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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무비 레시피] 2013년 여름, 사이코패스를 위한 나라는 없다

기사입력 2013.06.27 20:19 / 기사수정 2013.06.28 18:20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후덕 지근한 여름이 되면 반드시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호러 영화에서 관객들의 소름을 돋게 할 '악인(惡人)' 혹은 '악령(惡靈)'들이다.

호러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공포를 제공하는 악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초자연적 존재인 귀신(鬼神), 요괴(妖怪), 괴물(怪物) 등이고 나머지는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인간들이다. 특히 호러영화에 등장하는 악인은 범상치 않다. 평소에는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면을 감싸고 있는 껍질들을 하나 둘씩 벗길 때 그 안에는 일반적인 상식을 깨트리는 '무시무시함'이 도사리고 있다.

모든 범죄에는 반드시 '동기'가 수반된다. 범행 대상이 생기는 이유는 물질의 강탈, 개인적인 원한과 복수 또한 애정으로 인한 질투 및 배신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증)들에게 범죄의 동기를 찾기 어렵다. 이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범행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들은 일반인들이 느끼는 '양심'이 결여돼 있다고 한다. 또한 사이코패스가 되는 원인이 후천적인 원인보다 선천적인 면이 크다는 의학적 연구도 발표됐다. 평소에는 이러한 잠재의식이 드러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범행을 통해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극장가는 여름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공포 영화가 쏟아진다. 과거에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줬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인간'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무비레시피 재료 : 닥터(2013), 매니악(2012), 스토커(2013), 사이코(1960)



끔찍한 괴물로만 그려진 그들(닥터, 매니악)


가장 최근에 개봉된 작품들 중 '사이코패스'를 등장시킨 영화는 김성종 감독의 '닥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자신이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상대에게 퇴짜를 맞은 최인범(김창완 분)이라는 인물이다. 성인이 돼 성형외과 의사가 된 그는 자신의 젊은 아내인 박순정(배소은 분)을 첫 사랑의 외모와 비슷하게 성형시킨다.

또한 의상과 헤어스타일도 첫 사랑처럼 꾸며놓고 이를 유지하라고 강요한다. 최인범은 사이코패스들이 집착에 강하다는 특징을 참고해 완성한 캐릭터다. 박순정이 다른 남자와 밀애를 즐기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 그의 내면에 잠재된 '살인 본능'이 살아나 주변의 인물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한다.

이러한 설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최인범'에게 사이코패스가 주는 공포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자신이 인형처럼 부려온 젊은 아내가 외도를 하자 그가 이성을 잃고 살인 행각을 펼치는 과정은 너무나 부자연스럽다. 타인의 고통에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들의 특징은 사라지고 외도의 충격으로 모든 것이 붕괴된 '괴물'로만 비쳐지기 때문이다.

최인범을 대하는 상대 캐릭터들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10년 동안 함께 그와 일해 왔다는 수간호사는 "오랫동안 일했지만 한 번도 밥 한 번 먹은 적이 없어서 저 인간을 잘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최인범은 평소에 보통사람들과 거의 비슷하게 행동하고 말하는 일반적인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가끔 정신이 나간 행동도 반복한다. 이토록 비정상적인 상대와 10년 동안 같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밥 한번 먹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모르겠다는 대사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김창완을 제외한 나머지 연기자들의 '발연기 행진'까지 더해지면서 이 영화적 완성도는 매우 부실했다.



오는 7월4일 개봉하는 '매니악'은 1980년에 발표된 오리지널 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프랭크(일라이자 우드 분)는 매춘부인 어머니에게 외면을 받고 성장했다. 어머니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한 그는 '애정결핍증 환자'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아름다운 여성들의 머리 가죽을 벗겨 자신이 제작한 마네킹에 씌우는 엽기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어두컴컴한 마네킹 가게에 홀로 살아가며 밤마다 희생자들을 찾아나서는 설정은 사이코패스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나 프랭크란 캐릭터는 끊임없이 어이지는 잔인한 장면에 묻혔다. '매니악'은 주인공의 1인칭 시점에서 철저하게 영화가 진행된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프랭크의 시선에 따라 움직이지만 보이는 것은 희생자들의 참혹한 모습들뿐이다. 관객은 오로지 프랭크의 눈을 쫓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없는 점이 이 영화의 단점이다.

살인마가 벌레 하나 죽이지 못했던 인물이라니(스토커, 사이코)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 작인 '스토커'는 사이코패스의 성장사를 서정적으로 그려냈다. 박찬욱 감독은 관객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이미지를 창조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스토커 가의 집에서 주인공 인디아(미아 바시코브스카)와 그의 삼촌인 찰리(매튜 구드 분)가 계단에 서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한 때 집안을 뒤흔들었던 사이코패스인 찰리는 어느 날 불쑥 인디아를 찾아온다. 처음에는 계단 높은 곳에서 인디아를 내려다보며 "너와 나는 비슷하다"고 말을 한다. 이들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동질성을 확인하고 인디아의 내면에 잠재된 무서운 본능은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녀가 첫 살인을 저지른 것도 찰리의 권유 때문이었다. 피를 본 뒤 이에 쾌감을 느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인디아는 정체성에 눈을 뜬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는 인디아가 계단 위에서 아래에 있는 찰리를 바라본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은 인디아는 더 이상 찰리에 의존하지 않는다. 인디아가 자신의 본능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이후의 이들 관계는 역전이 된다. 이렇듯 '스토커'는 두 인물 사이에서 펼쳐지는 관계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1960년에 완성한 '사이코'에 등장하는 살인마 노먼 베이츠(앤서니 퍼킨스 분)는 실존했던 연쇄살인범인 에드 게인(미국, 1906~1984)의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에드 게인은 광적인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 때문에 평생을 시골 벽지에서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세상과 단절하고 오로지 신앙심만 가지고 살아가길 강요했다. 세상 경험 없이 오로지 어머니만 의지하며 살았던 그는 모친상을 당한 이후 광적인 범죄 행각을 범했다.

'사이코'의 노먼 베이츠도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채 '다중 인격'을 안고 살아간다. 자신은 물론 죽은 어머니의 인격을 동시에 가진 그는 공포영화의 대표적인 캐릭터가 됐다. 평소에는 벌레 한 마리도 죽이기 못할 만큼 여린 마음을 지녔지만 '다중 인격'으로 인해 살인자로 변하는 노먼 베이츠의 모습은 히치콕이 창조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였다.

올해 개봉된 '닥터'와 '매니악'은 실제 사이코패스들을 충실하게 다룬 작품이 아니다. 사이코패스의 복잡한 심리와 행동을 외면한 채 수위 높은 잔인한 장면에 초점을 맞춘 듯 보인다. 반면 '스토커'는 사이코패스의 기이한 성장사를 시적인 이미지로 그려내면서 호평을 받았다. 또한 '사이코'처럼 사이코패스의 섬뜩한 내면을 밀도 있게 다룬 작품은 '공포 영화의 고전'으로 남았다.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영화 사이코 스틸컷, 닥터 스틸컷, 매니악 스틸컷, 스토커 스틸컷]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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