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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은 왜 슈퍼볼에 열광하나?

기사입력 2006.02.11 14:55 / 기사수정 2006.02.11 14:55

김성훈 기자
지난 6일(한국 시각) 열린 제40회 슈퍼볼은 '전통의 명가'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5번째 챔피언 등극과 하인즈 워드라는 새로운 '영웅' 탄생으로 막을 내렸다.

매년 2월 첫째 일요일에 열리는 슈퍼볼은 연초부터 전 미국을 뜨겁게 달궈 놓는다. 미국인들은 슈퍼볼에 올라온 팀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아니더라도 승패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라스베이거스 도박사들의 배당금 총액은 신기록을 갱신하며 슈퍼볼을 유치한 도시는 슈퍼볼이 열리는 주말 기간 올림픽이 부럽지 않은 '슈퍼볼 특수'를 누린다.

특히 이러한 '슈퍼볼 열기'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곳은 방송국과 광고주들이다. 케이블과 위성방송을 비롯한 다채널 다매체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인 미국에서 25% 이상의 시청률을 보장해주는 프로그램은 슈퍼볼이 유일하다. 이번 40회 슈퍼볼의 평균 시청률은 41.6%, 점유율은 62%를 기록했다.

슈퍼볼의 하프 타임은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회사들의 신규 광고가 선보이는 '전쟁터'이자 가장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간이다. 30초짜리 광고 단가가 250만 달러(한화 약 25억 원)나 됨에도 광고 수주는 항상 만원이다. 이때 나오는 광고의 시청자 반응에 따라 사실상 해당 기업의 명암이 갈리기 때문에 광고계에서는 슈퍼볼의 하프 타임 때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보다 훨씬 더 긴장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슈퍼볼은 경기장에서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장외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4대 프로 스포츠 중 가장 '인기'

미국은 분명 스포츠 천국이다. 그중에서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4대 프로 스포츠로 분류되는 미식축구(NFL), 야구(MLB), 농구(NBA), 아이스하키(NHL)는 30개 이상 구단이 미 전역(캐나다 연고팀 포함)에 분포되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만큼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4대 프로 스포츠 중에서도 미식축구를 따라갈 수 있는 스포츠는 없다.

미식축구 프로 리그인 NFL의 경우 4대 프로 스포츠 중 가장 적은 16게임의 정규 시즌만을 치르는데도 32개 NFL 구단 중 적자를 보는 구단은 단 한 팀도 없다. 또 <포브스>지가 평가하는 4대 프로 스포츠의 구단 가치 평가에서도 상위권엔 모두 NFL 구단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에 필적하는 가치를 평가받는 타 종목 구단은 뉴욕 양키스(MLB), LA 레이커스(NBA) 정도에 불과하다.

미식축구에 대한 미국인들의 남다른 관심과 열정은 대학 리그인 NCAA나 고교 리그를 가더라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특히 같은 도시나 주에 풋볼 명문 대학들이 포진하고 있는 지역의 지역 라이벌 전은 NFL을 능가한다.

▲ 40회 슈퍼볼 우승팀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비슷한 유니폼 디자인의 아이오와 대학 풋볼팀
ⓒ ML파크
미시간 주의 미시간대학과 미시간주립대학, 텍사스 주의 텍사스공대와 텍사스대학, LA 주의 USC와 UCLA, 플로리다 주의 플로리다대학과 플로리다주립대학 등 수많은 지역 라이벌들의 대결은 각 지역을 슈퍼볼 뺨치는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또 NCAA 미식축구의 슈퍼볼이라 할 수 있는 로즈볼은 슈퍼볼에 필적하는 언론의 관심을 받는 대형 스포츠 행사다.

그렇다면, 미식축구의 어떤 속성이 이토록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리지 않고 미국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터치다운 한 방에 역전 '짜릿'

알아야 본다
간략히 살펴본 미식축구 규칙

미식축구는 한 쿼터에 15분씩 총 4쿼터 60분 동안 치르는 경기이며 각 팀은 전후반 각각 3회(총 6회)씩 작전 타임을 요청할 수 있다.

미식축구는 4회에 걸쳐 공격할 수 있다. 공격권을 인정받으려면 4차례 걸친 공격 시도에서 상대 진영으로 10야드 전진해야만 한다. 이때 10야드 이상 전진하여 새 공격권을 받는 것을 퍼스트다운(First Down)이라 한다. 공격 방식은 패스를 통해 전진하는 패싱 공격과 뛰면서 돌파하는 러닝 공격 2가지 방식이다.

미식축구에서 득점하는 방법은 3가지다.

첫째는 터치다운(Touchdown)으로 득점하는 것으로 상대 진영의 앤드 존까지 전진해서 앤드 존 앞 골라인을 넘어서거나 공이 골라인 위를 스쳤다고 판단할 때 ‘터치다운’으로 인정되어 6점이 인정된다. 터치다운 후 골라인 2야드 앞에서 골포스트 위로 킥을 성공시키면 1점이 추가되고 다시 상대 앤드 존안으로 패스를 시도해서 공을 공격팀의 선수가 받아내면 2점이 추가된다.

둘째는 필드 골에 의한 득점으로 터치다운으로 득점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상대 골라인에 도달하기 전에 상대 골포스트 위로 킥을 시도하여 성공할 경우 터치다운의 절반인 3점이 인정된다.

마지막은 세이프티(Safety)로 축구의 자책골과 같은 개념이다. 공격수가 자기 진영에서 공을 앤드 존 밖으로 떨어뜨리거나 자기 진영 앤드 존 안에서 상대 수비의 태클에 볼 데드가 선언될 경우 2점을 상대팀에 내주게 된다. / 대한미식축구협회 자료 참조
우선 지역 간 경쟁심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정식 국호인 '미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50개의 주라는 크고 작은 나라의 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중세 시대부터 성(城)을 중심으로 한 지역 간 대립-경쟁 구도가 오늘날 유럽의 축구 열풍으로 변형되어 계승되어 왔듯이 미국 역시 50개의 크고 작은 주들은 주 안에서 혹은 주와 주끼리의 대립-경쟁 심리를 스포츠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4대 스포츠 중에서도 미국인들에게 유럽인들의 축구와 같은 것이 바로 미식축구다.

그러나 무엇보다 미식축구가 미국인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미국인들의 '개척자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미식축구는 일단 상대편과 몸과 몸이 부닥치는 전쟁과도 같은 육탄전을 통해 얻어내는 '대가'가 크다. 피 말리는 상대 수비와의 육체적-정신적인 사투 끝에 10야드 이상을 야금야금 전진하여 획득하는 터치다운은 최소 6점에서 최대 8점까지 획득할 수 있다. 터치다운 한 번으로 게임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는 이런 속성은 득점 성공 시에 느끼는 쾌감을 높인다.

야구에서 홈런으로 얻어낼 수 있는 점수가 최대 4점이고 농구에서도 4점(3점 슛 성공+보너스 자유투 1개 성공)이 최대치란 것을 고려할 때 대단히 후한 점수이고 그만큼 승부의 변수도 커지게 된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상대방을 제압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단체운동이란 점에선 축구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최대 8점까지 획득할 수 있는 미식축구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승부를 속단할 수 없게 하고 약팀도 터치다운 한방으로 게임을 역전시킬 수 있는 의외성을 지니기 때문에 관중은 축구보다 미식축구에 더 열광한다.

축구에서 종료 시각 10분여를 남기고 3골 차로 뒤지고 있다면 물리적으로 동점이나 나아가 역전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미식축구는 7점 차로 뒤지고 있어도 터치다운 한방으로 동점이나 역전을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미국인들을 사로잡는 것이다.

▲ 11만명 수용 규모의 미시건대학 홈구장.
ⓒ ML파크
미식축구는 한편으로 오늘날 미국을 있게 만든 서부 개척과도 유사하다. 서부개척 시절 거대한 영토와 황금을 얻기 위해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서부로 길을 떠났던 것처럼 미식축구도 위험한 모험이 성공하면 황금(터치다운)을 획득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전진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없거나(퍼스트다운 갱신 실패) 약소한 결과물(프리킥 득점 3점)에 만족해야 한다. 따라서 황금을 얻으려면 과감한 도박을 감행해야 하고 내 황금을 지키려면 적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제지해야만 한다.

이렇듯 미식축구에는 미국인들이 서부 개척을 할 때의 황금에 대한 '욕심'과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규칙으로 잠재되어있다. 바로 미국인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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