠올린 그는 결국 천생 배우였다.
천생 배우인 박근형은 자신같은 노련하고 오랜 경력의 배우들이 젊은 배우들과 함께 호흡할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젊은 배우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을 기꺼이 나누고 싶어했다.
"배우가 하나 나오려면 50년이 소요된다고 하더라. 열아홉이나 스물에서 시작해도 70대가 되어야 한다. 나 역시도 76세가 되어서야 '장수상회'에서 비로소 배우가 됐다. 이제야 연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젊은 배우들과 나같은 70대 배우들이 함께 하다보면 20대에도 70대의 공력을 가진 배우가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박소현 기자 sohyunpark@xportsnews.com
[사진=박근형ⓒ권혁재 기자]
박소현 기자 sohyunpark@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